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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Apr 11. 2021

극단은 그 반대를 내포한다

4편 - 삐딱하게 보는 방법을 통해 익힌 관점의 비밀


 나는 앞서 이어지는 세 편의 글을 작성했다. '악플'을 주제로 한 글이었다. 생소한 주제의 이 시리즈는 나탈리 골드버그의 저서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나온 한 마디에서 시작되었다. 


"강력한 감정을 끌어들이는 것에 대하여 세 가지 관점으로 글을 써보라."


즉 처음에는 완전히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두 번째로는 완전히 부정적으로, 마지막으로 완전히 중립 된 관점으로 바라보며 글을 쓰는 방법이었다. 아주 흥미로운 제안이었다. 그래서 나는 문득 떠오른 주제인 악플에 대해서 분석해보기로 했다.


 완전히 긍정적으로 글을 써보는 것은 꽤 어려웠다. 악플을 긍정적으로 볼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글을 쓸수록, 글은 어느 정도 이치에 맞게 흘러갔다. 악플이 사실은 하나의 관심이라는 데에서는 긍정적이었다는 포인트를 짚었다. 내용이 어떻든 댓글을 굳이 단다는 것은 누군가가 당신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즉 다른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마음으로 봤을 때는 긍정적일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다음, 나의 본질적 입장이었던 부정적인 관점의 글쓰기에 돌입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나의 편협한 관점만을 부풀려서 생각하고 있었는지 말이다. 악플도 현재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이해가 있었다. 물론 남들을 아니꼽게 비난하는 것은 권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누군가의 존재방식 ─ 악플을 게재하여 남들을 기분 나쁘게 하는 방식 ─ 에 대해서 이래라저래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 세 가지 관점의 글쓰기를 하며 깨달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극단의 의견은 필연적으로 그 반대의 상황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A회사의 물건이 아주 싫게 느껴진다. 그래서 열심히 A회사에 대해 불매운동을 한다.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가서 절대 A회사를 쓰지 말자고 시위도 한다. 그런데 이 상황을 따지고 보면 나는 A회사에 헌신하고 있다. 어떻게든 그에 의지하면서 나의 의견을 피력하므로 오히려 홍보효과도 있다. 나의 모든 에너지가 A회사로 향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중립적인 관점의 글쓰기에 돌입했다. 이제 무언가가 정확히 이해되었다. 


 모든 것은 중립이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특정한 관점에 쏠리느냐에 따라서 '그 자체'도 시계추처럼 흔들린다. 


 뭔가가 싫다고 해서 싫게 바라볼 이유도 없고, 뭔가가 굉장히 좋게 느껴진다고 해서 그것을 숭배할 필요도 없다. 만일 내가 무언가를 싫게 바라본다면, 그 속성 자체에 이미 '좋음'이 포함되어있다. 반대로, 내가 뭔가를 숭배하며 바라본다면 그 속성에 반드시 '싫다'거나 '두렵다'는 부분이 있다. 


 어쩌면 이것이 이해하기가 굉장히 어려울 수도 있지만, 왠지 나는 이것이 간단한 과학적인 이치로 느껴진다. 마치 호수에 비치는 달빛처럼 말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욕보이면서도 그로부터 흥미를 찾아내고 그에게 의지하는, 모순된 인간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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