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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Aug 07. 2022

빠른 년생, 그 누구보다 느린

내 삶의 속도에 대한 이해

또다시 튕겨나간 자리에서


나는 생각했다. '진짜 나에게 맞는 게 뭘까?', '나라는 사람이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 말은 좀 그렇게 보여도 사실 비관적인 고민은 아니었다. 오히려 희망적인 편에 속했다. 또다시 짤림으로써 최소한 내게 안 맞는 일이 뭔지는 알게 된 거니까. 쓰라린 경험도 지금에서야 돌아보니 다르게 느껴진다. 당시에는 절망적으로만 느껴졌던 해고의 경험들은, 진짜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라는 삶의 경보음에 가까웠다. 말하자면 '너 자신을 알라. 그걸 모르면 뭣 되는 거야' 이런 느낌이었다.


   백화점 옷집에서 마지막으로 짤리고 난 후 다양한 탐구 활동을 했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책을 찾아 읽어보고, 일기를 쓰며 자아성찰도 해보고, 주변 사람들과 깊게 대화도 나누어보았다. 그렇게 조금씩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이해, 그리고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대한 이해를 구축해나갔다. 그러나 이 길에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에는 세상이 완전히 이해된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생겨났다. 그렇게 다시 똑같은 일상이었다.


   새로 구한 음악 작업실에서 저녁 늦게 집에 돌아가던 길, 세상은 고요하고 여름밤 공기는 후덥지근했다. 집 앞 버스에서 내린 나는 아주 느린 걸음으로 한 발 한 발 걸었다. 순간, 내 안에 무언가 다른 감각이 채워졌다. 빽빽한 여름 공기 안에서 투벅투벅 내딛는 발걸음은 아주 편안했다. 내 주변 세계도, 몸도, 마음도 완전히 이완되어있었다. 이 완벽한 안심의 감각 속에 내가 찾아 헤매던 답이 있었다.


나는 참 느긋한 사람이구나.

이 완벽한 안심의 감각 속에 내가 찾아 헤매던 답이 있었다. '나는 참 느긋한 사람이구나.'




빠른 년생, 그 누구보다 느린


내가 어딘가 느긋한 면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정말 인정하기 싫은 부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좋게 말해 느긋함이고 여유지, 빠름을 광적으로 권장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나의 느긋한 기질은 부정적인 어감으로 '느리다' 또는 '답답하다'는 표현에 가까웠다.


   심지어 나는 평생을 '빠른 년생'으로 살아왔다. 1월에 태어난 나는 7살에 초등학교를 입학했다. 내가 7살일 때, 같은 반에 나와 함께 앉아있던 친구들은 8살이었다. 따지고 보면 빠른 년생은 사실 느린 년생이기도 하다. 생년월일로 따지면 내 옆자리 친구들이 적게는 2개월, 많게는 1년도 더 오래 산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그게 얼마나 큰 차이라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여기서부터 조금 더 집중해주시기를 바란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서는 태어난 날짜와 성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캐나다 대표 아이스하키 선수들을 생년월일로  세워보았더니, 모든 선수가 1월에서 4월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캐나다는 1 1일을 기준으로 나이를 세고 이에 맞춰서 하키 선수 그룹이 정해진다. 그래서 1월에 태어난 선수들은 12월에 태어난 선수와 경쟁하게 되는 것이다.  태어난 아기들을 기준으로  , 10개월 아기와 22개월 아기는 성장 속도나 습득력에서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런 당연한 사실이 빠른 년생이라는 개념을 조금은 다른 관점으로 보게 했다.


   빠르기로는 1등, 심지어 국가 번호까지도 +82(빨리)인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면서 느긋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느긋하다는 건 한국 사회에서는 칭찬 거리도, 존중받을만한 미덕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에게 뿌리 깊게 박힌 '느린' 면모를 모른 척하고서 살아왔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나만의 속도를 찾고 그에 따라 삶을 살아가는 것은, 나를 알아가고 또 나를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걸.



갓 태어난 아기들을 기준으로 볼 때, 10개월 아기와 22개월 아기는 성장 속도나 습득력에서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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