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증명의 길

개인적 자아를 기르는 글쓰기

by 이진

 삶은 끝없는 자기 증명의 길이다. 한국 사회에서 입시나 취업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그것이 곧 사회적 나를 증명하는 지표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사회적인 자아상과 개인적인 자아상이 있다. 입시와 취업에의 성공은 사회적 자아의 증명이다. 그러나 이것이 행복의 방향인지는 미지수다. 반면 개인적 자아상, 즉 내가 '나'로서 느끼는 자아상이 풍요롭고 만족스럽다면 이는 곧 사회적인 자아의 만족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유는 사회적인 자아가 개인적인 자아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자아상이 텅 빈 채로 사회적 자아상을 좇는 것은 기둥 없는 건물을 짓는 것과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 벽에는 하나둘씩 금이 가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개인적 자아를 돌보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개인적 자아를 기르는 글쓰기


 한국의 교육은 사회적 자아를 기르는 것에 대부분 치중되어있다. 어떤 대학교를 진학하고,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친다. 하지만 그 이외의 모든 것들, 즉 개인적 자아에 대한 교육은 대부분 등한시된다. 사회는 학생들이 개인적인 자아를 기르도록 해서 예술가가 되도록 돕지 않는다. 사회적 자아를 가르쳐서 의사나 변호사가 되도록 하는 편이 백 번 이득이기 때문이다.


 반면 개인의 입장은 어떨까? 개인으로서 우리는 언제나 자신만의 생각을 표현하고 드러내고자 한다. '나'를 나타내는 솔직한 말과 생각이 누군가에게 이해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사회적 자아는 대체로 드러내지 않고 감추는 데에 있다. 일상 속에서 억압된 자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상태가 되어 병을 만들어 낸다.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스트레스는 사회적 자아가 앓는 가장 흔한 병이다.


 건강한 사회적 자아를 위해서는 지구의 내핵과 같이 말랑말랑한 개인적 자아를 먼저 돌봐주어야 한다. 개인적 자아란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 자아가 만족스러울 때 자연스럽게 사회적 자아도 건강해진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한 구절처럼, 인생이란 나 자신으로 이르는 길이다. 껍데기나 환상을 좇는 것이 아니라, 여기 이곳에 존재하는 '나'를 증명해내고 스스로 이해시키는 길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사실 표면적으로 보일지라도 내면의 체험에 관련되어있다. 예를 들어 명품 옷을 사는 사람들은 명품이 가진 이미지를 사는 것이다. 브랜드의 이미지가 주변에 닿고, 사람들의 긍정적인 반응으로 내면의 만족감이 생겨나기 때문에 명품은 자기 증명 수단이 된다. 그러나 이 수단은 주체가 남에게 달려있다. 사회적 자아를 부풀리는 데에 달려있는 것이다. 효력도 시간이 지나면 흐려진다. 오늘 백화점에서 새 옷을 샀더라도 다음 주에 가보면 다른 멋진 옷이 나와있을 것이다. 그러면 또다시 큰돈을 지불해서 자신을 증명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남이 보는 나, 사회적 자아에 의지하는 것은 위험하다. 언젠가 통장도, 내면도 텅 빈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글쓰기는 어떨까. 글쓰기도 일종의 자기 증명 수단이다. 명품을 사는 것처럼 하루에 그치지 않고 매일매일 할 수도 있다. 명품 소비가 사회적 자아와 연결되어있다면 글쓰기는 개인적 자아와 함께 움직인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은 개인적 자아의 발달을 돕는다. 즉 안에서 밖으로 향하는 에너지가 곧 자아의 내핵을 밀도 높게 채운다.


 대화를 나누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다루고 노래를 하는 것도 일종의 자신을 증명하는 수단이다. 무엇 하나에 푹 빠져서 내 존재조차 잊어버리는 것이 사실은 나를 찾는 방법이라는 역설이다. 그러니 세상을 향해 어떤 식으로든 표현을 드러내 보자. 개인적 자아가 풍요로워지면서 삶도 함께 만족스러워질 것이다. 바느질을 하기 전에 실의 매듭을 짓는 것처럼, 사회적 자아를 한 땀 뜨기 전에 꼭 개인적 자아를 확인하고 돌아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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