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윌리엄스 <스토너>
-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대단할 것 없이 평범한 삶을 산 한 사람이 죽음의 가까이에서 묻습니다. 삶의 끝자락에서 '난 무엇을 기대하며 살았지?'라고 자문할 때, 그 마음은 무엇일지 생각합니다. 기쁨이나 슬픔 같은 감정일지. 아니면 그저 떠오르는 이미지일지. 그 순간에 이른다면 아마도 그것이 감정이든, 이미지이든 가만히 들여다보는 관조의 상태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소설 <스토너>는 특별할 것 없는 한 남자가 조용히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이 남자의 평생을 그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 소설이라고 극찬하는 소설. 언젠가는 읽어야지, 눈으로 담아두고 '언젠가 나도 꼭 읽어보리라' 생각했던 소설. 도대체 이 소설에 무엇이 있기에 그렇게 극찬을 하는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뒤늦게 명저에 도전할 때 저는 보통 '그럼 나는 이 소설에서 무엇을 느끼는지, 이 소설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게 될지' 궁금해하면서 읽기를 시작합니다.
소설 <스토너>에는 그 '무엇'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영웅적인 서사나 놀라운 반전이 없습니다. 대단하고 영감을 주는 철학이나 통찰을 주는 메시지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1891년 아주 작은 농가에서 태어나 1956년까지 영문과 교수로 살다 간 윌리엄 스토너 교수의 평범하고, 특별히 주목할만한 것이 없는 이야기가 이 소설의 전부입니다. 하지만 <스토너>는 막연하게 기대하고 예상했던 자극적인 서사, 명쾌한 교훈 대신, 독자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조용히 위로를 얻을 여백을 줍니다.
'그런데도 왜 이 소설이 좋을까?', '소설을 다 읽고 덮어도 덮어지지 않는 이 여운은 도대체 무엇일까?' 소설을 다 읽고 떠나지 않는 질문이었습니다. 다시 서두의 문구를 생각합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주인공 스스로 자신의 인생이 남들이 보기에는 실패작으로 보일 것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 재차 또 묻습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라고요. 그리고 소설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기쁜 같은 것이 몰려왔다. 여름의 산들바람에 실려온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것없어 보였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 (P. 390)
주인공은 삶의 끄트머리에서 자신이 살면서 무엇을 기대했는지 자문해 보고, 실패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쓸데없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는 그저 '나 자신의 인생이 있었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닐까요?
'기대'라는 말에는 예상, 예측의 의미도 있고 바람, 소원, 욕망의 의미도 있습니다. 그것들이 뒤섞인 질문에 답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삶은 늘 예상, 예측할 수 없으니까요. 바람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사는 것입니다. 진심을 다해 선택하고, 최선을 다해 행동할 뿐입니다.
주인공 스토너 역시 소설 내내 그러했습니다. 그는 서툴렀을지언정 자신이 사랑한 문학 연구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평생 진심을 다했습니다. 아내와 딸, 교내 주변 동료들과 힘겨운 관계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버텨냈습니다. 성취하고 이겨내기도 하고, 잃어버리고 좌절하기도 했습니다만 그의 선택과 행동에 늘 진심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세상에 어떤 삶도 평범한 삶은 없습니다. 주인공 스토너의 삶을 '평범하다' 또는 '성공했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거나 판단하고 싶지 않습니다.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 늘 따라붙었던 '평범한, 유명한, 성공한, 실패한' 뭐 이런 단어들이 참 허무한 것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삶을 기대한다는 것은 그런 인생의 한 순간만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토너의 삶은 극적인 기쁨과 분노, 노골적인 슬픔과 환희보다는, 내면 깊숙이 스며드는 조용한 환희와 쓰라린 실망, 말없이 감내하는 고독과 소박한 위안이 교차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기쁘다가도 화나고, 슬프다가도 즐거운 삶. 인생의 감정도, 인생의 순간도 아주 잠시일 뿐 늘 견디고 인내해야 하는 스토너의 삶은 우리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상할 수 없고, 무엇을 바라기도 어려운 것이 삶이라면, 삶이라는 것은 아주 잠시인 감정과 순간들의 연속입니다. 그러니 삶을 기대한다는 것은 그저 '그때그때 지금 나의 진심과 지금 나의 최선으로 삶을 쌓아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와 다르지 않은 삶.
나와 다르지 않을 삶.
소설 표지에는 스토너의 얼굴 한쪽이 수 권의 책들로 쌓여 있습니다. 그저 최선을 다해 살아온, 그게 전부인 한 남자의 이야기가 나와 다르지 않다고 느껴질 때 그 이야기가 참 귀하게 여겨집니다. 소설 <스토너>에 그런 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평범하다고 느껴지는 삶 속에서 조용한 의미와 위안을 찾고 싶을 때, 스토너의 이야기는 깊은 공감과 오랜 여운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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