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는 어렵다!

진절머리 나서 나 혼자 사는 게 나을지도

by 이재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Aristoteles'가 자신의 저서를 통해 한 말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한 이 유명한 정의에 대한 원래 표현은 '인간은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다'라고 한다.

이 말이 현재처럼 전해지고 있는 이유는 로마의 정치인 'Seneca'가 저 말을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정치적'이라는 단어가 '사회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마가 가진 영향력 때문에 지금까지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게 된 것이다.

오래전 일이라서 Seneca가 일부러 그랬는지 오류였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우리들 모두가 '가정'이라는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에서 시작해 여러 형태와 규모의 사회들에 속해서 실제로 살아가기 때문에 무의미한 번역의 오류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굳이 따질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하여튼 이 어르신들 때문에 공부할 것이 정말 많아졌다!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반드시 전제하며,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에 타인을 염두에 두고 배려하며 살아가야 함을 또한 의미한다.

그래서 사회생활의 기초이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다른 사람과 형성하는 인간관계이며, 더 어려운 것이 그렇게 형성한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다.

몇몇의 아주 특이한 경우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들과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살아가는데, 무엇보다 - 스스로 원한 바는 아니지만 - 통상 사람들과의 관계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한다고 '의무' 지어진 것들을 되도록 충실히 지키려고 신경 쓰며 살아간다.


하~ 그러나 세상만사가 어디 내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가 있던가?

어려운 인간관계 때문에 언제나 당혹하고 곤란에 빠져 허탈한 웃음 밖에 안 나올 때가 빈번하다.

모든 사람들과 좋게 좋게 지내고 싶은데 이놈의 인간관계는 하나같이 정말 어렵기 짝이 없다.

분명히 남들과 똑같이 행동했는데 유독 나만 욕을 들어먹고, 처음에는 용납되었던 것이 갑자기 용납되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방금 전까지 웃고 헤어진 사람이 갑자기 내게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어쩔 땐 잘 풀리지 않은 인간관계 때문에 세상살이에 진절머리가 나서 그냥 산속에 들어가 혼자 사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알았으니 대체 뭐 그런데 뭐 때문에 인간관계가 그리 어렵다고 징징대는 거냐고? 이유를 말해보라고?

오케이! 기회를 주었으니 그럼 몇 가지만 이야기해 보자~


흔히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로 첫인상을 꼽는다.

실제로 좋은 첫인상을 각인시킴으로써 이후 원만하고 우호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한 사례를 우리는 주위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가 흔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좋은 첫인상을 주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강구하고, 그 일환으로 외모를 가꾸거나 화술을 연습하기도 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했던가? 기왕이면 깔끔하고 준수하게 생긴 외모를 선호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이며, 잘 가꿔진 외모는 좋은 첫인상을 주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좋은 외모만 가지고 첫인상이 좋게 심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게다가 외모 측면에서 챙겨야 할 부분이 너무 많다. 얼굴은 당연하고 체격, 음성, 향기, 패션, 액세서리, 어투, 막연하게 풍기는 느낌까지, 오히려 어느 하나 약간의 부족함으로 인해 다른 부분까지 모두 결여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외모로 첫인상을 임팩트 있게 주기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더 놀라운 것 사실은!

바로 첫인상이 그저 그랬을 경우에 첫인상이 좋았을 때보다 오히려 이후 인간관계가 좋아지는 경우가 엄청나게 많더라는 것이다.

엥?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고? 첫인상이 그리 성공적으로 인식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냐고?

어이없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첫인상을 성공적으로 각인시킨 사람은 상대가 갖는 다음에 대한 기대치에 부응하기 위해 더 나은 모습을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일신우일신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반면에 첫인상이 그렇게 강렬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상대에게서 관심은 조금 덜 받을 수 있어도 상대가 무리한 기대를 하지 않게 되며 더불어 깊은 관심에서 나오는 반탄력과 같은 경계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편안한 느낌에서 일상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오히려 좋은 점이 더 눈에 쉽게 띌 수 있게 된다.

첫눈에 반한 첫사랑보다 약간은 맹숭맹숭했던 남녀 사이가 오히려 나중에 연인이나 부부관계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다는 관련 연구들의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 필자 역시 그렇게 결혼했다.


이상의 내용을 감안하면, 우리는 좋은 인간관계를 위해 첫인상을 줄 것인지, 지속적인 인상에 신경을 쓸 것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둘 다 효과적이라는 근거는 차고 넘치기 때문에 순전히 내가 결정해야 하는 내용이다. 어렵지 아니한가?


아니라고?

그렇다면 인간관계가 어렵다는 또 다른 나의 이야기를 들어봐 주기 바란다.


2개 중 좋은 첫인상은? 슬픔과 기쁨으로 보이는가? 결의와 경박으로도 보인다.


우리는 원만한 인간관계의 유지를 위해 다양한 처신을 한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거나 상호작용을 할 때 우리는 오로지 상대방을 위해 특정 행동 중에 밝게 미소 짓거나 상대에 대해 공감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태도가 서로의 관계에 효과적이라는 근거도 여기저기 충분하다.

누구라도 웃는 얼굴을 쉽게 외면하기는 어렵다. 밝은 미소는 받아들이는 이에게 편안함을 주고 호감의 표시로 수용되어 상대방의 관심을 받기에 유용하다.

손뼉 치며 호들갑 떠는 맞장구는 좀 과도하지만 대화나 의사소통 중에 공감을 하고 있다는 충분한 리액션은 상대에게 내가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표시가 되어 상대의 신뢰와 안도감 등을 얻어낼 수 있다.

당연히 이와 반대되는 리액션, 즉, 심리학에서 방어적 태도로 규정하는 턱을 고이거나 팔짱을 끼는 태도, 말할 때 입을 가리는 등의 행동은 상대방에게 경계한다는 느낌을 주어 거리감을 만들어낸다.

또한 흘깃흘깃 쳐다보지 않고 아이 컨택을 하고 당당하게 사람을 대하는 자세나 자신의 관심을 적극적으로 표명하는 태도는 인간관계에서 굉장히 우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어떤 이에게 밝은 미소는 경박스러움으로 인식되고, 가식스러운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진심으로 호의를 표한 사람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그지없는 노릇이지만 우리가 드물지 않게 접하게 되는 당혹감이다.

리액션도 그 자체를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며 오히려 앞서 이야기한 심리학에서 방어적 태도로 규정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에게서 안정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아이 컨택이나 당당한 태도도 많은 사례에서 그러한 자신감을 건방짐으로 간주하거나 적극적인 관심의 표현을 과도한 의욕으로 받아들여 불쾌감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적잖이 존재한다.

당신도 한 번쯤 겪어봤을 당황스러운 경험들이지 않은가?


이와 같은 사람들의 일관되지 않은 태도는 인간관계를 바람직하게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선량한 마음을 혼란의 도가니에 빠뜨리기 일쑤이다.

어떤가? 이래도 인간관계가 어렵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좋다! 아직도 인간관계가 어렵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는 당신에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마!


'좋아요' "뭐가 좋아?", '최고에요' "좋은 거 하나도 없는데 뭐가 최고?", '웃겨요' "내가 웃겨?", '슬퍼요' "왜 네가 궁상이야?" ▶ 대체 어쩌라는 것인지...



사회가 조성해 놓은 잘못된 문화도 인간관계를 어렵게 만드는데 크게 한 몫한다.

"나는 집안일 알아서 많이 도와준다."

한국 남성들이 결혼 후 가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자기 자랑처럼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이다.

"내가 잘해줄게"

한국 남성들이 자신의 배우자와 평상시 혹은 다툰 후 달래면서 역시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그런데 아는가? 이 말들은 그릇된 '가부장제'의 잔재가 만들어놓은 참으로 독선적이고 권위적 우월감으로 가득 찬 말이라는 것 말이다. 당신에게 악의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 말은 분명히 지독한 가부장적 표현이다.


도와준다는 표현은 '가사가 전적으로 여성의 몫이지만 남성인 내가 아내를 가련히 여겨서 안 해도 되는 것을 한다'는 전제를 함의한다. 잘못된 것이다. 가사는 내가 사는 집의 일이며, 함께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따라서 "내 일이니 내가 한다."가 정확한 말이다.

또한 '내가 잘해줄게'라는 말은 심리적으로 내가 너보다 위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니 너를 위해 내가 시혜를 베풀어주겠다는 의지이다 - 다시 말하지만 이 말을 하는 당신이 나쁜 의도로 하는 말이 아님을 안다. 단지 말의 본 뜻은 그러하지 않다는 말이다. 말은 자신을 중심으로 자기가 할 행동을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는 형식으로 말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그러니 당신의 선의를 제대로 전하려면 "내가 잘할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방금 내가 한 말 때문에 나에게 페미니즘 어쩌고 저쩌고 할까 봐 노파심에 말하는데 남성인 내게 어떻게 여성주의를 논할 수 있겠는가? 애초에 남성인 내가 여성을 이해하는 척하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

근원적으로 불가능하다.

게다가 굳이 나를 사상적으로 구분 짓자면 나는 '아주 약간 남성의 입장'에 서 있는 평등주의자이다.

명확하게 말하지만 내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사회는 여성과 남성이 인간으로서 모두 평등한 권리와 의무를 완전하게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군복무와 임신으로 서로 싸우는 머저리 같은 차원의 평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별 따위의 조건과 무관히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천부권으로서의 평등을 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주 약간 남성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표현한 이유는, 내가 '자유시장주의자'임에도 우리나라 시장경제가 재벌이라고 하는 괴물 때문에 순수한 자유경쟁이 되지 않는 체제이기에 '급진주의자'처럼 국가의 강력한 개입과 재벌 해체를 외치는 것과 같은 논리로, 오히려 남녀가 공히 완전하게 평등한 상황이 조속하게 이루어져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고 굳건한 남성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빠르게 개선되어가고 있지만 그동안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성희롱과 차별, 폭력 등에 시달려왔고 차별의 벽, 유리천장이 버젓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더라도 훨씬 더 많은 수의 남성들은 가부장제도의 잘못된 축첩 제도나 가정 폭력 등과 무관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실제 가부장적 기득권을 한 번도 누려본 적 없는 대다수 남성들은 도매급으로 가장파탄의 주범처럼 인식되거나, 분명히 소수인 성범죄자들 남성들로 인해 다수의 보통 남성들은 잠재적 성범죄자로 치부되는 것은 불합리하다. 얼마나 황당한 일이란 말인가? 성범죄나 일탈을 단 일말의 생각도 해본 적 없는데 범죄자 취급이라니!


여하튼 뭐 이쯤에서 각설하고...

이처럼 가부장제라는 문화,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남성과 여성 간 인간관계를 바람직하게 만드는데 강력한 제약 요건이 되고 있다. 그런데 다른 문화까지 뒤섞여 보라! 인간관계는 파탄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실제 최근의 세태를 보면 복합적 문화원인에 의한 젠더 갈등이 심각한 상태에 이른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세상에 고작 2개밖에 없는 분류를 가지고 상대를 혐오하고 상대를 증오하는 어리석은 작태라니...


그냥 우리는 모두 똑같이 이기적이고 하찮은 존재~ 그래서 같이 살아가는 것!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상이함 때문에 대처하기가 정말 어려운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잘 유지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으로 내가 내린 결론은 결국 '나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내가 나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에서 내세우거나 뒤로 빼야 할 전략이 제대로 수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전략이 잘 들어 먹히지 않는 인간관계를 대면하게 되었을 때 경중을 따져 과감하게 정리하는 결단도 필요하다.

전략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버린다고? 왜? 이상하게 들리는가?


내 경험을 하나의 예로 들어보겠다.

공격적이고 직설적인 성격으로 인해 극과 극의 평가를 받던 젊은 시절의 나는 어느 날 원만하게 살아보겠다는 결심 하에 태도를 의도적으로 바꿔본 적이 있다.

나를 나쁘게 평가하던 사람들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태도, 즉, 바로 맞받아 쳐서 하던 말을 한 템포 쉬어서 해보기도 하고, 양보심을 이런저런 일에 발휘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상당한 시간을 보낸 후 내게 돌아온 평가는 어떠했을까?

놀랍게도 내게 돌아온 평가는 가증스럽다는 비난이었다.

당시 충격을 받은 나는 혼자 깊은 생각에 빠졌었는데, 오랜 고민 끝에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그냥 이유가 없이 나를 싫어하는 거구나. 이유라고 대는 것은 자기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합리화 명분에 불과했구나'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 경험 하나가 뭐 그리 대단한 근거가 될 수는 없겠지만 자신 있게 말하는데 당신을 누군가가 싫어하는 것은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단지 싫어서 싫다고 말하기 위한 핑계를 찾는 것뿐이다.

그냥 당신의 존재 자체가 싫은 것이다.


상황이 그러한데 왜 굳이 내가 인간관계 전략을 바꿔야 하는가?


어쨌든 나는 이러한 전략 방침을 정한 이후로 내가 편한 대로 인간관계를 대하고 살아가고 있다.

나를 환영하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는 아무리 그 사람이 내게 유용하다고 예상되어도 과감하게 버리고 있다. 그로 인해 일시적으로 손해를 본 적도 있다. 그러나 심적으로 매우 편안하고 나와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 손해를 넘어서는 이익도 얻어 결과적으로 되지도 않을 인간관계에 미련을 두었던 과거보다 훨씬 질 좋은 인간관계와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인간관계는 사회 속에서 당신이 살아가는데 정말 중요한 요소인 것은 분명하다.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적정한 숫자의 적절한 설정이 구축된 관계가 유용하고 원만하게 유지될 수 있는 진정한 인간관계이다.

따라서 인간관계에 전적으로 종속되어 휘둘러질 필요 없다. 어차피 모든 인간관계가 나에게 유익한 것만도 아니고, 내가 모두 합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현실적 방법도 없다. 자기중심적으로 마련된 전략만으로 인간관계를 맺고 유지하면서 살아가는데 충분하다.

그러니 과감하게 당신의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정리하라!

그래야 가뜩이나 어려운 인간관계,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인간관계는 같이 퍼즐을 맞춰가는 것이지 어느 한쪽의 희생이 동반되는 것이 아니다.


V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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