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닫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성인애착유형 검사 결과 나는 회피형 애착 유형으로 나타났다. 자신은 믿을 수 있지만 타인은 그만큼 신뢰하기 어려운 자기 긍정-타인 부정의 심리 경향이다.
회피점수는 상위 16%였다. 100명의 사람들 중에서 약 16명 정도를 신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절반에 절반도 믿기 어려운 정도로 매우 보수적인 타인 신뢰도다.
한편 불안점수는 상위 66%였다. 해석하자면 내 안의 100가지 면모 중 66가지를 믿고 사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스스로에게 있어서는 절반 이상을 긍정하고 있다는 의미다.
성인애착유형 검사 결과에 따라 우리는 관계 속에서 자신과 타인을 바라보는 전반적인 신뢰도를 들여다볼 수 있다.
회피형 애착 유형의 본질적인 생각 회로는 이렇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 단, 나만 빼고.' 타인에 대한 불신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방황하고 충돌하게 되는 이유다.
이들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이 잘 없다. 타인이 나를 기꺼이 도와주리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독립적인 성향이 심해지면 세상 모든 짐을 홀로 짊어지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뼈 때리는 해석은 계속된다. 회피형 유형의 사람들은 타인과 가깝게 친해지는 것을 피하고 관계 속에서 일정 거리를 두려고 한다.
친밀도가 성숙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책임이 있는데 이들은 책임을 묻기도 싫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어주기도 싫어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도 않고, 받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회피 경향은 과거에 경험한 인간관계 속에서의 실망과 상처를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라고도 볼 수 있다.
회피형 애착 유형의 다양한 특징들은 내가 알게 모르게 갖고 있던 관계 심리를 상당히 많이 대변하고 있었다.
때때로 나는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가까워지고 싶지 않다. 좀 더 친밀해지고 싶은 감정이 들지만 결국에는 다가가기보다는 그저 내 감정에 등을 돌려버린다. 애초에 마음이 없는 듯 행동하는 것이다. 이렇게 내 맘이 내 맘 같지 않을 때면 이유도 모른 채 답답해졌다.
그래서 애착의 뿌리를 되짚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내 인생의 잎에서부터 줄기까지, 줄기에서부터 뿌리까지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실마리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떤 경험을 통해 회피형 애착 유형이 된 것일까? 해답을 곰곰이 떠올려보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관계 속에서의 기억을 하나 둘 떠올리기 시작했다. 애착 형성에 결정적인 시기인 유년기의 순간들에 대해 스스로 탐구해보고 싶었다.
우리 엄마의 육아방식은 방임이었다. 엄마는 오지랖은 좀 있었지만 자식들을 붙들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허용할 수 없는 부분에서는 매우 엄격히 통제하고 제한했다. 나에게 매우 중요한 사안일지라도, 엄마가 보기에 못마땅한 일이라면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엄마는 특유의 무시무시한 표정이 있었다. "안 돼"라고 말하는 엄마만의 방식이었다. 미간에 내 천 자(川)를 세우며 표정을 찡그리면 옥황상제도 완전히 압도할만한 무서운 얼굴이 되었다. 그 표정을 지으면 나는 내 생각을 충분히 드러내기도 전에 돌 맞은 개구리와 같은 꼴이 되었다.
공감이나 존중은커녕 하다 못해 결정 과정에서의 부드러운 회유도 없었다. 못다 핀 속내는 언제나 엄마의 내 천 자 미간 앞에서 쉽게 묵살되었다.
초등학생 때 엄마에게 조심스레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 나 친구집에 가서 하룻밤 자고 와도 돼?"
친구 집에 놀러 가서 하루 정도를 지내는 건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놀이 문화였다. 친구 부모님이 해주신 음식도 먹고, 옹기종기 모여 종일 수다를 떨며 하룻밤의 추억을 쌓는 것은 어린 나에게 로망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자초지종도 들을 새 없이 엄마는 곧바로 미간에 내 천 자를 그렸다. 엄마는 특유의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
그것은 엄마가 허용치 못하는 선이라는 걸 표현했다. 나는 다시 돌 맞은 개구리가 되어 주눅이 들었다.
아무리 그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도, 적당한 공감과 회유로 대화를 시도한다면 이는 긍정적인 훈육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세계에서 그런 일은 없었다. 이후로도 엄마의 그 무시무시한 경멸 지옥은 이따금씩 출몰했다.
중학교 3학년을 졸업할 때 즈음이었다. 원하는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시기였는데, 내가 가고 싶은 고등학교와 엄마가 원하는 고등학교가 달랐다.
내가 가고 싶은 고등학교는 인문계 여고에 교복이 예쁜 곳이었다. 엄마가 원하는 고등학교는 인문계 남녀공학에 두 명의 언니가 졸업해서 엄마에게 익숙한 곳이었다.
나는 나의 선택에 따라 교복이 예쁜 ㅇㅇ여고를 1순위에 올렸다. 그리고 엄마가 선호하는 ㅁㅁ고등학교는 2순위가 되었다.
그날 담임 선생님께 종이를 제출하고 나서 얼마 후 결과 발표날이 되었다.
'ㅇㅇ여자고등학교 배정.'
엄마는 배정 결과를 듣고서, 전쟁터에 나가는 횃불처럼 화를 내며 우악스레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엄마의 요동치는 감정은 난데없이 습격되었다.
"너 내가 ㅁㅁ고등학교 쓰라고 했지!"
엄마의 요동치는 분노는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웠다. 내가 갈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것은 그때까지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결정한 몇 안 되는 나의 독립적인 선택이었다. 나의 주체적 결정을 분노에 찬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엄마의 모습을 눈앞에서 보는 것은 너무나도 괴롭고 힘든 일이었다.
나는 사실 성인이 된 지금도 엄마로부터 온전하게 존중받은 기억이 없다. 엄마는 내 의견을 그 자체로 경청하거나 관심을 보인 적이 없었다. 진심으로 존중하거나, 다정한 응원의 말을 건넨 적도 없다.
집안에서 제일 어린 사람이라는 관념에 박여 엄마는 내게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항상 자신이 생각하는 허용지대 안에서 나를 풀어주거나 옭아매기를 반복했다.
그런 경험이 수십 번 쌓이다 보니 나는 자라면서 엄마나 가족의 동의 없이 결정하고 행동하는 일이 늘었다.
어차피 얘기하면 안 된다고 할 텐데. 심지어 무서운 표정으로 압도당할 텐데. 결국 불쾌한 경험이 될 일을 굳이 나서서 하는 사람은 없다.
엄마는 항상 내가 엄마에게 솔직하지 않다고 불평한다. 왜 너는 네 이야기를 나에게 솔직하게 해주지 않느냐고 한다. 언니들은 학교를 다녀와도 직장을 다녀와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데, 너는 왜 네 속 얘기를 나누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면 나는 엄마의 내 천 자 미간 속 경멸의 세계를 떠올린다. 멋모르던 어린 시절의 솔직함이 나에게는 그저 거부와 무시의 불지옥과 같았다는 걸 엄마는 절대로 모를 것이다.
가장 의지하고 믿는 사람으로부터 감정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라다보면 감정표현에 서툴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나의 감정을 표현했을 때 상대방에게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현실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믿게 된다.
그것은 감정적 무력감이다. 내 감정 표현이 전혀 쓸모가 없다는 느낌은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에 대한 수치심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을 억누르는 방법을 찾는다.
백지같이 새하얀 유년시절에 겪는 애착손상은 성인이 되면 결국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변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