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글을 쓰는가
지금 이 순간의 것을 잡으라.
조절하지 말라. 살아 있으라.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작가 나탈리 골드버그의 책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나오는 구절이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우리의 마음이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울 정도로" 글쓰기에 열중하라고 말한다. 글쓰기는 이토록 잠재적이고 본능적인 열정을 드러내는 일이다. 말하자면 하루 종일 굶은 다음날 육 첩 반상이 차려진 식탁 앞에 앉는 마음으로 책상에 앉는 것과 같다. 내 앞의 텅 빈 백지를 아무렇게나 마구 먹어치워 버리자. 완전히 엉망인 글이 만들어지더라도 배는 채울 수 있을 테니.
복잡하게 얽힌 마음이 글로 표현되는 순간, 생각이라는 낡은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는가? 그 시점부터 써내려 가보라. 내가 왜 글을 쓰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가? 바로 그 지점에서 글을 시작해보자. 한 줄 두 줄 써내려 가다 보면 생각의 텅 빈 단면이 곧바로 드러날 것이다. 사실 대단한 고민들도 파헤쳐보면 일시적인 어리광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또는 행동하기 싫은 마음을 감추려는 게으름일지도 모른다. 글로 표현되기 전까지는 내 생각의 단면을 결코 알 수 없다. 글쓰기에 앞서 어떤 생각이 들어도 괜찮다. 시작할 시점은 바로 지금이다. 막막한 가운데에서도 글을 쓰자. 머릿속으로는 결코 풀지 못하던 문제들이 서서히 드러나고 글을 마칠 때쯤이면 어딘가 시원하고 후련한 마음이 들 것이다.
생각이란 구체적으로 나타날 수 없을 때 고민으로 남겨진다. 글로 표현되는 순간 고민은 더 이상 고민이 아니게 된다. 내가 나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으로 이미 사사로운 고민은 사라진다. 방황하던 마음은 밀도 높게 채워진다. 그러니 아무리 회의감이 들더라도 앞을 바라보고 써 내려가자. 수정하지도 말고, 다시 돌아보지도 말고, 참지 못할 정도로 망쳐버리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쓴다면 더 좋다.
우리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시각각 변하는 나를 관찰하고 돌보기 위해서다. 효용을 중심으로 무심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내면에 의지할만한 튼튼한 나무줄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말하자면 글쓰기는 나만의 빅데이터를 쌓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특별히 사랑하는지, 또는 어떤 면에서 부서지고 찢어졌는지도 알게 된다. 글쓰기의 시작과 끝은 건강검진에서부터 치료, 회복까지 이어지는 뫼비우스의 띠다. 그래서 글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무한히 과정에 머무는 것이 글쓰기이다. 우리의 삶 또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