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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귀히 여기는 마음

J.M. 쿳시 <폴란드인>

by 이재상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제가 영어로 제대로 설명을 못 하기 때문이에요. 다른 언어로도 마찬가지죠. 폴란드어로도 마찬가지고요. 그것을 이해하려면 당신은 침묵하고 들어야 해요. 음악이 말을 하게 하세요. 그러면 이해하실겁니다."


- <폴란드인> (J.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말하는 나무)





서로 통하지 않아도 새겨지는 기억들


사십 대 스페인 여자와 칠십 대 폴란드 남자. 여자는 남자의 이름을 발음하기조차 어려워 그저 '폴란드인'이라고 부릅니다. 남자는 전성기를 지나 저물어가는 피아니스트. 여자는 친구의 부탁으로 이 폴란드인의 바르셀로나 방문과 연주회를 돕는 일을 하게 됩니다.


<폴란드인>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서로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남다른 감정을 느끼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역사상 처음으로 부커상을 두 번 수상한 작가 쿳시는 특유의 절제되고 지적인 문체를 보여줍니다. 소설은 두 남녀의 기묘한 끌림을 묘사하면서 소통이 불가능해 보이는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의 섬세한 결을 탐구합니다.


여자는 폴란드어를 모르고, 남자는 스페인어를 모르기에 영어로 소통해야 하지만 남자는 영어에 서툽니다. 그래서 그의 생각과 감정을 온전히 여자에게 전할 수 없습니다. 말이 안 되면 음악으로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싶어 직접 연주한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3번 b단조 (작품번호 58) 녹음을 보내줘도 여자에게는 암호 같습니다. 남자의 방식과 여자의 방식은 서로 통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이 폴란드인은 왜 그녀에게 빠진 걸까?',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여자는 질문이 많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해결해야 하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하는 마음이 소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남자의 뜻밖의 연락을 받고 남자가 있는 곳으로 여자가 찾아가기도 하고, 함께 외지에서 며칠 머물기도 합니다. 마치 단테와 베아트리체 또는 쇼팽과 상드의 이야기 같습니다. 예술가와 그의 영감이 된 존재, 혹은 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깊은 정신적 유대를 맺었던 역사 속 연인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확실하게 남겨지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기억'입니다.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우리에게는 기억이 있어요. 기억에는 시간이 없어요. 나는 당신을 기억 속에 넣어둘 거요. 그리고 당신도, 어쩌면 당신도 나를 기억할지 모르죠." (P. 103)

(중략)

남자는 기억의 힘을 신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그에게 망각의 힘에 대해 얘기해주고 싶다. 그녀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잊었는가! (P. 103)


남자는 기억의 영속성을 믿는 반면, 여자는 망각이야말로 인간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생각하며 둘 사이의 시각차를 드러냅니다. 이처럼 기억과 망각에 대한 서로 다른 태도는 이 관계의 복잡한 양상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서로 귀히 여기는 마음


소설의 끝에서 여자는 결국 '기억의 힘'이 '망각의 힘'보다 더 크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남자와 함께한 기억들이 쌓여 남자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었으니까요. 소설 후반부에 여자는 애써 외면할 수 있지만 남자의 일에 마음을 쓰게 되고,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지만 남자의 상황에 대해 신경을 쓰게 됩니다.


그런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바로 사랑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 사랑의 수만 가지 감정 중에 하나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가능하다면 소설 <스페인인>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남자의 관점이 담긴 소설이 있다면 이 관계를 더 잘 해할 수 있을까요?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어도 사랑은 이토록 오묘합니다.


스페인 여자와 폴란드 남자. 이해해야 사랑할 수 있는 여자. 듣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사랑할 수 있는 남자. 서로 달라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 시작점과 방향이 다른 성향과 마음가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두 사람 사이에 '서로 귀히 여기는 마음'이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서로 귀히 여기는 마음'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랑일까요? 아니면 그보다 더 근원적이고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인간적인 끌림일까요? 쿳시는 명확한 답 대신, 독자들에게 그 오묘한 관계의 본질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게 만듭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이해할 수 없는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그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감정의 파동을 경험하곤 합니다. 소통의 간극 속에서도 피어나는 인간적인 연결의 의미를 곱씹어보고 싶은 독자에게, <폴란드인>은 깊은 사색의 시간을 선물할 것입니다.



ⓒ 이재상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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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