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법으로 살기

ep 10. 쾌냐 불쾌냐 그것이 문제로다

by 이진

 아침 글쓰기 100일 챌린지 - 오늘부로 열 번째 글이다. 10과 100 따위는 0과 1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문득 이진법이 떠올랐다. 0과 1만으로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는 아이디어, 그리고 정작 본인의 이름은 이(2) 진법인 이 요망한 개념이 나의 주의를 끈다. 사실 이진법에 대해선 추호도 모르지만, 인간도 이진법처럼 살면 어느 정도 편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인간의 삶을 2, 3, 4, 5, 6, 7, 8, 9 따위로 세세히 나누지 않고 모든 고민과 행복감을 단 두 가지, 쾌와 불쾌로 단순하게 여기는 것. 그렇게 살고 싶다.


 기분이나 마음의 반응은 어찌 되었든 십진법이다. 모든 숫자가 다 있다. 모든 가능성이 다 있지만 그 연유에 대한 기반은 불분명하다. 하지만 마음을 이진법으로 돌려놓고 생각해보면 그 중심에는 내 몸이 느끼는 쾌와 불쾌감 두 가지가 존재한다. 모든 애매한 감정 용어를 쾌 또는 불쾌로 생각하는 연습은 우리가 리듬을 타고 흘러가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배고픔이나 피곤함은 불쾌에 속하는 감정이다. 불쾌임을 인지한 후에 이것을 쾌로 바꾸기 위한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배를 채우고 잠을 푹 자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다. 이렇게 불쾌와 쾌를 나눈 후에는 방법을 찾아서 불쾌감을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사실 모든 일들이 쾌와 불쾌로 딱 나누어지는 것은 어렵다. 불쾌를 간단히 쾌로 해결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 이유는 우리가 십진법의 세상에, 가능성의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배제한 채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 집중해보면 모든 것은 단순해진다. 이것이 쾌인지 불쾌인지 파고드는 것이다. 쾌라면 즐기면 되고, 불쾌라면 쾌로 바꾸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볼 수 있다. 모든 불쾌감을 한 가지 카테고리로 생각하는 연습도 도움될 것이다. 섭섭함, 지루함, 무기력함, 우울함 등을 나누어 생각하지 않고 '불쾌'라는 단일체로 보는 것이다.


 놀랍게도 우리의 똑똑한 뇌는 모든 사건을 쾌 또는 불쾌로 밖에 생각하지 못한다고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마음의 관점에서는 기분이 좋거나 나쁘거나 두 가지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상황에 마주쳤을 때 우리는 진땀이 난다던지, 가슴이 갑자기 두근거린다던지, 손이 차가워지는 등으로 다양하게 반응한다. 쾌와 불쾌를 정확히 구분하기 위해서는 몸의 반응을 자세히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슴이 뛰는 것을 예로 들면 그것도 두 가지로 나뉜다. 쾌에 따른 두근거림, 즉 설레는 일이 있거나 재미있는 일을 떠올리며 두근거릴 때가 있고, 불편함이나 긴장과 같은 불쾌에 따른 두근거림이 있다. 이 두 가지를 정확히 구분해보자. 그것부터가 나를 관찰하는 방법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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