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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범사랑북극곰 Jul 25. 2023

3번째 5일간

11일째부터 15일째까지

11일째사춘기


드디어 시험이 내일 모레면 끝이 난다. 너무 감격스럽다. 

물론 공부를 완전하게 하지 않아 조금 불안한 것도 있지만 학원에서 나를 가르치셨던 지금까지의 선생님들을 신뢰하며, 나를 믿기로 했다. 나의 신뢰가 내일의 자신 있는 나를 만든다! 

너무 감성팔이였나? 요새 시험기간이라 그런지 내가 너무 감성적인 것 같다.     




11일째갱년기


오늘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3년째 되는 날인데 아이들은 나만큼 애통해보이지 않는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아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한테야 내 인생의 절반을 같이한 아버지지만 애들한테는 그냥 아빠의 아빠에 불과할 테니... 엄청나게 많은 교감이나 상호작용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도 하고 아빠한테 위로도 한 아이들은 최선을 다한 것일 텐데 그래도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내가 늙어서일까? 옹졸해서일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전부 아버지를 잊어버린 것 같다. 왜 아버지는 그렇게 사셨을까? 만감이 교차한다.  



                  

12일째사춘기


내일이면 드디어 시험이 끝난다. 너무 너무 신난다. 사실 내일 시험보다 내일 끝나고 놀 생각에 너무 기분이 좋고 들뜬다. 시험기간 동안은 힘도 안 나고, 기분도 썩 좋진 않았지만! 역시 시험 끝나기 하루 전날에는 기분이 들뜰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빨리 끝나서 애들이랑 놀고 엄마랑 쇼핑 다니고, 아빠랑 전시랑 운동 다니고 싶다. 얼른 자유의 몸이 됐으면 좋겠다. 00이즈프리!!!     




12일째갱년기


헐~ 시험이 내일 끝난다고 벌써 들뜨는 모습이라니... 

내일 시험이 남았다고! 그리고 공부도 안하고 – 그렇다고 보기엔 책상에는 제법 앉아있었다 – 본 시험이면서 뭐 그리 끝나는 것이 중요할까? 날날이 놀쇠여도 부담은 느끼나보지? 하하하하하! 귀엽다. 귀여워~ 


요즘 시국이 어수선하다. 

새로운 정부가 대북노선을 강경하게 정하면서 여러 가지로 시끌시끌하다. 대응 전략이야 여러 가지가 있고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국민이 뽑은 정부의 몫이겠지만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혹여 강경한 우리의 태도가 자칫 북한을 자극해서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하나라는 불안감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뭐~ 나야 세상 태어나서 할 수 있는 일 할만큼 다 해봤고 삶에 그리 큰 미련도 없지만 희망차게 세상을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은 어쩌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안감이 커진다. 휴~




13일째사춘기


시험이 끝났다. 드디어 00이즈프리가 됐다. 

감격스러운 마음과 함께 시험 점수에 대한 부담도 밀려왔지만 그냥 홀가분한 감정과 함께 훌훌 털어버렸다. 

같이 하교를 하는 친구와 같이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봤다. 생각만큼 재밌진 않았지만, 배우들의 연기 실력에 다시 한 번 놀라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본 영화는 ‘오펀: 천사의 탄생’, 스릴러물인데 클라이맥스 부분이 감정이 격해짐을 잘 표현해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보게 되었던 것 같다. 스릴러물을 자주 보진 않지만, 가끔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13일째갱년기


시험 끝났다고 신나게 놀아 제끼는 막내를 보며 ‘앞으로 공부는 안하려나보다’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공부할 때는 여름철 철지난 해삼처럼 쳐져 있으면서 놀 때는 완전히 에너자이저이다. 

지치는 법이 없다. 쩝~ 어쩌겠는가? 받아들여야지...


힘이 넘치는 막내에 비해 나는 요즘 왜인지 모를 무료함과 이유 없는 짜증이 가득하다. 집에 와서 혼자 멍하니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아내가 왜 그러냐고 해서 내 감정에 대해 이야기 했더니 “당신 가을 타잖아? 가을!”이라고 간결하게 정리해주고 총총 사라졌다. 

아! 어쩔 땐 아내가 나를 나보다 더 잘 안다. 

내가 낳은 딸내미 속도 모르겠는데 완전히 남인 나를 아는 것 보면 참 신기하다. 물론 무섭기도 하다. 




14일째사춘기


아무 것도 안하는 잉여의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다가 중학교 동창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같이 한강에 놀러갔다. 한강에 가기 전 근처 마라탕 가게에 가서 마라탕을 맛있게 먹었는데 친구는 마라탕을 먹고 입술이 진동을 한다며 한참을 얼이 빠져 괴로워했다. 

그 모습이 왜 그리 웃기던지 계속해서 실없이 웃음이 나왔다. 함께 마음이 편안해짐도 느꼈다. 

역시 오래된 친구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편안함이겠지? 

사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라서 할 얘기가 많았지만, 원래 친했던 4명의 친구들이 모두 다 모이면 할 생각에 맘껏 이야기하지 않고 적당히 추억팔이와 소소한 일상을 주고받았다. 

게다가 친구의 추천으로 가죽잠바 겟 잇! 친구가 골라줘서 더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오빠도 잠깐의 휴식시간을 갖기로 해서 어제부터 나랑 재미있게 놀고 있다. 너무 즐겁다. 

항상 아빠가 놀쇠라고 놀리지만 노는 게 제일 좋다. 평생 이렇게 살 순 없을 테니 지금은 놀아야겠다. ㅋ   



  

14일째갱년기


시험 끝난 기념으로 막내에게는 일체 관여 안하고 있다. 누차 말하지만 누가 보면 수능이라도 끝난 줄 알겠다. ㅎ 오늘은 아예 고3인 지 오빠까지 꼬드겨서 함께 놀고 있다. 뭐~ 어찌 보면 오누이끼리 사이가 좋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어떤 집은 남매끼리 사이가 너무 안 좋아서 병원 상담을 받을 지경이라는데... 


오늘 우연히 뉴스를 보고 사용하지는 않지만 약정만 해놓은 마이너스 대출의 내용을 확인해보았는데, 이런~ 연 이자가 거의 9%에 육박한다! 

우와~ 유사시에 대비해서 만들어놓은 것이고 사용할 일이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만약 빚을 지게 되면... 

그 자체로 지옥문이 열릴 듯하다. 세상이 살기 너무 어려워지고 있다.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우리 사회는 심각한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나는 그래도 남들보다 조금 더 버니까 괜찮을 것이라는 오만에 빠지면 오판이다. 사회의 경제적 빈곤계층이 버티지 못하고 구성체에서 이탈해버리면 결국 그 바로 위의 계층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즉, 남들이 어려워지면 시간이 문제일 뿐 언젠가는 나도 어려워지게 된다는 말이다. 

공동체의식이 필요한 시기이다. 누굴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15일째사춘기


즐겁다. 오늘은 가족 다 같이 나들이를 갔다. 이게 얼마 만에 나들이였는지 모르겠다. 

평소 즐겨보던 유튜브 채널에서 나오던 시바견이 머무르는 카페에 방문하기 위해 들뜬 마음으로 이태원에 도착했는데, 오호~ 우연히 이태원 축제날과 겹쳐서 한참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예쁜 것도 너무 많고, 사고 싶은 것들도 간간히 보였다. 정말로 갖고 싶은 예쁜 모양의 목걸이를 발견하고 가격을 물어봤지만, 너무 비싸서 포기하려고... 하긴 뭘 해! 자꾸 눈에 밟혀서 결국 질렀다! ㅋㅋ 

엄마가 골라주신 팔찌도 너무 맘에 들었다. 

그렇게 열심히 구경을 하면서 카페로 향하다가 추억의 뽑기에 도전했는데, 오빠는 35cm 잉어가 걸렸다! 

고작 사탕인데 너무 크다보니 나까지 괜히 창피해지는 느낌도 들었지만 생각해보니 축제인데 어때? 

웃음이 샘솟는 그저 즐거운 마음만 가졌다. 그렇게 카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아빠도 늦게 합류해 같이 외식을 하고 다 같이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 가족들과 있으면 편하고 행복하다.     




15일째갱년기


코로나 때문에 몇 해 동안 잠잠하던 이태원 축제가 오늘 다시 시작되었다. 

축제를 하는지 몰랐는데 강아지 카페를 간다고 나간 아내와 아이들이 갑자기 전화를 해서는 축제가 열렸으니 얼른 오라고 재촉을 해서 알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이태원과 매우 가깝게 살다보니 축제와 인연이 깊은데, 막내가 어릴 때 TV방송국에서 부녀지간의 모습이 좋아 보인다며 인터뷰를 따간 적도 있었다. 

오늘도 역시 사람은 무지막지하게 많았다. 원래 사람들 많은 곳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오늘은 모처럼 이루어진 축제가 싫지 않았다. 집사람과 애들이 먼저 버스로 축제 장소로 가고 나는 운동 삼아 집에서 걸어서 나중에 합류했다. 기분이 들떴는지 아내가 자꾸 수제맥주를 한잔 마시자고 해서 함께 마시긴 했는데 아무리 축제라지만 너무 비싼 맥주 값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매사 약간 무덤덤한 큰애에 비해 막내는 그야말로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애견카페부터 자기가 좋아하는 장신구 구매까지 신나서 용돈을 써나갔다. 추억의 뽑기로 자기 오빠 것보다는 작지만 거대한 사탕을 들고 다니기에 먹지도 않을 것을 왜 돈 주고 뽑았냐니까 그게 인생의 재미라고 되려 큰소리 쳤다. ㅋ 이제 20년도 채 안산 놈이 인생은 ㅋ 누구나 그렇겠지만 가족들과 사소하지만 행복하게 보내는 시간은 내게 충분한 엔돌핀을 제공하는 것 같다. 가벼운 포근함이 나를 감싸고 나를 충전해주니 말이다. 


행복했던 오늘의 한 가지 옥에 티! 

오늘 전 국민의 메신저 카카오톡과 다음 포털, 카카오T 등의 서비스가 먹통이 되었다. SNS에도 불편하다는 포스팅이 무지하게 올라왔다. 

그런데 왜 나는 하나도 안 불편하지? 나는 대체 사회생활을 어떻게 해온 거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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