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99. 독수리 타자의 비애(aka 쪽팔림)
요즘 초등학교에 코딩 수업이 있다면,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컴퓨터 수업이 있었다. 이렇게 보면 분명 나는 컴퓨터나 노트북과 가깝게 자라온 세대다. 하지만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독수리 타자를 고수해왔다. 여기서 독수리 타자란 손가락 열 개 중 두 개에서 네 개 정도만 사용하여 타자를 치는 것을 말하는 데, 그래서 손가락은 매우 바쁘면서 효용은 없는 타자 방법이다. 십여 년 전 컴퓨터실에서 옆자리 친구가 500타를 칠 때 나는 90타(;;)를 꼬박 치는 수준이었고, 지금은 200타를 조금 넘는 정도이니 또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최하위권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다지 불편함은 없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독수리로 지내도 괜찮았다. 하지만 지난 날들 동안 가끔 내가 독수리라는 것에 쪽팔리는 상황이 종종 있었다.
고등학생 때 한 번 서점에 가서 책 위치 검색을 했던 적이 있다. 워낙 붐비던 날이라 앞 뒤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책을 검색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와서 타자를 치는데, 순간 내가 독수리 타자라는데에 약간의 부끄러움이 생겨났다. 그도 그럴 것이 뒤에도 주변에도 사람이 매우 많았고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더라도 옛날 컴퓨터 특성상 타자기에 소리가 매우 컸다는 점이 당황스러운 지점이었다. 앞사람에 비해 -2.0배속 정도의 느릿느릿한 손가락에 고등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타자실력이었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쪽팔린 기억이다.
이후 이렇게나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타자연습을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가 있다. 얼마 전에 치른 일러스트 시험에서, 문제에 맞게 글자를 적는데 나의 머뭇거리는 타자 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렸기 때문이다. 조용한 시험실에서 내 귀에만 크게 들리는 90타 수준의 타자 소리... 항상 소리 나는 키보드가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마음으로 한컴타자연습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몇 주 되지 않았지만 항상 플래너에 적어두고 매일 해나가고 있다.
코 흘리개 초등학생 시절, 항상 뒷자리에 앉았던 덕에 컴퓨터실에서도 타자연습을 게을리할 수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타자연습이든 뭐든 할 때 나는 주니어 네이버 게임이나 하고 있었으리라. 분명 500타를 치는 친구들을 보고 부러움이 살짝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직접 연습해 볼 생각은 그다지 하지 않았다. 내가 컴퓨터를 쓰는 이유는 타자를 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테일즈 런너를 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