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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Apr 18. 2023

[D+0] 타이중, 일상 그리고 풍경

타이중


 어제 갑자기 항공사 홈페이지에 기상악화로 오늘 항공편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공지사항이 떴다. 혹여나 결항될 것을 대비해 부랴부랴 예약했던 호텔 첫날 예약을 취소하고 잠자리에 들었다(밤 11시 59분 까지는 무료로 예약 취소가 되었다). 오늘 오전, 흐린 날씨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공항으로 향했다. 다행히 아무 일 없이 탑승수속은 진행되었고 기내 탑승전 원래 예약해 둔 호텔을 다시 예약했다. 제주행 비행기는 모두 결항이었다. 제주에 강풍특보가 발효되었다고 했다.


 내가 탄 비행기는 무사히 이륙했고, 현재 나는 타이중의 숙소에서 글을 쓰고 있다.  


 코로나 이전이었던 마지막 해외여행은 발리였다. 그게 근 4-5년 전이니, 정말 오랜만에 오는 해외여행이다. 그 사이 내 무릎도 많이 상했는지 무거운 배낭이 전처럼 가뿐하게 들리지 않는다. 후회한다는 건 아니다. 그저 내 신체도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중이다. 책과 노트북이 들어서 그런지 예전 짐 무게보다 조금은 더 나가는 탓도 있겠다.


 타이베이 타오위안 공항에는 사람이 많았다. 입국심사는 줄이 너무 길어서 근 4,50분이 걸렸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래도 발리의 지옥 같은 입국심사(2시간이 넘게 걸렸었다. 그것도 새벽에!)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오랜만에 보는 어마어마한 인파에 살짝 당황하긴 했다.


 무사히 입국심사를 마치고 공항에서 트래블월렛 카드로 현금 인출도 하고 타이중으로 가는 버스표도 샀다(트래블월렛은 정말 추천이다. 편의점에서도 결제되고 마트에서도 되고 숙소(이건 케이스 바이 케이스겠지만)에서도 수수료 없이 결제된다. 우버도!). 버스표를 사고 시간이 조금 남아 편의점에서 허기를 달랠 주전부리를 몇 개 샀다.


바나나, 차조림계란(?), 라떼


 막상 사놓고 보니 걱정이 밀려왔다. 대만 지하철에서는 음식물 섭취가 불법(걸리면 벌금 내야 한다)이라 혹시 버스에서도 안되는가 싶어서다. 매표소 아주머니와 버스기사님께 더듬더듬 여쭤보았다. 


워 야오 츠 (저 먹고 싶은데) 인 버스, 커이 마(되나요)? 워 흐어(저 마셔도), 커이 마(되나요)? 


커이, 커이. 


된다 하신다. 야호. 마음 놓고 산 음식들을 품에 안고 버스에 올랐다.


단 음료를 좋아하지 않아 달지 않기를 바랐는데 역시 달았던 대만 편의점 라떼. 그래도 맛있었다. 우리나라 편의점 라떼와 다른 점이라면 이 라떼는 헤이즐넛 향이 매우 진한 편이다.
대만 버스에는 화장실도 있다. 나처럼 버스만 탔다 하면 화장실을 찾는 사람에게는 완전 할렐루야다.
USB 포드가 있어 충전도 가능하다. 버스 내에서 와이파이도 잘 터진다.

 

 버스는 분명 14:05분 출발이었는데, 살짝 넘긴 8분에 출발했다. 더불어 다른 공항터미널에도 들러 승객들을 태웠다. 버스 기사님이 직접 승객들의 짐을 짐칸에 싣고, 내릴 때도 직접 내려주신다.


 그렇게 2시간 조금 넘게 달려 도착한 타이중. 타이중은 날씨가 매우 흐렸다. 타오위안 공항에서는 잠시나마 해가 보였는데 오늘 타이중은 미세먼지인지 그냥 날이 흐린 건지 시야가 매우 뿌옜다. 버스에서 내려 시내버스로 숙소까지 이동할까 하다가 이미 너무 지친 탓에 그냥 우버를 불렀다. 금액은 129 TWD. 우리나라 돈으로 하면 대략 5500원 정도 되겠다. 차는 10분 정도 달려 숙소 앞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셰셰. 기사님께 짧은 인사를 남기고 숙소에 체크인을 했다.


 이미 기력이 다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막상 짐을 푸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가벼워진 몸으로 주변에 있는 까르푸에 가 필요한 것 이것저것을 사 왔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가 숙소와 제일 가까운 야시장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걸어서 20분 거리. 여행 가서 하는 일이라곤 걷는 게 다인 사람이라 기꺼운 마음으로 걸었다. 걷는 내내 즐거웠다. 골목골목 예쁜 풍경들을 보았다. 중간에 푸릇함이 가득한 공원들도 몇 개 보았다. 밝았다 어두워지는 하늘은 실시간으로 그러데이션을 만들어낸다. 


야시장 가는 길
Yizhong 야시장. 규모가 꽤 크고 거리가 깨끗했다.
저녁밥 주문
오늘 저녁. 밑에 밥이 깔려있다. 닭고기가 매우 부드러웠다. 가격은 109 TWD (약 4700원)


 야시장에 도착해 마음에 드는 식당에서 도시락 하나를 주문했다. 나온 음식을 따로 비닐에는 담아주지 않아 손에 들고 숙소까지 걸어왔다.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하는 식당인 듯했다. 대만은 생각보다 재활용이나 그린에 관심이 많은 나라다. 지구에 좋은 일이라는데 불평할 수 없었다. 가는 중간에 배가 고파 공원에서 먹고 들어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손이 찝찝해서 숙소에서 먹기로 했다. 역시 밥은 집에서 먹는 게 최고다.


  밥을 먹고 샤워를 하니 벌써 현지 시간으로 8시가 훌쩍 넘었다. 대만은 한국보다 1시간 느리다. 머리를 대충 말리고 오늘 하루를 정리하는 글을 쓴다. 


  오늘 나에게는 풍경인 모든 순간들이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이었을 테다. 누군가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은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거겠지. 나의 일상도 누군가에게는 풍경이 될 수 있겠다. 그 누군가가 내가 될 수 있다면. 나 스스로가 나의 일상을 낯선 이처럼 바라볼 수 있다면. 


 자신의 일상을 풍경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그야말로 즐거운 삶 아닐까. 아름다운 삶,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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