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9. '진짜'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데
오늘 아침까지는 결정하려고 했다. 다음 주부터 일을 갈지 말지. 간다, 안 간다 씨름을 하다가 결국 내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모르겠다"다. 고작 활동반경이 집과 그 주변에 국한되었던 내가, 수많은 고객을 상대하고 뛰어다니며 관리해야 하는 큰 매장에 일을 하기 위해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변화였다. 일을 한지 일주일이 되었으니 고요한 일상에의 균열을 바쁘게 적응해야 하는 시기이다. 문제는 일터에서 마스크를 쓰고 말도 엄청하느라 일 끝나고 다음 휴일까지는 머리와 목이 엄청 아프다. 솔직히 이렇게 사람들이 힘들게 돈을 벌어먹고 사는지 정말 몰랐다. 아침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터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탄다는 것도, 도로 위의 대부분의 차가 출근하는 차라는 추측도 새삼스럽다. 예전에는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면 왜 그렇게 사는지 궁금했다. 학생으로 20년 이상 살아온 내가 느끼기에는 솔직히 '일을 굳이 해야 하나?' 싶었다. 사실 뭐, 안 해도 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하는 게 일이다.
취업이라는 말에는 어떠한 매력도 없다고 알았다. 지루한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출근도 마찬가지였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어린 시절의 공상이다. 어른의 삶이 어떤 영수표를 가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살면서 필요한 돈을 버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용돈을 받는 입장에서 돈이란 그저 제 날짜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것조차 엄마가 일을 해서 번 돈이다. 너무나 순진했다. 안전한 둥지 안에서 삶을 영위하다가 내 돈을 벌기 위해서 뛰어든 일에 나는 고작 일주일 만에 나가떨어졌다. 이런 극한 환경을 직업으로, 또 일상으로 둔 사람들이 있다는 데에 놀라울 뿐이었다. 그런데 이곳만 그럴까? 다른 일터도 마찬가지다.
나는 올해 초, 학교 가는 걸 그만두고 백수로 지냈다. 이외에도 하기 싫은 건 안 하면서 살았다. 하지만 상당 부분 채용공고들이 대학교 4년제 졸업장을 요구한다는 걸 보게 됐다. 돈 버는 일과 취업, 현실에 대해 재고해보는 날들이었다. 알고 지내던 유능한 친구들, 사업이나 유튜브를 하며 자신의 삶을 꽤나 재밌게 꾸려가던 친구들이 토익이나 오픽을 준비하고 취업을 했다. 재밌는 일들에 둘러싸여 반짝거리는 그 모습을 보는 게 덩달아 즐거웠던 제삼자로선 아쉬운 마음이 컸다. 하지만 멋모르는 사회초년생에게 월급쟁이가 되는 것만큼 돈을 벌기 "쉬운" 게 없다. 소규모 사업이나 유튜브는 사실 돈이 안 된다는 것도 사실이다.
대학 졸업보다는 워킹 홀리데이를 가서 해외에서 살고 싶다고 그렇게 바라던 나도, 그것이 하나의 경험이기도 하지만 곧 삶이 되고, 돈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멈칫했다. 말이 '워홀'이지 대부분 아르바이트생 신분으로 집세까지 모두 내고 살아야 하니 말이다. 두 발로 뛰어서 살 곳을 정하고, 일 할 곳도 찾아야 하는데 내 나라인 여기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이런 교훈들은 일차적 경고가 아니었을까. 좀 현실감각을 갖고 정신 차리고 살라는 말을 이렇게 격하게 전해주는 게 아닐까 싶다. 세상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 모르고 살았다. 충격과 부끄러움이 낱낱이 드러나는 요즘이다. 오만한 판단에 아주 코가 베이고 뒤통수를 맞기를 수 십 번이니 말이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루를 "일"로 채우며 사는지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교훈이자,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