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알라

ep 18. 그 의미에 대한 고찰

by 이진

 공교롭게도 오늘은 열여덟 번째 글이다. 오늘 할 이야기는 이 숫자와 꽤나 잘 어울린다. 18 어제는 파트타이머 4일 차로 근무를 했다. 악명 높은 '옷집 알바'다. 이전에 일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 쉽게 생각했지만 역시 만만치가 않다. 말 그대로 쏟아지는 듯이 들이닥치는 사람들의 옷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나에게 컴플레인이 들어왔다. 여섯 시간의 고된 노동을 버틴 몸과 멘탈을 겨우 붙잡고 매장 물건에 대해 화가 난 손님과 말씨름을 했다.


 일개 초짜 파트타임 직원인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사수에게 넘겨야 할 부분이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걸 모른 채로 상황을 모두 감당했다. 손님을 보내고 나는 화장실에 가서 서럽게 눈물을 뚝뚝 흘리고선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상황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는 여기서 내가 느낀 점은, 어떤 상황에서는 나는 내 주제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사원증을 낀 직원이고 고객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일인 사람이다. 새삼스레 그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많은 부분 중에서 일정 부분을 빌려주는 것이 곧 일을 하는 것이다. 나는 일터에서는 나 자신이라기보다는 직원 1에 가깝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있다. 한 번도 이 말을 깊게 이해해본 적이 없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무슨 말인지 알겠다. 저 여섯 글자 안에서 이루는 의미, 첫 번째로 '너'는 무엇일까? '너'가 있다는 것은 곧 청자인 '나'의 존재를 내포한다. 결국에는 '너'라는 말은, '나'와 세상('너')과의 상호작용의 의미를 가진다. 삶에서 맡은 역할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모두 역할이 있다. 학생, 직원, 사장, 직장인, 딸, 아들, 부모 등등. 이런 것들은 모두 세상과의 상호작용에 의한 단어들이다. 세상과 상호작용 속에서 스스로 깨닫고 행동할 수 있는 부분만이 '나'이고 그 외 전부, 보이는 것이나 역할이 세상 속의 나를 규정한다. 즉, 나는 세상에 의해 규정된다. 나는 '너'의 존재에 의해 규정된다는 말이다. '나'는 '나'이기 때문에 '내'가 아니라, '너'가 있기 때문에 '나'다. 나는 나라서 의미를 가지기보다는 너의 존재에 의해 의미를 가진다.


 다시 직원 1로 돌아가 보자. 손님 입장에서는 직원 1이 자신의 비위를 맞춰주길 기대한다. 그리고 직원 1은 응당 그래야만 한다. 그 역할이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그렇게 규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나를 잠깐 빌려주는 입장에서, 일터에서는 온전히 직원이 되어야 한다. 다른 예로 들자면, 나는 일터에서 '아가씨'라는 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있다. 그것이 '내'가 '나'라서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여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여자인 건 사실이긴 하다. 그러니 세상이 던지는 말들에 괜히 기분 더럽게 여기는 일이 없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나는 어쨌든, 몇 천년의 세월과 습관을 가진 세상에 사는 인간 1이니까 말이다.




 화내는 손님과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세상과 나의 관계에 대해 한 번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가진 역할들을 돌아봤다. 그걸 알아주는 게 먼저라는 생각에서다. 세상에서 나는 여자고, 학생이고, 직원이고, 직장 동료고, 딸이고, 동생이고, 친구이기도 하다. 일을 할 땐 직원이고, 공부할 땐 학생이 되자. 엄마 곁에선 딸이고, 직장에서는 원활하게 함께 일할 수 있는 동료가 되자. 세상 속에서 역할을 입은 나, 그리고 내가 느끼는 나를 조금은 떨어뜨려놓고 초연해질 필요도 있다. 쉬는 날엔 내면의 나와 관계를 맺기도 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거겠지. 오랜만에 일을 구했더니 잊고 살던 사회의 날 선 모양새에 대해 충격을 받은 기억이다.


관점의 차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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