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감정 표현에 대한 오해
'소시오패스'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지칭한다.
2000년대 이후 가장 많이, 새롭게 사용되는 용어들 중 하나이며, 인터넷을 비롯하여 각종 매체와 일상생활에서도 소시오패스라는 말이 자주 인용된다 - 좀 남발되는 경향도 있다고 본다.
소시오패스는 타인의 감정에 대한 공감 결여가 전제되며, 일반인으로 규정되는 이들의 갖는 양심이나 죄책감 등의 작용력이 없어 거리낌 없는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속성이 포함된다.
그렇지만 성격이 다소 일반적이지 않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보편적 사회성이 좀 떨어지는 사람들과 명확하게 구분 짓기 어렵고, 그만큼 규정하기 위한 조건의 범주 또한 광범위한 편이다.
소시오패스 개념이 주로 거론되는 영역이 사건과 범죄의 영역이다 보니 소시오패스를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한데, 포괄적이고 원론적인 시각에서 잠재적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소시오패스를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하는 행동이 아주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그냥 성격이 좀 사회성이 부족한 것에 불과한 사람들도 다수인데 이들을 모두 범죄자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중대한 오류이며, 설령 진짜 소시오패스라도 이런저런 이유로 사회성이 습득된 경우 범죄와 완전히 무관한 정상적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모든 소시오패스를 범죄자로 모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오히려 소시오패스는 전체 인구의 4%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범죄자의 비율로 따지면 소시오패스가 아닌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할 수 있다.
관련 연구들을 살펴보면,
소시오패스는 매우 충동적이고 느끼는 감정의 정도가 높은 편이며, 이해타산적이고 목적지향적 삶을 영위한다. 또한 지루함을 쉽게 느끼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성향이 강하지만 중독에 빠지는 경우는 드물고 사회적응도가 낮은 소시오패스일 경우에 이러한 특성이 더욱 강해져 강력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다수 소시오패스들은 자기가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며 살아갈수록 자신이 손해 볼 일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에 일반사람들과 융화하여 큰 트러블 없이 평생을 살아간다.
중증 소시오패스이거나 소시오패스가 가진 충동성을 크게 자극하는 계기만 없다면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내가 소시오패스가 아닐까?'라고 의심하는 사람은 오히려 소시오패스가 아닐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한다. 소시오패스 여부를 확인하는 가장 간단한 자기 진단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전술한 것처럼 소시오패스로 특정할 수 있는 준거의 설정이 매우 광범위한 범주에서 가능하다 보니 가끔 유별난 성격 때문에 소시오패스로 오해를 받는 경우가 발생하곤 한다.
소시오패스로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성격은 여러 형태가 있겠지만 통상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들이 주로 오해를 받게 된다 - 이러한 측면에서 나 역시 가끔 오해를 받는다.
감정에 솔직하기,
이것은 누구나 일상에서 할 수 있고, 다른 결심이나 행동이 낳을 효과에 시너지를 더할 수 있어 상당히 유용하기도 하지만 막상 해보려면 의외로 쉽게 잘 되지 않는 행동 중 하나이다. 문명사회라고 불리는 사회일수록 감정을 숨기고, 만약 감정을 표출한다면 무례한 사람처럼 인식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놓고 보면, 대체적으로 서양 사회가 감정에 더 솔직한 편이지만 전체 모집단 차원에서 비교해 보면 생각처럼 흑과 백의 비교처럼 확연하게 상이한 정도는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냥 진한 회색과 옅은 회색의 차이 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유교 사상이 인식의 저변에 깔려 있으며, 겸양을 최고의 미덕으로 치는 한국인들에게 솔직한 감정 표현은 정말 어려운 행동이다 - 어느 민족보다 감정적이면서 이성적 태도를 더럽게 중시한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는 솔직한 감정 표현에 익숙한 사람들이 이상한 눈길을 받는 경우가 흔하다.
실제로 내가 겪었던 사례 하나를 들어보라.
몇 년 전 나보다 연장자이신 지인 한분이 돌아가셨다. 평소 주위에 좋은 분이라는 평가를 받던 고인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장을 찾았다.
조의를 표한 후 식당에 앉아 있는데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둘째 딸이 - 검은 상복을 입었고 잠깐 둘째라고 부르는 것을 들어서 알았다 - 식당에 들어와서 "나랑 집에 무관심했던 아빠가 돌아가셨는데 왜 내가 밥을 굶어? 난 먹을 거야!"라며 소주를 반주삼아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고인은 아마 전형적인 집에는 무관심하고 밖에서는 좋은 사람 소리를 듣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내 식탁에 앉아있던 사람이 - 아마 그냥 조문객인 듯싶었다 - "어쩜 상주 가족이 저러지? 소시오패스인가?"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응? 장례식장에 적절한 표현은 아니었지만 둘째 딸이 말을 저렇게 했던 것은 회한이 너무 깊어 그런 것일 수도 있고, 그냥 자기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한 것에 불과할 수 있다.
게다가 가족이 죽은 것은 너무 슬프지만 만일 사랑하는 이가 죽어서 굶어 죽는 이가 다수였다면 인류는 이미 멸종했을 것이다. 죽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까 말이다.
오히려 이런 모습에 소시오패스를 운운한 사람이 정말 반사회적 경향을 가진 사람이 아닌지 의심되었다.
그리고 슬퍼했어야 할 장례식장에서 가족에게 원망을 들은 고인이야 말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한 사람이었다고 생각이 들어야 했을 것이다.
이 사례에서 내가 말하는 이야기의 요지는 자기감정에 솔직하다 보면 소시오패스처럼 오해를 받을 수도 있음인데, 나는 소시오패스로 오해를 받을 망정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충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감정 표현의 방법과 내용은 사람들마다 이해와 취향의 폭이 모두 다르다.
각자의 용량과 용법은 감정 표현을 할 상황에서 발휘해보지 않으면 본인도 잘 모른다.
감정 표현에 대한 원론적인 교육 이외에 제대로 조언이나 수정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정을 표현해 봄으로써 나의 사이즈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감정에 가식 없는 태도에 근간해야 더 나은 인간관계도 가능해질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가식 없는 태도가 우월한 모습인지 알고 있다.
평소에 혹은 취중에 주위 사람들에게 표현하는 말 중에 "솔직히" "사실은" 이 말이 얼마나 많이 사용되고 있는지 생각해 봐라!
일단 당신의 감정 표현을 못 견디는 사람들이나 내심 당신에게 불신이나 증오를 갖고 있던 이들은 당신 곁을 떠나버려 갈등의 여지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
또한 당신에게 우호적인 사람들과의 불편함은 익숙하지 않은 솔직함이 당신과의 관계 속에 들어와 낯설어짐에 따라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당신의 본의를 알게 되는 순간 존중하고 수용하게 될 것이다.
만약 이렇게 어떤 이가 당신의 감정 표현에 대해 소화할 역량이 된다고 판단하고 나면 그 사람은 당신의 감정을 수용함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있는지 찾게 된다.
그 이득은 그 사람이 당신에게 진짜 감정을 표출하는 기초적인 것부터 다양하게 포함된다. 반대로 당신도 마찬가지이다. 즉, 솔직한 감정 표현이 서로에게 수용되고 나면 서로에게서 이익을 찾는 진정한 거래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는 뜻이다.
자! 지금까지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전제!
감정에 솔직해지고 그를 표현하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무례 혹은 패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인들은 감정에 솔직한 것을 '화를 잘 낸다'와 모두 연계하던데 화를 내는 것이 솔직한 감정 표현의 하나인 것은 맞지만 모든 진솔한 감정 표현이 화를 내는 것이 아니다.
설령 내가 분노의 감정을 표출할 때도 화를 내는 것이 아닌 내가 왜 화가 났는지를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억지로 화를 참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 남에게 나의 분노를 무분별하게 폭발시키라는 말이 아니다. 그러한 부분이 없다면 정말 그냥 감정의 배설일 뿐이다.
이것저것 다 떠나서 내 감정에 솔직하다면 조금이라도 마음은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