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공범이다” 언론의 뒤늦은 반성문.
11월9일 아침 발행될 미디어오늘 1074호입니다. 만들어 놓고 보니 최순실 언론 보도 특집이 됐습니다.
1. “이러려고 기자가 된 게 아닌데”,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는 기자들이 많습니다. 늦게나마 진실이 드러나고 있지만 그동안 언론이 뭘 했느냐는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KBS와 MBC는 아직까지도 어디에 줄을 서야 할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PD연합회의 성명 가운데 일부를 소개합니다.
“국정을 농단한 비선 실세, 이에 기생해 사익을 챙긴 사람들, 이를 알면서 묵과하고 조장한 권력 핵심, 모두 나빴다. 하지만 우리는 언론이 이 모든 이들보다 나을 게 없었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다.”
2. MBC 기자들은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최기화) 보도국장조차 어디부터 취재할지를 몰라 남의 뉴스를 지켜봤다 받으라고 지시를 하고, (오정환) 부국장은 ‘오늘은 어느 신문을 베껴 써야하냐’고 묻는 현실이 이게 과연 MBC가 맞냐는 의문이 들 정도다.” 기자들의 분노는 여전히 보도 방향을 쥐고 있는 경영진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반발하는 기자들을 징계하고, 저항하는 기자들을 쫓아내고, 마음에 안 드는 기자들의 입을 틀어막은 결과”라는 지적도 나오고요. “부끄러움마저 외면하지 말아 달라”는 호소도 절절합니다. “MBC 기자라는 사실이 시대의 죄인이 된 기분”이라는 성명도 나붙었습니다. 강성원 기자가 전합니다.
3. YTN은 도대체 누구 눈치를 보는 걸까요? 최순실이 조준희 사장을 꽂았다는 루머가 돌긴 했습니다만. 경찰 집계 4만명을 꼭 제목에 넣어야 한다는 괴상망칙한 지시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최근에 이런 성명이 나붙었습니다. “급기야 최순실 씨가 검찰에 소환될 때도 자막에는 아무런 수식어를 붙이지 못했다. ‘국정농단’이라는 단어는 최씨가 구속된 다음날인 지난 4일에야 ‘해금’됐다.” 김도연 기자의 기사입니다.
4. 박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는 사실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사생활의 영역이기도 했고 박 대통령의 불행한 과거와 관련해 언급해서는 안 될 금기로 여겨졌었죠. 선거 때도 쟁점으로 떠올랐지만 네거티브 공격이라는 말로 일축했습니다. 만약 그때 한 걸음 더 들어갔더라면 지금 같은 국가적 재난을 맞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장슬기 기자의 기사입니다. 대선을 치렀던 2012년 1년 동안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최태민 일가 관련 보도는 20건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옛날 이야기만도 아닙니다. 박 대통령이 두 번째 사과 기자회견을 했을 때 담화문을 읽고 기자들 앞으로 다가오자 기자들이 쭈뼛쭈뼛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죠. 질문을 잃은 기자들이 박근혜-최순실 정권의 최대 부역자들이라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단 하나의 질문이 가능했다면 물었어야 합니다. “사퇴할 의사는 없습니까.” 2년 넘도록 던지지 못한 더 중요한 질문도 있죠. “그 7시간에 뭘하셨습니까.”
5. JTBC와 TV조선이 특종 경쟁을 벌이고 있죠. JTBC가 이성적이라면 TV조선은 감성적인 폭로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데요. 정작 TV조선은 대통령을 호되게 비판하지만 새누리당은 비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국내각 논란을 중계하면서 국정혼란의 책임을 야당에 떠넘기고 있고요. 영수회담이 정국을 수습할 대안인 것처럼 압박하고 있고요. 조선일보와 TV조선의 의도는 명확합니다. 이번 판은 나가리지만 다음 판을 (다시) 기대하겠다는 것이죠. 이번 판을 자기들 판이었다는 걸 잊은 건 아닐 거고 유체이탈 전략을 쓰고 있는 거겠죠. 이게 먹힐지 의문입니다만 조선일보의 동력은 권력욕과 생존 본능일 겁니다. 금준경 기자의 기사입니다.
6.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의혹이 추가돼서 따라잡기 힘드시죠. 정철운 기자는 최순실 보도 50일을 일목요연하게 분석했습니다. 8면과 9면에 펼침 기사로 실려 있습니다. 정상근 기자가 만든 최순실 관계도도 실려 있습니다.
7. 뒤늦게 풍자 프로그램이 살아나고 있는 것도 눈에 띄는 변화입니다.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서 출발”이라거나 “상공을 수놓은 오방색 풍선”이라거나 “가방 속에 태블릿 PC가 있냐”는 정도에 왠지 감동하는 것은 이 정도의 드립조차 허용되지 않는 시절을 살아왔기 때문일 겁니다. 본격적으로 권력을 조롱하는 것도 아니고 끈 떨어진 최순실을 패러디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는 게 아쉽긴 하죠. “지지율이 높고 세가 높을 때는 풍자개그를 하지 못하고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모두가 욕하는 시점에 와서야 풍자 개그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씁쓸하다”는 반응도 나옵니다. 정민경 기자의 기사입니다.
8. 금준경 기자는 네이버와 다음의 최순실 관련 뉴스 편집을 전수 조사했습니다. JTBC의 최순실 파일 보도 전후 5일 동안이긴 합니다만 몇 가지 주목할 부분이 있습니다. 10월26일 다음의 최순실 관련기사 비율은 13%, 네이버의 경우 33.8%로 늘어났고 27일에는 다음 17.5%, 네이버 41.6%까지 수직상승했습니다. 23일까지만 해도 최순실 관련 보도가 5% 남짓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JTBC 보도 이후 ‘빼박캔트’가 되자 본격적으로 뉴스가 풀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네이버가 비중이 더 높은 것은 다음 루빅스 때문에 뉴스 추천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음이 네이버 보다 더 진보적인 것처럼 보인다면 다음이 맞춤형 뉴스 방식이라 취향을 타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전체 뉴스 풀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게 금 기자의 분석입니다.
9. “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구나 했다”고 하죠. 많은 분들 보셨겠지만 7일 조선일보 1면 사진은 우병우가 검찰 조사실에서 웃고 있는 장면을 망원렌즈로 땡겨서 잡은 것이었습니다. 사진의 의도나 맥락과 무관하게 포토 저널리즘의 역사에 남을 사진이었습니다. 이치열 기자가 고운호 기자를 인터뷰했는데요. 무려 300미터 이상 떨어진 건물 옥상에서 캐논 1DX 카메라에, 600mm 망원렌즈와 2배율 텔레컨버터를 끼우고 모노포드를 사용해 찍었다고 합니다. 5시간 동안 900컷 이상을 찍었다고 하죠. 그들만의 이너써클, 우병우가 여전히 권력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사진인데요. 어쩐지 조선일보가 누가 권력을 쥐고 있는지 입증하는 장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10. 그밖의 기사들.
화물연대 파업 기획 마지막 순서는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열악한 운송비 구조의 대안으로 화물운송 발전방안과 표준운송비 논의를 살펴봤습니다. 단순히 화물차 공급을 늘리는 걸로 노동조건이 개선되지 않으며 오히려 과당 경쟁과 덤핑을 촉발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최저임금처럼 최저운임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요. 손가영 기자의 기사입니다.
인터넷방송을 방송의 범주에 넣고 규제한다고 해서 MCN 업계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방통심의위가 삽질을 하는 것 같은데 인터넷 방송은 말이 방송이지 브로드캐스트는 아니죠. 지배적인 플랫폼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도 나옵니다. 지난 대선 때 나꼼수를 규제한다고 삽질했던 기억도 나고요.
포털 뉴스제휴평가위가 산으로 간다는 기사도 많이 썼는데 정작 진입과 퇴출을 심사한다더니 기존 입점 매체 퇴출은 포기했군요. 미디어오늘 단독 기사입니다. 이건 사실 위원회의 지배구조 문제와 관련해 고민할 부분도 있는데요. 방통위나 방문진 이사회 등의 위원과 이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뉴스제휴평가위는 30명이나 되죠. 이 사람들이 각각 로비스트가 돼서 서로 눈치만 보다 보니 아무 것도 못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위원 수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포털이 플랫폼으로서의 중립성과 공정성 책임을 외부에 떠넘겨 버린 결과죠.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임원에게 “최선을 다 해도 안 되면 어쩔 겁니까“ 물었다가 대답을 안 하고 있자 ”뛰어내리세요“라고 했다고 하죠. 그 말을 동아일보가 기사로 썼는데 갑자기 또 삭제됐습니다. 미디어오늘이 확인해 보니 기사를 쓴 기자는 ”왜 삭제됐는지 모르겠다“고 하고. 삼성전자에 물어보니 ”설명을 했을 뿐“이라고만 합니다. 그래서 이 부회장은 저 말을 한 걸까요. 안 한 걸까요? 진실은 저 너머에.
EBS에도 최순실의 마수가 뻗친 걸까요? 최순실씨 조카인 장씨호씨가 사무총장을 지낸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행사를 후원하고 홍보성 리포트를 제작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지가지 했군요.
오는 12일 민중총궐기 대회에 다들 참석하시죠? 미디어오늘 특별판을 배포할 계획입니다. 서울 계신 분들은 다들 광화문에서 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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