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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Jul 08. 2022

짤림의 미학

짤림의 끝에는 '자기 인식'이 있다.

프롤로그


나는 현재 취업 시장에 내던져진 대졸 백수다. 올해 2월 학생 신분에서 말끔히 졸업하고 이제는 소위 '취준생'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먼저 취업을 한다고 한 적은 없지만 일이 그렇게 되어있었다. 그러나 취업이란 나에게는 아직 너무나도 아득한 단어로 느껴진다. 그간 이 한 몸의 아바타로 살아가면서, 어쩌면 나라는 아바타는 취업에는 답이 없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남들 다 하는데, 왜?


그간 아이스크림 가게, 샐러드 가게, 한복 가게, SPA 옷집, 백화점 옷집, 디자인실 인턴 등등 약 10번 내외의 알바 경력을 가지고 있으나 언제나 이 모든 것은 입사 후 최소 1일에서부터 3개월 이내에 퇴사로 이어졌다. 퇴사가 말이 쉬워 퇴사지, 말하자면 대부분은 '짤린' 경험이었다.


   최근에도 백수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뭐라도 해보자 싶어서, 집 근처 백화점의 옷집에 이력서를 넣었고 면접을 했다. 그런데 참 이러기도 어려울 텐데, 일을 시작한 첫 날에 짤렸다. 사회적으로 제 구실 못하는 사람도 아니고, 사칙연산도 하고, 말도 하고, 공들여 노력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점주들의 눈에는 그다지 마땅치 않은 모습으로 출력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또' 짤리고선 눈물도 안 나더라. 사실은 눈물이 나려고 했는데 참았다. 눈물나는 현실의 배후에 존재하는 그 진실을 너무 알고 싶어서,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는 이유가 뭘까 분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동안 살면서 성과도 좋고 기분도 좋았던 활동과 그 환경의 특징, 한편으로는 성과도 안 좋았고 기분도 안 좋았던 활동과 그 환경의 특징을 모두 낱낱이 적어보았다.


   이 아래에는 최근 알바에서 짤린 후 근처 도서관 열람실에 가서 고심하며 적은 내용이다. (편집 없음)




<내가 뭔가 성과도 좋고 기분도 좋았던 때는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일을 하고있었을까>

1. 내가 스스로 *리드할 수 있는 환경/상황에서 전문성(음악, 사업, 디자인)을 발휘하는 일.

*리드 = 주도 = 나만의 기준에서 창의성/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ex) 프리드 첫 번째 프로젝트

2. 졸업작품전.

사실은 나 혼자 시작하고 마무리해서 잘 해낼 수 있었음.

(리미트 기간이 있고, 정기적으로 할당량 점검.)


<내가 뭔가 성과도 안 좋고 기분도 안 좋았던 때>

1. 한 사람 이상의 뭔가 함께 *일하는 동료가 있을 때

*일 = 돈 버는 개념 = 바라는 기준에서 훨씬 엄격

2. 그 사람이 나라는 인간을 잘 모를 때 (친하지 않을 때)

3. 내가 하는 일에 중간중간에 *태클을 받을 때 - 내가 하는 일에 대해/나에 대해 믿지 않을 때

*태클 = 물론 컨펌 형식으로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나의 일에 대해 한 번 태클 건 사람은 결국 나와 잘 안 맞고 잘 안 되더라. (한 쪽에서 그러거나 쌍방이거나)


<그러면 반대로>

1. 혼자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2. 둘 이상일 때 그 상대가 나에 대해서 작은 부분이라도 알고 (아주 조그마한 부분이라도)

3.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신뢰할 때.

4. 스스로 리드할 수 있는 일

5. 내가 자신 있는 일




   이렇게 조금 적어보니 답이 나왔다. 그렇다고 그 답이 확실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확히 알게 된 것은 내가 앞으로는 나에게 맞지 않는 일에 대해서 아등바등 노력하며 살지 않아도 될 거라는 거였다. 왜냐면 나는 내가 분명히 잘하는 게 있다는 걸 알고 있고, 그것을 '인지'하는 것이 시작이고, '실천'만이 나를 그 '인지'로 이끌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번에 새로 시도하고 짤린 알바 또한 사실 그러한 '실천'의 하나였다. 그것은 나라는 사람에 대한 무지에 의한 실천이었으나, 그 '실천'을 통해서 나는 잘 맞지 않는 일에 대해서 알게 되었으므로 하나의 수업이었다. 속 쓰린 수업!


   짤린 그 날 도서관 열람실에서, 홀로 작은 노트에 줄줄이 글을 쓰다 보니 결국엔 내가 그동안 도전해보고 싶었던 일이 떠올랐다. 이전에는 99%의 용기는 있었지만 1%의 정보가 부족했던 일이 하나 생각이 났다. 바로 기타 레슨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도서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음악 레슨실을 빌렸다. 책상 하나 들어가면 방의 1/2이 찰 것 같은 작은 방이었지만, 좋아하는 가수 앨범 사진을 붙여놓아 인테리어 할 생각에 조금은 설레기 시작했다. 일단 한 달을 계약했고 나는 레슨실을 나섰다. 피곤한 다리를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길... 옅은 미소를 띈 표정을 비추어보기에 충분히 밝은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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