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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환 Jul 28. 2016

기자들은 왜 밥과 술을 얻어먹는가.

취재 윤리를 법으로 규정, 김영란법 합헌 결정의 의미.  

애초에 나는 언론인을 김영란법에 포함시키는 데 반대했다. 공무원의 책임을 법으로 규정하는 것과 언론인의 윤리를 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론이 공적 책무를 갖는 건 사실이지만 취재와 보도는 기본적으로 민간의 영역이고 언론인의 윤리는 법이 아니라 언론인의 양심의 문제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법이 통과됐고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이제 시행을 앞두고 있다.

촌지는 거의 없어졌다지만 골프 접대 받고 술 얻어먹고 기사 쓰고 광고와 거래하는 기자들은 매우 많다. 이런 유착과 결탁이 부정한 기사를 만들고 부당한 거래로 이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기자 같지 않은 기자들을 김영란법에 묶어 죄다 처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게 대부분 국민들이 김영란법을 보는 시각이다. 그만큼 언론이 권력화돼 있고 언론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반증이다.  


기자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 돼서 놀랐던 것 가운데 하나는 산업부 출입을 하고 보니 기자실에 앉아있으면 점심 때마다 홍보실 직원이 돌아가면서 내려와 밥을 사주는 문화였다. 과장님, 오늘은 ㅁㅁ 먹으러 가죠? 우르르 몰려가서는 식사가 끝나면 당연하다는 듯이 기자들이 먼저 일어서고 홍보실 직원이 밥값을 계산했다.

나중에는 조금 익숙해지긴 했지만 처음에는 충격적이었다. 굳이 내가 밥값을 내겠다고 우기기도 했다(지금도 한 번 얻어먹으면 다음에는 내가 사거나 보통은 내가 사는 일이 더 많다). 기자와 취재원은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밥값 정도로 괜히 아쉬운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밥을 먹으면 친해지고 술을 먹으면 더 친해지는 게 한국 사회지만 일간지로 옮겨가서 상시 출입처를 갖기 전까지 나는 취재원과는 술을 먹지 않았다. 친해져야 기사를 더 잘 쓸 수 있다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지만 어느 정도 거리를 둬야 객관적으로 기사를 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김영란법에 언론인을 포함시키는 걸 반대하는 게 언론인들이 뇌물·접대를 받는 관행을 용인해야 한다는 게 아닌 것처럼 김영란법에 포함되든 되지 않든 공직자들에게 엄격한 윤리 규정이 적용된다면 언론인들도 비슷한 수준으로 자정 노력을 하는 게 맞다. 다만 이제는 그걸 법으로 엄격히 규정하고 어기면 처벌 받는다는 게 달라졌을 뿐이다. 

김영란법 때문에 한우와 굴비가 안 팔리게 됐다거나 골프장과 한정식집이 줄줄이 문 닫게 생겼다는 언론의 호들갑은 새삼 언급할 가치도 없다. 부정부패로 성장한 내수라면 침체돼도 할 수 없다. 여기에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다. (내수 침체는 핑계일 뿐)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인 언론인들의 이런 반발은 더욱 적절치 않다. 

공무원이 3만원 이상 식사 대접을 받아서 안 된다면 언론인도 받아서 안 된다는 논리에 반대할 명분은 없다. 일단 법은 통과됐고 설령 그게 국민정서법이든 포퓰리즘이든 뭐든 따르는 수밖에 없다. 밥 얻어먹는 문화가 쉽게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3만원을 넘지 않도록 신경을 쓸 것이고 과한 술 자리도 줄어들거나 더치 페이하는 문화로 바뀔 것이다. 접대 골프는 아마도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지만 지금처럼 드러내놓고 치지는 못할 것이다.

법에 의해서든 윤리적 책임에 의해서든 취재원에게 접대를 받는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 우려스러운 부분은 있지만 법은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다.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됐고 헌재에서도 합헌 결정이 났다. 공무원들이 한 방에 날아갈 수 있다면 기자들도 한 방에 날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 들여야 한다. 관행으로 여겨지던 게 이제 불법이 됐고 윤리가 법이 됐다. 여전히 김영란법에 언론인을 포함시키는 데 반대하지만 기자들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공직자 본인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하면 대가성이나 직무관련성과 관계없이 형사처벌.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받은 돈의 최대 5배까지 벌금형. (직무 관련성 없이 100만원 이하를 받더라도 같은 사람에게 1년에 300만원 넘게 받은 경우는 형사처벌.)

공직자의 배우자가 공직자 직무와 관련해 1회 100만원을 초과한 금품을 수수하거나 연간 300만원 초과 수수하면 공직자 본인이 형사처벌.

사교적인 만남이나 결혼식·장례식 부조 등은 허용되지만 1인당 한도액은 대통령령으로. 현행 공무원윤리강령을 준용할 경우 식사와 선물은 3만원 이하, 경조사비는 5만원 이하.

금품수수와 과도한 접대를 처벌하는 법은 기존에도 있었다. 기자들도 직무와 연관된 부당한 금품을 받으면 처벌 받는다. 김영란법은 기존의 수뢰죄와 배임수재죄가 대가성과 직무 관련성을 입증해야 성립됐기 때문에 그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법이었다.

이른바 스폰서 검사 때문에 만들어진 김영란법은 당초 공무원과 공직 유관기관이 대상이었으나 입법 과정에서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 등이 포함됐다. 언론인도 공무원 못지 않게 공적 책임과 청렴 의무를 진다고 보기 때문이었다. 헌법재판소는 7월28일 언론인을 김영란법에 포함시킨 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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