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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Jun 13. 2021

환생한 게 아니라 확장된 것이다

흑역사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당신에게

 얼마 전 고등학교 친구에게서 뜬금없는 카톡을 받았다. 

 "야, 나 오랜만에 집 와서 짐 정리하는데 재밌는 거 발견했다"

 그동안 한참 연락 없던 고등학교 친구가 말하는 '재밌는 것'이란 대체로 불길하면서도 굉장한 한 방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은 긴장했지만 동시에 궁금증이 생긴 나는 대답했다.

 "뭔데?"

 그러자 친구는 내가 고등학교 시절, 그의 생일에 썼던 편지를 찍어 보내주었다. 글씨체로 보면 분명히 나의 것이 맞다. 그런데 내용이 너무 이상했다. 말 그대로 이상했다. 짤막하게 그 편지의 내용을 설명하자면 이러했다. (필터는 KF97짜리다)

 "우리가 지금 공부하는 이유는 좋은 대학에서 괜찮은 00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니?ㅎㅎ" 

 "아 그리고 니 00 가면 꼭 소개팅해줘야 됨." 

 이렇게 말을 하고 다니던 때로부터 10년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매우 큰 충격이었다. 


믿기 어려운 기록의 향연


 디즈니 공주가 되는 것을 꿈꾸던 열여덟 살의 그 아이는 생소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편지지에 열심히 눌러쓴 어이없는 활자들은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해냈다. 그때의 내 사고방식도 조금씩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은 열여덟의 나로부터 거의 '환생'을 했다 싶을 정도로 다른 사람이 되어있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한다. 나는 환생을 한 게 아니라 확장된 게 아닐까? 과거에 말하고 행동했던 이런저런 흑역사들이 떠오를 때면 그때의 내가 전혀 나처럼 느껴지지 않지만, 분명히 나 자신이 맞기도 하다.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단연코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는 그 과거의 시절로부터 머무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나는 나 자신을 새롭게 변성했다.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과장해서 '환생'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에는 내가 나를 새롭게 확장시켰던 것이다.


 환생된 나는 이전의 삶과 완전히 동떨어져있다. 그러나 확장은 다르다. 확장은 이전의 나를 품고 있으면서도 그로부터 업그레이드된 상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전의 내가 어떤 모습이었든지 그것을 인정하는 데에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편지의 내용은 정말 일말의 것이다. 아주 가까운 과거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흑역사는 만들어졌다. 나는 그것을 회피하기보다는 인정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지금의 나로부터 얼마든지 확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두면 더욱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여기서 정말 도움되는(?) 영상 하나를 추천하려고 한다. 평소 내가 자주 보는 유튜버 중에서 '햄튜브'라는 채널이 있다. 햄튜브는 최근 '흑역사를 잊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다소 풍자적인 영상을 올렸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다. 


흑역사를 잊는 여덟 가지 방법
1. 불가능하다.




* 햄튜브 <흑역사를 잊는 방법> 링크 : https://youtu.be/7IcW6JyNgl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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