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8 to Taipei] 짐을 싸다
대충 짐을 싸두었다.
예전의 나라면 여행 하루전날 혹은 당일 새벽 짐을 싸는 것이 보통이겠지만(그래도 그전까지 무엇을 챙길지는 적어놓는다) 주변 J들에 둘러싸여 살다 보니 나름(?) 계획적이 되었나 보다. 틈틈이 짐을 싸두면 출국 당일에 덜 허둥댈 것 같아 옷과 수건, 책들을 미리 가방에 넣어두었다.
챙길 것만 챙긴다고 했는데도 가방이 이미 가득 찼다. 아직 화장품과 충전기 같은 자잘한 물품들은 챙기기 전이다. 위에 쑤셔 넣으면 될 것 같기는 하지만 큰 배낭이기에 공간이 꽤 남을 것이라는 것은 순전 내 착각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한 달 여행이라고 짐의 부피가 꽤나 크다.
부피가 있는데 무게까지 나가면 진짜 큰일이다. 서둘러 배낭을 메보니 다행히 무게는 얼마 나가지 않는 듯하다. 옷과 수건이 짐의 거의 전부니 어쩌면 당연할지도. 욕심이 생겨 책을 한 권 더 넣었다. 어깨가 느끼는 무게는 그거나 그거나. 오케이. 나머지 세세한 것들은 여행 전날 챙기기로 한다.
짐을 싸다 보면 매번 온갖 상상을 하게 된다. 비가 오면 어쩌지? 우비도 챙겨야 하나? 배낭이 젖으면? 배낭 커버를 사야 하나?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면 어쩌지? 플리스를 하나 챙겨야 하나?.... 끝없는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런 상상을 제한해 주는 것은 용량이 한정된 내 배낭이다.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 오히려 결정의 무수한 갈래길에서 길을 헤멜 때 이정표가 되어준다. 한정되어 있으니 우선순위를 나눌 것. 꽉 차면 버릴 것. 남으면 채울 것.
꽉 찬 배낭은 싫다.
더 이상 무언가를 담을 수 없다는 뜻이기에. 짐을 꾹꾹 눌러 빈 공간을 만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