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백남기를 죽였나… 언론은 질문을 포기했다.
10월5일 발행될 미디어오늘 1069호입니다. 연휴가 있어서 이번주는 신문 만들기가 좀 험난했습니다.
1. 서울대병원 영안실에 며칠 죽치고 있던 손가영 기자가 백남기 관련 방송 뉴스를 전수 조사해 봤습니다. 지난해 11월과 12월에 보도가 쏟아지고 난 뒤 올해 들어서는 JTBC 말고는 관심을 갖는 방송사가 없었습니다. 백씨가 사경을 헤맬 땐 외면하다가 백씨가 죽고 난 뒤에야 기사를 쏟아냈죠. 그나마 지상파 3사 보도는 부검 공방에 집중됐습니다. 억울한 죽음을 언론이 외면한 것입니다.
2. 일베를 옹호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MBC 김세의 기자가 인터뷰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같은 사람이 이름만 바꿔서 음성 변조한 뒤에 여러 인터뷰에 출연했다는 건데요. 사측은 진상 조사를 미루고 있습니다. 시용기자들이 주축이 된 제3노조 위원장을 맡고 있죠. 강성원 기자의 기사입니다.
3. 김영란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기자실 문화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기자들에게 주던 식사쿠폰을 중단했고요. 오후 간식도 끊겼습니다. 일반인들 보기에는 그동안의 관행이 더 황당하게 느껴질 텐데요. 생수만 준비한 기자간담회도 있었고요. 왕복 교통비를 감안해 3만원이 넘지 않게 하려고 했다고 하죠. 일부 신문사들은 법인카드 한도를 늘렸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문화부 기자의 공연 티켓 등은 여전히 논란입니다. 경향신문이 창간 70주년을 맞아 포럼을 열었는데 화환이 하나도 없었다고 하죠. 여전히 불만이 끊이지 않고 세부적인 논란도 많지만 바람직한 변화입니다.
4. CJE&M의 tvN이 10주년을 맞았죠. 종편 진출에 실패했고 시사 예능에 욕심을 내기도 했지만 이재현 회장의 구속 이후 완벽하게 꼬리를 내렸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지상파 못지 않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고 광고 단가도 지상파 수준으로 뛰어올랐습니다. 실력있는 PD들이 앞다퉈 tvN으로 몰려드는 건 그만큼 지상파의 상황이 참담하기 때문이겠지만 tvN이 아깜없는 투자를 계속하면서 이들의 재능을 극한까지 뽑아내는 역동적인 플랫폼이기 때문일 겁니다. ‘꽃보다 할배’, ‘꽃보다 청춘’, ‘삼시세끼’의 나영석PD, ‘응답하라’ 시리즈의 신원호PD, ‘미생’, ‘시그널’의 김원석PD 모두 KBS PD 출신이군요. 정민경 기자가 tvN의 지난 10년을 탈탈 털어봤습니다.
5.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논두렁 시계 보도는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국정원에 거짓 정보를 흘렸고 언론사들이 우루루 받아썼죠. MBC 해직기자, 박성호 기자가 흥미로운 논문을 내놓았는데요. 지난 15년 동안 주요 방송사의 법조 뉴스 710건을 분석했더니 출처와 주술 관계가 명확한 기사는 64.4% 밖에 안 됐습니다. 기사 한 건의 평균 취재원 수는 1.93명, 익명 취재원은 0.55명으로 나타났고요. 이벤트 중심 보도가 93.2%를 차지했군요. 기소 이전의 검찰발 기사가 89.6%인데 정작 재판 과정에서 보도는 많지 않습니다. 관심이 없는 거겠죠. 실제로 4∼7명으로 구성되는 신문사 법조팀 가운데 막내들이 법원을 맡고, 가장 고참 기자가 대검과 지검을 맡는 게 일반적입니다. 이런 취재 시스템이 역으로 검찰의 권력을 더욱 키우고 이벤트 중심의 사건 보도를 만든다는 게 박성호 기자의 분석입니다. 정철운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6. 자막으로만 TV를 보는 장애인들이 있습니다. 2012년부터 자막 방송이 의무화됐죠. 방송사들이 대부분 자막 작업을 속기업체에 외주를 주는데요. 이 분들 급여가 150만~160만 원 수준입니다. 처음에는 인턴으로 시작하는데 월 40만원 밖에 못 받는 경우도 흔하다고 하고요. 처우가 이렇다 보니 경력을 쌓고 관공서 등으로 옮겨가기 전에 잠깐 거쳐가는 코스로 전락했고요. 전문성은커녕 오탈자가 속출하고 몇분씩 자막이 뜨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더 큰 문제는 방송사도 이를 감독해야 할 방통위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수화방송이나 해설방송은 더욱 열악하고요. 금준경 기자의 기사입니다.
7.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1주일 단식은 온 국민의 조롱거리가 됐죠.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었지만 청와대에 시간을 벌어줬으니 그것만으로도 이 대표 입장에서는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대표에게 관심이 쏠려 있는 동안 최순실 뉴스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차현아 기자는 “용의 꼬리를 자른다고 도마뱀이 되느냐”고 반문합니다. 미르(용)의 뒤에 도사리고 있는 권력의 실체를 들여다 봐야 한다는 거죠. 김도연 기자는 ‘용의 비늘(역린)’을 건드렸던 세계일보와 조선일보의 최후를 주목했습니다. 세계일보는 정윤회 문건을 터뜨린 뒤에 세무조사 압박이 시작됐고 회장과 사장이 교체됐죠. 기사는 묵살됐고 특종 기자들은 회사를 떠났습니다. 일찌감치 지난 7월부터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의혹을 터뜨렸던 조선일보는 송희영 주필이 날아가고 난 뒤 역시 납작 엎드려 있습니다.
8. 올 여름 전기요금 폭탄으로 국민들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한국전력공사가 김영란법 시행 직전 기자들을 데리고 해외 시찰을 다녀왔군요. 14명이 다녀왔는데 1억8천만 원이 들었다고 합니다. 한전이 지난 4년 동안 기자들 모시고 다니느라 쓴 돈이 7억6천만 원이나 되는군요. 실제로 그렇게 다녀와서 쓴 기사들 중에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조윤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9. 뉴욕타임스가 힐러리 공개 지지를 선언했습니다. USA투데이는 힐러리를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트럼프는 안 된다고 공개 반대를 선언했고요. 정치적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는 이런 전통은 역사가 깁니다. 뉴욕타임스는 156년 전인 1860년 링컨을 공개 지지했죠. 댈러스모닝뉴스는 75년 동안 공화당 후보를 계속 지지했고요. 한국은 어떤가요? 외형적으로는 중립을 지키고 공정한 척 하지만 조선일보는 조선일보의 정파성이 있고 한겨레는 한겨레의 정파성이 있다는 걸 국민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 때는 ‘나는꼼수다’의 주진우 기자 등이 법정에 서기도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언론인의 선거운동 금지는 위헌 결정이 났지만 아직 언론사 차원에서 선거운동은 허용돼 있지 않습니다. 이하늬 기자의 기사입니다.
10. 그밖의 기사들.
“증거없이 해고했다”던 백종문 녹취록의 MBC 백종문 본부장, 국정감사 출석 요구에 용감하게 불출석 사유서를 보냈는데 거짓말투성입니다. “‘증거 없이’ 해고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고 법원도 해고 사유를 인정했다”고 스스로 한 말을 뒤집었고요. 법원의 판결도 입맛대로 왜곡했습니다. 국감에 못 나오는 이유가 언론자유를 위해서라고 합니다. 오죽하면 “백종문을 숨겨줄 언론 자유는 없다”는 말까지 나오겠습니까.
이번에는 스카이라이프에 지상파 방송이 끊길 상황입니다. 역시 재송신 수수료 때문인데요. 방통위가 방송 유지 명령이란 걸 내렸는데 양쪽 다 신경도 안 쓰는 분위기입니다.
신문협회는 이 와중에 “후원·협찬 제한은 신문발전 제약”이라고 삽질하는 성명을 냈군요.
갤럭시노트7이 또 폭발했군요. TV조선이 기사를 냈다가 삭제했습니다. 이게 교환 받은 제품이라 문제가 더 심각한데요. 삼성전자의 해명은 폭발이 아니라 충격을 받아서 발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충격을 어떻게 줬길래 불이 붙는지 모르겠지만 아, 폭발이 아니라 안심이구나, 이제 안전하구나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언론 보도는 정말 요지경입니다.
마지막으로 이하늬 기자의 기사 두 건을 강력 추천합니다. “파업 좀 해도 나라 안 망합니다”, 그리고 “철도파업=불법, 막무가내 논리를 뒤집는 6가지 팩트”. 정말 식상한데 이런 거짓말이 계속해서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게 한국 사회의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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