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1 to Taipei] 중국어와 영어

by 이지현

[D-21 to Taipei] 중국어와 영어


중국어 단어를 외우는 중에 재미있는 단어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电影 [diànyǐng], 电视 [diànshì ]란 단어였다. 앞에 나온 한자는 한알못(한자를 알지 못하는 사람)인 나도 알게 모르게 주변에서 자주 본 단어였다. '电? 전기란 뜻 아닌가?' 앞 한 글자는 대충 알겠는데 뒤에 한자들은 무슨 뜻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네이버를 켜 한자씩 검색해 보았다.


번개 전

1. 번개

2. 기, 전류

3. 전화, 전보


그림자 영

1. 그림자

2. 환상(幻像), 가상(假象)

3. 형상(形象ㆍ形像), 모습, 자태


볼 시

1. 보다

2. 엿보다

3. 보이다


오호. 그러니까 '电影 [diànyǐng](영화)'는 번개 전에 그림자 영을 쓰고, '电视 [diànshì](티비,TV)'는 번개 전에 볼 시를 쓴다 이거지? 대충 생각해보니 영화는 '전기+그림자(컴컴한 곳에서 봐서 그런 듯)', 티비는 '전기+보다'의 조합인 것 같았다. 진짜 보이는 그대로 표현했다. 마치 스피드 퀴즈 같다. 그거 있잖아! 뭐? 전기가 흐르고 우리가 보는 거! 아, 티비?


내가 느끼기에 중국어는 직설적인 언어다. 아마 그래서 '중국인들은 세다'는 느낌을 받는 것 같다. 같은 동아시아지만 예를 중시하고(존댓말이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돌려 말하기를 잘하는 한국, 일본과는 전혀 다른 화법을 구사한다.


한국인이 가장 접근하기 쉬운 언어가 일본어인 이유는 어순이 우리나라와 같기 때문일 것이다. 동사가 마지막에 오는 구조.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닐 테다. 끝까지 들어봐야 아는 대신 그만큼 말 끝을 흐리기도 쉬운 언어다. 말하는 도중에 하고자 했던 말을 바꾸기도 쉽다. 변주가 가능한 언어다. '있잖아, 내가 너한테....' 여기까지만 들으면 상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사랑 고백을 하고 싶은 것인지, 비밀을 털어놓고 싶은 것인지, 돈을 빌리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물론 표현을 순하고 부드럽게 하기 좋은 언어다. 하지만 강한 확신이나 표현을 하기에는 이질감이 드는 언어다. 특히나 생각이나 의견을 전할 때가 그렇다. 그래서 '아마', '내 생각엔', '~걸?' 이런 말들을 많이 붙인다. 기본적으로 내가 실수할 수도 있고, 100프로 확실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겸손과 함께 최대한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하려는 의도가 깔려있을 것이다.


반면 중국어는 주어 다음 바로 동사가 온다. 영어와 어순이 같다. 중국어와 영어는 주어 다음 바로 동사가 오기 때문에 말을 길게 늘일 수가 없는 언어다. '내가 사랑해... 너를....' 아. 얼마나 찌질 해 보이는가. 나는 살면서 'I Love... you...' 같은 식으로 말하는 서양인을 본 적이 없다. 주어 다음 곧바로 동사가 오는 언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에겐 '내가 사랑해' 여기까지 질렀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문장을 끝까지 완성시키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거다. 문장에서 동사가 차지하는 중요도를 생각해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니까 일단 말을 꺼냈으면 속전속결로 끝을 봐야 하는 언어다. 또한 중국어 특징인 성조 때문에 목소리를 크게 하여 제대로 뜻을 전해야 한다. 성조가 달라지면 뜻도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대화 소리가 빠르고 크게 들리는 언어다. 중국어가 싫다 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아마 이 때문이라 답할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어가 단점만 있는 언어냐? 전혀 아니다. 중국어는 문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만들려 한다. 이 점은 한 언어가 가질 수 있는 굉장한 장점이다. 같은 동아시아지만 중국어는 존댓말도 딱히 없다. 영어처럼 현재완료, 과거완료, 미래완료 등 복잡한 시제를 쓰는 것도 아니다. 의문문을 만들 때 어순 구조를 뒤집지도 않는다. 그저 끝에 嗎(ma)?를 붙이거나 是不是 형식(대충 맞아 아니야? 같은 의미다)을 쓸 뿐이다. '~의'를 뜻하는 的(de)도 막상 문자에서 많이 생략하는 듯하다. 나의 친구를 직역하면 我的朋友 가 되는데, 보통 的를 빼고 我朋友 라고 쓴다. 저렇게 말해도 뜻이 통하기 때문이다. 굳이 붙이지 않아도 되는 말은 그냥 빼버리는 쿨함이 있는 언어다.


나는 영어를 좋아한다. 심플해서다. 핵심을 전달하기 아주 좋은 언어다. 그런데 중국어를 공부하면서 영어에서 느꼈던 그 심플함을 느꼈다. (당연히 쓰기는 예외다. 한자를 쓸(적을) 때마다 이렇게 비효율적인 언어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자 하나하나가 비효율의 극치를 달리기 때문에 문법에서 어느 정도 협의를 보는 느낌이랄까. 당연히 한 언어를 파고 깊이 들어가면 한도 끝도 없는 복잡한 세계가 나오겠지만 '의사소통만 원활하게'가 목표인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이 세상 모든 것에는 단점과 장점이 공존한다. 단점만 존재하거나 장점만 존재하는 것은 없다. 다만 내가 어느 측면을 보기로 결정했느냐에 따라 단점만 가진 것처럼 보이기도, 장점만 가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든 것은 내가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다. 단점만 보는 것도, 장점만 보는 것도 모두 각자의 선택이다. 다만 한쪽으로 치우쳐 보게 되면 내가 보고 있는 대상이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손해를 보게 된다. 미처 살피지 못하고 흘려 보낸 부분들이 삶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데이터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손해를 보고 싶지 않기에 꼼꼼히 따져보고 어떻게 볼지 결정한다. 결국 장점도 보고 단점도 보는 것이 나에게는 득이다.



아니, 근데 무슨 얘기하다가 여기까지 온 거야?


아 그래. 电影 [diànyǐng] 영화, 电视 [diànshì] 티비. 저는 지금 이 두 단어를 외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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