유효기간은 지키라고 있는 것!
당신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또 중시하던 중시하지 않던,
그 어떤 것과도 무관하게 사람들은 태어나자마자, 그리고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연을 맺게 된다.
그 인연은 천륜, 사랑, 우정, 적, 대충 아는, 스쳐가는 등 매우 다양하며,
인연의 속성에 맞춰 가족, 연인, 친구, 원수, 그냥 아는 사람 등으로 나뉜다.
사람들은 이렇게 세분화된 수많은 인연들을 대체적으로 무척 소중하게 여기는 경향을 보인다.
어느 정도냐? 어떤 사람들은 자기를 괴롭혔던 악연들 중에서 조금 가볍다 싶은 악연을 '다 한 때의 좋은 기억이지~ 뭐'라고 미소 지으며 받아들이는 선한 사마리아인 흉내를 내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의 태도를 보고 있노라면 기가 막혀 웃음도 안 나온다.
글 시작부터 너무 까칠하게 굴면 안 되는데, 그래! 당신은 착한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착하고 좋은 사람인 당신이 그렇게 소중하다고 말하는 인연들에 대해 살짝 하나만 생각해보자!
기억을 조금 세밀하게 더듬어서 당신들이 얼마 전 우연히 누군가를 만났을 때부터 학생시절을 지나 유치원에 다녔던 나이 때까지 내려가보라.
쉽게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과거의 일기나 기타 특정 매개물을 이용해도 좋다.
정말 깊이 생각해봐야 생각이 날 것이다.
아마 그렇게 하면, 정말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을 하다 보면, 당신은 그동안 일상에서 전혀 기억나지 않았던 사람들이 몇몇 떠오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은 과거 당시 당신에게 꽤나 소중한 인연이었던 것이 깨달아질 것이다. 그러나 곧바로 그렇게 가까웠던 그 사람들이 지금은 이미 연락한 지 몇 년이 지난 사람이고, 심지어 전화번호조차 없어 다시 연락할 수도 없을 만큼 정리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게 될 것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이해되는가?
당신이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고 느끼는 감정은 당신의 현실에 맞춰 임의대로 조작한 태도와 기억에 불과하는 말이다. 실제와 다른 기억의 한 조각이라는 말이다.
나도 한 때 누군가와의 인연에 목을 맨 적이 있었다.
무엇보다 소중히 여겼기에 당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모두 오랫동안 함께 할 관계라고 믿었고, 그렇게 맺어진 관계를 발전지향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다분히 노력하였다.
나와 함께 행복을 누리고 때로는 고통도 기꺼이 분담할 수 있는 더 좋은 인연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말이다.
그러나 앞서 '한 때'라고 쓴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지금의 나는 사람들과의 인연에 전혀 연연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인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의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설령 그 인연이 가족과의 인연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 가족이라고 불리는 포괄적인 영역에 있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사연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남처럼 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물론 안 그렇다고 말하는 당신은 아주 복 받은 사람이다.
내가 매사 비꼬는 성격이지만 이건 진심이다.
내가 이런 냉혈한(?)이 된 것은 유효기간이 명백하게 존재하는 것에 미련을 갖는 행동이 얼마나 미련한 처신인지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예외도 없이 우리들의 삶이 제한되어 있듯이 인연도 각각이 지닌 유효기간이 있다.
가장 긴 인연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시간으로 한정된다.
인연은 출발점이 있기 때문에 - 명확하게 인지하고 결론이 난 끝과 흐지부지 사라져 버린 끝이 있을 뿐 - 반드시 종착점이 있다.
인연의 마지막으로 향하는 길은 보통 맺어온 인연이 불편해지고 그로 인해 망가지기 시작하면서 나타난다.
흔히 우리의 인연이 망가져 갈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상대 탓이다. 거의 예외 없이 그러하다.
전국 가정법원에서 내려지는 수많은 이혼 소송의 과정과 결과를 한번 봐라.
열렬한 사랑까지는 아니었더라도 처음에 그래도 뭔가 좋은 감정으로 결혼했을 부부들이 헤어짐을 앞두고는 상대를 맹렬히 증오하고 비난하기 바쁘다. 원수도 이런 원수가 없다.
종종 허무감에 빠져 이혼 자체를 한탄할 뿐, 상대를 비난하지 않는 이혼 커플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들이 상대를 비난하지 않을 뿐이지 내가 잘못했다고 자처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박살나버린 인연에 대해 자기 잘못을 돌아보게 되는 것은 시간이 조금 흐른 뒤다.
인연의 종결이 이루어지고 난 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 인연이 끝난 것일까?'라는 자책과 후회를 하게 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에게나 인연이 끝난 후 나를 돌아보는 시간은 분명히 존재하게 된다.
그런데 인연이 완전히 끝장나기 전에 자기 탓을 하며 관계를 되돌리기 위해 시도한다면 모를까, 누구 탓을 한들, 후회를 한들 끊어진 인연은 다시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원망과 미움, 슬픔, 후회, 반성 따위는 정말 정말 무가치한 행위이다.
정서적 안정을 위해 차라리 저런 불필요한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혹자는 "나는 과거에 여자친구랑 헤어졌었는데 다시 만나서 결혼까지 했다. 끊어진 인연은 이어지지 않는다면서 말이 안 맞지 않는가?"라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살짝 비웃으며 답변하겠다. 잠깐 혹은 조금 더 긴 기간 동안의 이별과 완전한 영구적 인연의 단절은 다르다.
당신의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하는 상황이 후자였다고 확신하는가?
절대 아닐 것이다. 당신은 그냥 사랑 싸움을 한 것이다.
인연이 끊어진다는 것은 화가 나서 연락을 안 하고 만나지 않는 것만 의미하는 게 아니다.
미움이 기반이 된 한정된 시간의 이별은 유효기간 만료에 해당되지 않는다.
인연의 끝은 무관심의 영역으로 들어간 이별을 지칭한다.
당신이 저 멀리 몇 만 km 떨어진 이름 모를 나라의 사람들이 사는 삶에 무관심하듯이 인연이 끊어진 것은 그렇게 무심한 것이다. 미움도 인연이 있기 때문에 잔존하는 것이다.
끊어진 인연 속에서 남는 감정은 그냥 공허한 無이다.
인연은 열정으로 가득 찰 수도, 무심함으로 가득 찰 수도 있으며, 누군가에게 소중한 것일 수 있지만 분명히 영원하지 않은 것이다. 영원하지는 않아도 추억으로 영원히 남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앞서 예시로 말했지만 추억은 내가 망각이라는 수단으로 언제든지 편의적으로 지워버릴 수 있다. 허상이다.
게다가 '아~ 나에게는 아련한 이런 인연이 있었지'라고 당신이 혼자 감정적 안락함을 추억에서 느끼고 있을 때, 상대는 당신에게 저주의 말을 퍼붓고 있을 수 있다.
당신의 추억이 절대적이라고 착각하지 말아라.
당신에게는 추억이 누군가에게는 고통의 기억일 수 있음을 잊지마라!
그러니 지금 당신이 누군가와 관계가 끊어지고 인연이 단절되었다고 후회하거나 미련을 갖지 말아라.
상대를 죽도록 미워하거나 쿨하게 보이려고 축복을 할 필요도 없다.
상대를 원망하거나 당신 스스로를 자책할 필요도 없다.
누가 잘못해서 누구의 탓으로 인연의 연결고리가 빠진 것이 아니라 그냥 유효기간이 다 된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된다.
당신이 유효기간 지난 삼각김밥을 버려야 할 때 잠깐 아쉬운 마음일 들겠지만 그것을 절대 버릴 수 없다고 집착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삼각김밥의 유효기간과 비교해서 좀 그렇기는 하지만 사람과의 인연도 별 다를 것 없다.
끊어진 관계에 미련을 갖는 것은 효용가치가 없는 일에 그냥 괜히 진지감에 빠져있는 나르시즘일 뿐이다.
당신이 그런 상태라면 조속히 빠져나오고, 당신의 친구가 그런 상태라면 가볍게 무시해라.
적당한 시기에 제정신으로 돌아올 것이고, 만약 안 돌아온다면 병원 치료를 받거나 감옥에 갔을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인연의 끈이 끊어진 경우, 다시 인연을 이으려고 하는 시도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인연이 끊어질 정도의 헤어짐이라면 당신이 무슨 노력을 해도 다시 이어지지 않는다. 혹시 다시 이어진다고 하더라도 접착제로 붙인 깨진 접시처럼 예전보다 약한 충격에도 다시 끊어지게 된다.
그 때의 절망감과 고통은 처음 인연이 끊어졌을 때보다 더 심할 것이다.
당신의 삶 속에서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라면 당신이 원하지 않더라도 인연으로 당신에게 다가올 것이다.
물론 좋은 사람이 다가 올 수도 있고, 나쁜 사람이 다가 올 수도 있다.
인연은 그런 것이다.
운명의 굴레가 씌워진 사람이라면 당신이 싫어해도 나타나 당신과 동료가 되고, 당신이 좋아해도 악연이 될 것이다. 게다가 당신이 자각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 인연 말고도 당신은 수많은 인연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책이나 여행지, 자신의 애장품, 기타 등등 다양한 인연은 사람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인연은 말 안해도 내가 필요할 때 옆에 있고, 말 뿐인 인연은 자기 필요할 때만 옆에 있다는 말이 있다. 말 뿐인 인연도 당시 내 옆에 있다는 것은 그냥 그 사람과의 인연의 유효기간이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안타깝지만 그 나쁜 인연 때문에 상처를 받고 손해를 보더라도 어쩔 수 없다.
인연은 당신의 좋고 싫음에 무관한 경향이 있다. 좋은 인연만 옆에 둘 수 있다면 내가 상처받을 일도 손해볼 일도 없을 것 아닌가? 인간의 삶이 그러하지 않기 때문에 오묘한 것이다.
그래도 인연에 미련이 남아 연연할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죽는다는 것은 마지막 순간까지 가지고 있던 인연을 다 놓고 떠나는 것이다.
당신이 시간이 흘러 노인이 되면 갈고 닦을 인연조차 점점 없어진다.
노인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남아있는 인연은 오래된 것이겠지만, 그리고 깊은 추억이겠지만 곧 사라질 것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즉,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태어나 젊을 때 맺어왔던 인연을 하나 둘 정리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이다.
함께 물장구쳤던 어릴 적 친구, 나와 인생역정을 함께 해온 아내, 나에게 고언을 아끼지 않았던 선배, 나와 술잔을 기울이며 함께 기뻐해준 후배, 나를 사회의 일원으로 키워주신 상관, 스승, 형제, 부모 등등 나 혼자 온 세상 나 혼자 떠나가기 위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연이 끊어져 나간다.
죽기 직전까지 잔존했던 인연은 죽는 순간 저절로 모두 끝나게 된다.
어차피 끝날 것에 필요 이상으로 감정이나 정열을 소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이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의 인연은 당신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의 인연이 당신 곁에 있는 동안 그 인연에 충실하도록 최선을 다해라. 딱 거기까지이다.
최선을 다하는 것도 누굴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 해라!
그 인연이 나빠진다고 슬퍼하거나 뭔가 해서 개선하려고 전념할 필요 없다.
무슨 짓을 해도 남을 인연은 남고, 떠날 인연은 떠난다.
이런저런 이유는 그냥 남거나 떠나는 것에 대한 핑계거리일 뿐이다.
또한 당신에게 인연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 세상을 살아야 할 시간이 제법 많이 남았음을 의미한다.
그 아까운 시간 동안 - 지금도 흐르고 있는 - 인연을 중심으로 살지말고 당신 중심으로 인연을 생각하며 살아라! 당신이 냉장고 속 음식을 유효기간을 고려해 정리하고 관리하듯이 당신의 인연도 그렇게 관리하며 살면 된다. 가장 소중한 것은 당신과의 인연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다.
당신이 사라지는 순간 그 인연도 모두 유효함이 사라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