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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범사랑북극곰 Jul 25. 2023

5번째 5일간

21일째부터 25일째까지

21일째사춘기


학교에서 지루해 하품만 나오는 하루였다. 

얼마 전에 학교를 가지 않아 동아리 활동을 안했는데 갑자기 오늘 해야 한다고 했다. 

하품을 하면 큰 이변이 생기니 하품을 자주 하면 안 되겠구나 싶다. ㅎ 동아리 활동은 역시 지루하다. 

특별한 활동은 없고 가끔씩 밖에 나가 전시를 보러갈 뿐이다. 그렇지 않은 날은 그냥 동아리실에 박혀서 자습으로 위장한 자유시간이 주어지는 날이다. 

물론 자유시간이라고 해봤자 조용히 해야 해서 떠들 수도 없어 답답하고 졸리기만 한 시간이라 잠시 눈치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동아리실이 꼭대기 층이라 나가면 옥상같이 장소가 마련되어있다. 당연히 그곳엔 앉으라고 의자가 몇 개 있고, 난 의자를 가져다 놓은 사람의 의도를 고맙게 받아드려 보기 좋게 누워있었다. 

배가 조금 아팠던 터라 바람이랑 밖의 소리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잠들었던 것 같다. 

잠을 깨보니 20분정도가 지났고 괜히 놀라서 동아리실로 들어갔는데 역시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여전히 지루함... 그냥 폰만 보다가 집에 왔다. 질리도록 하품이 나오는 날이었지만 억지로 웃으면서 하루를 마무리 했다. 그래야 내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아서;;;;;     




21일째갱년기


막내 녀석이 자기가 하품을 할 때마다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길래 왜 그렇게 생각 하냐고 물었더니 수업시간 내내 하품을 했는데 오늘 학교에서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왜 공부에 집중 안하고 하품만 해댔냐고 다시 물었더니 아차 싶었는지 배가 아프다고 화장실로 도망 가버렸다. 

다시 화장실 밖에서 “으이구~ 이 녀석아! 그래! 그래도 하품만 하고 잠은 안자서 다행이다.”라고 했더니 “아냐~ 아빠 하품만 하면 선생님께 예의가 아닌 거 같아서 조용히 잤어.”라는 게 아닌가? 

이거야 원... 웃어야 하는 건지 울어야 하는 건지... 


오늘 전화로 아주 친한 친구 녀석과 잠깐 사담을 나누었는데 그 녀석은 자기 아내가 주는 밥상을 받아본지 오래되었다고 투덜거렸다. 

그래서 내가 “나는 밥 먹을 때 김치나 국도 없어도 되고, 잡곡도, 찬밥도 괜찮다. 

제사나 명절 때 전 부칠 필요 없고, 너도 알다시피 아무거나 줘도 잘 먹는다. 그런데 아내가 말을 안 듣고 꼭 삼시세끼 챙겨가며 고기랑 육첩 반찬을 해주니 참~ 살만 쪄서 죽을 지경이다. 가장의 권위가 바닥을 친다. 

도통 내 말을 안 들어!”라고 농담을 했는데, 10초 정도 말이 없던 친구는 한숨을 쉬며 “야! 끊어라 XX야! 재수 없다!”라고 말하곤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 참 각박한 세상이다. 농담이라니까! 농담! ㅋ 내가 좀 심했나? ^^;;;;;;          



          

22일째사춘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들린 것은 아빠와 엄마의 대화소리~ 커튼을 걷어 아침인 것을 확인한 뒤, 눈에 따갑게 들어오는 햇볕을 피하고는 아빠랑 엄마의 대화 내용이 궁금해서 안 일어난 척 하고 침대에 앉은 채 귀를 기울였다. 

이야기의 주된 대상은 오빠와 나였고, 듣기 좋은 말도 싫은 말도 있었다. 일기지만 내가 몰래 들은 이야기를 적지는 않으련다. 다만 내가 새롭게 갈 길을 두 분이 의논했고 나 역시 그에 공감했다는 내용만 적으련다. 끝! 여기까지다. 


어찌되었건 오늘부터 책을 많이 읽기로 했다. 

그것보다 내 에어팟이 실종됐다. 어딜 갔을까 욘석이! 아마 학교에서 비몽사몽 일어나 비척대며 집에 온 것이 문제인 것 같다. 

만약 도로에 떨어뜨렸으면 내가 떨어진 소리를 들었을 텐데~ 에어팟에 배터리가 없어 하루 종일 사용하지 않았는데 당최 가방을 뒤져봐도 없어서 포기했다. 아마 학교에 있는 담요에 있지 않을까 추측만 난무한다. 

학교에 있기를 제발~~~~ 당연히 아빠에게는 비밀이다. 난리가 날 테니까!     




22일째갱년기


요 녀석이 분명히 뭔가 있는데... 어영부영 나를 피한다. 대체 뭘까? 하도 포커페이스가 심한데다 걸핏하면 화장실로 도망가거나 배가 아프다고 침대에 누워버리니 추궁하는데 한계가 있다. 

추궁해봐야 무서워도 안하지만...


아내와 막내의 진로에 대해 아침 일찍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도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공부하게 돕고 진로를 잡아줄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둘이 제법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나름 결론을 내렸다. 이 녀석이 잘 따라주어야 할텐데... 

다행히 아침에 일어난 막둥이와 살짝 이야기해본 결과 열심히 노력해보겠다는 답변을 얻었다. 씩씩하게 나아가봐야겠다. 


날이 좋아서 늦은 오후 이태원을 거쳐 삼각지를 지나 명동까지 방향을 잡고 산책을 나갔다. 삼각지에 다다르니 대통령실을 경호하기 위한 엄청난 경찰버스의 행렬! 시위가 있는가보다. 안전을 위해 당연한 조치이지만 솔직히 풍경은 개판이었다. 길거리에도 경찰들이 넘쳐나 걷기 조금 불편했다. 가뜩이나 평소에도 번잡스러운 삼각지 주변은 더욱 심각한 정체가 빚어지고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와 남대문까지 달렸는데... 

엥? 남대문 앞도 수많은 사람들로 바글바글! 

엄청난 스피커의 음성과 노래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리기 시작했다. 아~ 내가 오늘 코스를 잘못 잡았구나. 

나는 좌든 우든 민주적 시위에 찬성하는 사람이고 그로 인한 약간의 불편은 시민으로서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는 입장인데... 

토요일에 사람의 귀를 찢을 듯 떠들어대는 시위는 공감도, 이해도 되지 않았다. 이건 시위가 아니라 그냥 신경질 아닌가? 아이들에게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의무일 텐데... 

글쎄 요새는 잘 모르겠다. 내가 그런 모습인지 아닌지...     




23일째사춘기


오늘은 고대하고 고대하던 KCM의 ‘사랑아’가 나온 날이다. 

녹음실에서 노래를 녹음하는 모습을 맛보기로 들었는데, 너무나도 내 취향이라 설레면서 기다렸었다. 

캬! 듣자마자 사극풍과 함께 시원한 고음이 귀에 때려 박히는 느낌이었다. 

노래를 들으며 요새 챙겨보는 ‘환승연애2’ 새로운 화도 봤다. 다음 주가 마지막 화인 것 같아 조금 아쉽지만 부디 다들 좋은 선택을 하셨으면 좋겠다. 물론 커플 브레이커로서 다 깨지는 것도 바람직하다 ㅎㅋ


책도 읽었다. 퀀텀 리딩을 활용했다. 5학년 담임 쌤께서 가르쳐주신 방법인데 매번 책을 그렇게 읽으니, 책을 너무 빨리 읽는 것이 버릇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 방법을 계속 써야할지 고쳐야할지 고민 중이다. 분명히 책은 빨리 볼 수 있는데 책을 다 본 건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오늘 본 책은 ‘오만과 편견’, 두꺼웠다. 하루 종일 이것저것 잡스럽게 일 본 것 빼곤 책 읽는데 시간을 썼다. 거의 11시간 넘게 읽은 것 같다. 놀랍다. 지금 일기를 쓰고 있는 시간은 새벽인데, 방금 전까지도 읽다가 너무 집중이 안 되는 것 같아 일기를 쓰고 있다. 빨리 자야겠다. 다들 잘 자길 바란다.      




23일째갱년기


하루 종일 책을 붙들고 있는 막내가 대견하기도 하고 집요해보기도 했다. 

아니 그 두꺼운 책을 하루 만에 다 읽으려고? 그게 되나? 


어제 밤 꿈에 대통령이 궁궐 같은 곳에 식사를 하자고 나와 내 일행을 초청해서 함께 동행 하는 꿈을 꾸었는데 갑자기 식당 앞에서 밥은 너 혼자 먹어야 할 것 같다며 휙 하고 가버렸다. 

복권을 사야 하나? 액땜을 해야 하나? 

마침 몸 컨디션도 별로고 저녁 8시부터 잠자리에 누웠다. 당연히 일기도 여기까지만 쓸 거다.          




24일째사춘기


체육이 있는 날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이다. 

오늘 체육시간이 있기도 했고 6교시였기 때문에 너무나 굿~ 오랜만에 배드민턴도 치고 기분 좋게 지치면서 땀도 내고 너무 즐거웠다. 

20분 정도 치고, 반에서 같이 노는 애들이 미리 누워 있던 매트에 난입했다. 나랑 같이 배드민턴을 치겠다고 매트에 눕지 않았던 친구가 나보다 먼저 와 누워있는 것을 보고 그 속도에 놀라웠다. 또한 애들은 마치 그물처럼 얽혀있었는데 그 꼬라지로 게임을 하는 집념이 놀라웠고, 무엇보다 아무도 그런 자세를 불편하다고 말을 안 하는 것이 가장 놀라웠다. 

아무래도 위험한 녀석들이랑 친구가 된 거 같다. 어휴~


아! 맞다! 그리고 에어팟은 역시 학교에 있었다. 담요에 없길래; 얽? 했지만 혹시 몰라 책상 서랍을 봤더니 있길래 동그래졌던 눈을 풀어 헤헤 거리며 안도한 건 아무도 몰라야한다. 여기에만 적는 내 비밀이다. 

혼자 헤헤 웃는 걸 애들이 봤으면 분명 머리가 어떻게 된 줄 알겠지, 내가 봐도 그럴 거 같다. 조심해야지, 이젠 에어팟 욘석을 밖에 빼놓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학교 끝나고 갔던 다른 학교 축제였다. 

사실 힘들기만 하고 할 건 정말 없었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 많아 나름 즐길 만 했다. 하지만 역시 사람이 너무 많아 기가 쪽쪽 다 빨리는 느낌이었고, 너무 힘들어 집에 일찍 왔다. 예전엔 사람 많은 곳에도 잘 있고, 낯도 잘 안 가렸는데, 지금의 나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걸 새삼 느끼기도 한다. 근데 나랑 가장 닮은 사람 중 하나인 엄마는 사람 많은 곳 하나도 안 피곤해하던데... 

이건 아빠를 닮았나? 영어 수행도 하고 자야해서 눈꺼풀에 테이프를 붙여서 버텨야겠다. 

너무 피곤하다. 자고 싶다.     




24일째갱년기


체육 때문에 힘들었다면서 다른 학교 축제에 간다는 막내에게 꼰대 짓을 했다. 

‘같이 가는 애들이 혹시 노는 애들이냐?’ ‘가서 이상한 남자애들이랑 어울리면 안 된다.’ ‘늦게 오지 말고 얼른 와야 한다.’ 등등... 

아빠가 이렇게 괴롭히는데도 동행하는 친구들 일일이 응답해주고 알아서 일찍 들어온 딸내미를 보고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막내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지도 굳고 행동에 책임질 줄 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을을 타는 것도 그렇지만 요새 여러 가지로 복잡한 일이 많다보니 유난히 더 그러는 것 같다. 


오늘 지방으로 갔던 출장 역시 좋은 결과가 없었다. 전체적으로 일이 잘 안 되는 것은 아닌데 유독 최근에 번거롭고 힘들다고 느낀다. 


막내가 어디서 봤는지 왜 궁금한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내게 물어봤다. “아빠는 보수야? 진보야?” 그래서 “아빠는 특정 정치인이나 보수, 진보를 지지하지 않고 아빠의 인생 가치인 정의를 추앙하며 법치와 제도주의를 신봉하는 보통의 시민일 뿐이야”라고 답해줬다. 

물론 이 대답 뒤에 “뭔 소리야?”라는 막내의 반응 역시 당연히 있었다. 쉽게 말해주지 않는 것이 잘난체 하는 것 같아 별로라며 자기 방으로 사라져버렸다.

아니 제대로 듣지도 않을 거면 왜 물어 본거야? 흥칫뿡이다! 



                                                                                        

25일째사춘기


친구들과 생태수행 때문에 인스타그램 계정을 새로 만들었는데, 팔로워가 300명은 있어야한다는 선생님 말에 자극 받아 있는 친구 없는 친구 싹싹 긁어다가 팔로워를 늘렸다. 

한순간에 연예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몇 초에 한 번씩 팔로워가 느는데 역시 유명인은 피곤할 것 같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ㅋㅋㅋ 나 벌써 유명인? 


집 가는 길에 설빙을 갔는데, 새로운 맛이 있길래 과감하게 샀다. 

그런데 맛이, 맛이!!! 솜사탕 맛과 딸기가 섞여 오묘하게 상큼 뽀송한 맛이었다. 달다는 말 이외에는 말로 표현하기엔 모호한 맛이니 글로는 표현 못하겠다. 

저녁엔 오빠를 학원에서 데려 오려고 엄마랑 같이 대치동에 갔는데, 이번 년도면 이 짓도 끝이 난다는 사실에 속시원도 하지만 섭섭하기도 했다. 이런 게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겠지? 나쁘지는 않은 느낌이다. 

푸히! 그런데 이렇게 글을 쓰니 내가 수험생인거 같다. ‘지금을 즐기자’가 나의 좌우명인데, 먼 미래에 나는 이 좌우명대로 살 수 있을까? 엄빠가 없는 삶에서도 이렇게 살 수 있을까?     




25일째갱년기


몇 년 전에 막내가 페이스북을 몰래 하다가 – 아주 작은 나쁜 짓을 한 것을 내게 들켰다 – 다시는 SNS 하지 말라고 사생결단을 낸 적이 있었는데 오늘 이 녀석이 인스타그램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도 내가 지켜보는데도 버젓이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최대한 차분하게 “아빠랑 대학생 될 때까지 어떠한 SNS도 안하기로 하지 않았나?”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응! 근데 아빠 이거 수행 때문에 하는 거야. 숙제도 하지 마?”라는 답을 들었다. 

부끄러웠다. 고등학생이 된 딸을 못 믿다니... 

정말 진지하게 반성했다. 그리고 딸에게도 사과했다. 

아빠가 너무 섣부르게 널 판단했다고, 널 못 믿어서 정말 미안하다고... 

그런 내게 막내는 “뭘 새삼스레 그래?”라며 내 계정에 이미 팔로우 신청을 해놓았다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총총 사라졌다. 

낮에 오래 동안 알아온 사람과의 신뢰가 금이 가는 일이 있었는데 하루 종일 기분이 더러웠는데 저녁에 막내 때문에 잊혀졌다. 

참~ 인생은 오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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