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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8 to Taipei] 야호! 나도 작가다!

브런치 첫 도전만에 성공하기

by 이지현

[D-28 to Taipei] 야호! 나도 작가다!


바로 전 글이었던 '[D-29 to Taipei] P형이 여행일정을 짜는 법' 초고를 마무리하고 여느 때와 같이 작가의 서랍에 글을 저장하려는 참이었다.


브런치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브런치는 내가 쓴 글을 대중에게 바로 보여 줄 수 없다. 내 글을 '발행' 해야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전체 공개'가 되는 셈인데, 브런치에서 작가 승인을 받기 전까지는 이 발행 버튼이 잠겨있다. 대신 '작가의 서랍'이라고 하는, 글쓴이만 볼 수 있는 저장고가 있는데, 작가로 승인받기 전까지는 내가 쓴 모든 글이 이 서랍에 쌓여있는 형식이다. (이름 참 잘 지었다.)


사실 이런 특성 때문에 브런치 계정을 개설하고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대만 여행 전후의 이야기를 하루하루 담아낼 참이었는데, 글을 써도 작가 승인이 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 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여행 전까지 근 한 달 가까운 시간이 남아 있어서 몇 수를 하든 '한 달안에는 되게 해 보자'는 마음으로 일단 브런치 계정을 개설하고 바로 작가 지원 신청을 했다.


살짝 막가파(?)인 나는 지원서를 대충 채워 넣기 시작했다.


1) 작가소개 (300자)

2) 브런치 활동계획 - 앞으로 발행할 글의 주제, 소재, 목차

3) 브런치에서 쓴 글 첨부


지원서의 항목은 위와 같다. 일단 1번은 주저리주저리 일장연설을 늘어놓았고, 2번 항목은 나름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명확했기에 솔직하게 적어 내려갔다. 몇 월 며칠에 출국할 건지, 여행 가서 어떤 글을 쓸 것인지 '구체적'으로 쓰는데 집중했다. 마지막 3번. 이게 문제였다. 후기를 찾아보니 적어도 글 3개는 첨부해야 한다 하기에 부랴부랴 서랍에 채워 넣을 글을 썼다. 그런데 내가 계획한 것은 하루에 하나씩 글을 쓰는 것이었기 때문에 글을 하나 더 쓰려면 하루를 더 기다려야 했다. 적어도 세 개는 써 놓아야 하는데. 조급함이 들었지만 일단 써놓은 글 하나를 첨부하여 지원서를 제출했다. 어차피 수정이 되니 심사 결과가 나기 전까지 계속 글을 추가하는 걸로 하고.


다음날, 글을 썼다.


그다음 날, 또 글을 썼다.


이제 서랍에 글이 세 개가 되었다. 지원서에 새로 쓴 글을 첨부하기 위해 수정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1번, 2번 항목에서도 마음에 안 드는 부분들이 여러 군데 보였다. 1번 항목은 나를 소개하는 항목인데, 진실성이 부족한 것처럼 보였고 2번 항목은 너무 길게 서술해 놓아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수정이다. 1번 항목에 다시 솔직하게 내 상황을 적었다. 32살, 책과 배낭여행을 좋아하는 여자. 어렸을 적 꿈이었던 작가를 사회에서 바쁘게 살며 잊고 살다가, 글을 쓰고 싶다는 원초적 욕망이 최근 올라옴을 느껴 지원하게 되었다고. 진부한 표현일지 몰라도 사실이었으니 그냥 적었다. 딱히 더 수정할 구석이 보이지 않아서 일단 1번은 통과. 2번 항목에는 길게 서술한 내용을 조금 덜어내고 그것을 1,2 항목으로 크게 나누어 어떤 글을 쓸 것인지 표현했다. 즉, 주제와 소재는 길게 서술하였고 목차 부분은 '1. [D-day] 시리즈, 여행 전 감상에 관하여 2. [D+day] 여행 중 일어나는 사건이나 알게 된 사실, 정보에 관하여'라는 식으로 정리했다. 글이 더 깔끔해진 것 같았다. 나름 만족스러운 수정을 거치고 새로 쓴 글을 첨부하여 다시 지원서를 제출했다.


'또 수정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마음먹으니 한결 수월해졌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어떻게 단언하냐고? 내가 그랬으니까. 무슨 일이든 시작하기 전에 어떻게든 완벽한 결과가 나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보니 그렇게 되는 일도 없거니와 있다한들 나중에는 오히려 그것이 나에게 독이 되어 돌아오더라. 내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결과'가 아닌 한 걸음 한 걸음 충만하게 채워나가는 '과정'이었다.


3일 치 분 글을 다 쓰고도 그냥 하루하루 글을 적어나가기로 했다. 떨어지면 다시 지원하지 뭐. 한 달 동안 몇 번 떨어질 수 있을까? 10번 정도 떨어지면 되려나? 그 정도면 괜찮은데? 어파치 잃을 것도 없기에 더 이상 작가 승인이 어떻게 될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바로 전 글이었던 '[D-29 to Taipei] P형이 여행일정을 짜는 법' 초고를 마무리하고 여느 때와 같이 작가의 서랍에 글을 저장하려는 참이었다.


'발행 버튼이 풀렸다.'


변화를 눈치채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되는 건가? 조심스레 발행 버튼을 눌러보았다.


'작가님, 첫 글 발행을 축하드립니다!'


된다! 된다 된다! 야호! 나도 이제 작가다! 이제까지 써놓은 글들을 모두 발행했다. 뛸 듯이 기뻤다. (성공의 맛이 자극적이긴 하다.)


한 번에 통과하는 어떤 '스킬'에 대한 정보를 기대하고 들어오신 분들껜 죄송하다. (내가 쓴 지원서 그대로 복사 붙여 넣기하고 싶은데 지원서 내용을 볼 수 있는 곳이 어디 있는지 아무리 찾아도 모르겠다. 어차피 한 번에 성공할 거라 생각하지 않아서 어디에 따로 저장해놓지도 않았다. 후회한다.) 솔직히 글이라는 게 평가 기준이 매우 주관적이기도 하고 브런치팀에서 어떤 기준으로 승인을 내주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떨어졌어도 계속 글을 썼을 거다. 왜냐면 글을 쓰는 행위 그 자체가 좋기 때문에.


혹시나 몇 번의 시도에도 매번 고배를 마시는 분이 계시다면, 조심스럽지만 감히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여기에 먼저 답해보셔야 할 것 같다고.


'브런치 작가가 되시는 게 목적이신가요, 글을 쓰시는 게 목적이신가요?'


작가로 승인될 확률은 후자가 훨씬 높을 것이라는데 내 소중한 오백 원을 걸어본다. (백수 예정자라 돈 백 원이 아쉬운 사람이다.) 어차피 전자가 목적이시라면 작가가 되는 순간 글을 쓸 원동력을 잃어버리실지도 모른다. 만약 후자라면 방법은 많다. 네이버 블로그, 포스타입, 트위터, 각종 커뮤니티 등등. 나도 브런치에서 승인이 나지 않았다면 네이버 블로그와 포스타입에 글을 쓰며 여행을 했을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은 그저 글을 쓰는 것이 좋고, 내 글이 (감히) 누군가의 인생에서 1분 1초라도 위로와 힘이 되었음 하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전자라면 다시 생각해 볼 일이고 만약 후자시라면, 그냥 계속 쓰십시오. (엄근진)


당신의 글이 언젠가는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한 문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


박명수 옹의 최신 어록을 마음에 새기면서, 나도 계속 써 나가야지. 오늘의 글이 맘에 안 들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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