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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Jun 06. 2021

촛농의 글쓰기

타니아 슐리의'글 쓰는여자의 공간'을 읽다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은 글을 써야 한다. 
- 엘프리데 옐리네크 Elfriede Jelinek


 브런치에 한참 글을 쓰다가 업로드를 잠시 쉰 지 한 달이 좀 더 됐다. 매일 이곳에 한 편의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 또는 욕심으로 '뭐든지' 써내려 가려던 억지를 잠시 멈추었다. 다행히도 나는 그간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졸업작품전을 성황리에 마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곧 방학이 다가오고, 4학년인 나는 한가하기 짝이 없는 시간들을 다시 맞이하고 있다. 그래도 일상이 갖추어지고 동시에 자유롭게 내가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적절히 있어서 하루하루 매우 만족스럽고 평안하게 보낸다.


 그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다. 항상 글쓰기에 대해 생각했고 언제든 다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도통 이렇다 할 주제가 떠오르지 않았고, 마침 일요일이자 현충일인 날을 맞아 갑자기 떠오른 글감에 서둘러 노트북을 켰다.


 오늘 아침에는 타니아 슐리의 '글 쓰는 여자의 공간'을 막 다 읽었다. 서른다섯 명의 여자들의 생애를 비춰주는 책이다. 전 세대의 여성 작가들의 모든 여정이 아주 짤막하게 담겨있다. 그러다 내 눈을 사로잡은 작가의 한마디가 나를 글쓰기로 이끌었다. 문장은 이러했다. 


슬픔이 밀려오려 하면 나는 글을 쓴다.
글을 쓸 때면 나는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
- 조르주 상드 George Sand


 내가 이곳에 매일같이 글을 쓰던 때에, (정확히 말하면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다짐하기 직전) 나는 가장 외롭고 우울하고 슬픈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도 지금은 글쓰기와 사유를 통한 회복으로 애증의 삶을 '애(愛)' 쪽으로 끌어당기며 살아가고 있다. 조르주 상드의 저 한마디가 나의 오랜 기억을 깨웠고, 이것을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200년 전에 살던 그에게도 글쓰기의 방아쇠는 행복이나 만족보다는 슬픔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어쩌면 글을 쓰며 몰입하는 이 노트북 스크린이, 또는 노트 한 페이지가 모든 번뇌와 고민과 생각들에서 벗어나게 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건강한 방식으로 몰입하는 일은 항상 나를 새롭게 한다. 무형의 마음과 꼬여버린 생각들을 조금이라도 풀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나(에고)'라는 미로로부터 빠져나온다. 우리는 스스로가 만들어낸 활자 속에서 공감하고, 위로받는다. 그 뜨거움 속에서 슬픔은 촛농이 되어 흐르고,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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