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 명절 전쟁 (1)
"어, 이번에는 애들도 여행 간다 해서 없고. 그래서 제사 안 하려고."
거실에서 엄마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설을 앞두고 작은엄마와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방에서 나오다 우연히 대화 내용을 듣게 된 나는 속으로 '드디어!'를 외쳤다. 깊은 안도감이었다. 드디어, 이번엔 나도 집에서 편하게 쉴 수 있겠구나.
지난 몇 년간 나는 이미 제사 파업을 하고 있었다. 명절을 빌미로 한 친척 모임이든, 제사 음식 준비든, 심지어 제사상 앞에서의 절 한 번 참여하지 않았다. 명절날만 되면 여행을 가거나 집 근처 숙소를 빌려서 홀로 휴일을 보냈다.
그토록 나는 명절 문화가 싫었다. 세대를 이어 끊임없이 여성을 휴일 무급 노동으로 이끄는 제사의 본질에 대해 회의했기 때문이다. 내가 당장 그만두지 않는다면 앞으로 명절 무급 노동은 눈 깜짝할 새에 다음 세대로 계승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궁극적으로는 모처럼 맞이하는 휴일인데 집에서 편히 쉬지 못한다는 사실이 가장 불만스러웠다. 집안 구성원 모두가 바삐 움직이는 분위기 속에서 나 혼자 손 하나 깜짝 안 하고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분주한 거실을 피해 방에만 숨어있어야 하니 몸도 편하지 않았고 마음도 불편했다. 집안에 곳곳 배이는 제사 음식 냄새도, 집에 찾아드는 손님들과의 겉치레 형식의 불편한 시간도 꺼려졌다. 휴일이라는 점 빼고는 명절에 관한 모든 것들이 싫었다.
반면 언니들은 명절 제사를 지내는 엄마를 곧잘 도왔다. 밀레니얼 세대인 언니들도 제사를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는 않았지만, 엄마를 돕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큰집 며느리인 엄마가 모든 제사 일을 오롯이 맡게 되는 걸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엄마를 돕던 두 언니들이 올해 설 연휴에는 해외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언니의 결정이 이루어지자마자 엄마는 이번 설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언니들은 때 맞춰 여행을 떠났고 드디어 설 연휴가 시작되었다. 집에서 제사를 안 지낸다면 나도 더 이상 임시 숙소로 달아나는 신세가 될 필요가 없었다. 몸도, 마음도, 지갑 사정도 편안했다. 한편 그런 나보다 더욱 편안해 보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엄마였다.
엄마는 그 누구보다 편안한 얼굴로 비스듬히 거실에 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설 전날에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는 건 살아생전 없는 일이었다. 드디어 엄마도 한 번 쉬어보는구나 싶어서 흐뭇해진 나는 넌지시 말을 걸었다.
"엄마, 설에 일 안 하고 쉬니까 좋지?"
"어, 그러네."
엄마도 연휴 전까지 주 6일 출근을 했고, 나도 명절 휴일을 앞두고 바쁜 일이 많았다. 출근에, 책 출간 일에, 음악 작업과 신년 행사까지 여러모로 바삐 움직인 나날들이었다.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이번 설 연휴는 정말 말 그대로 '연휴'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완전히 안심했다. 드디어 명절이 무난히 흘러가나 보다. 세 딸들의 만유로 제사 규모를 줄인 적은 있어도 완전히 쉬기로 결심한 일은 엄마에게도 처음이었다. 엄마도 이번에 경험해 보면 쉬는 게 얼마나 좋은지 알겠지 싶었다.
그러다 나는 낮잠에 들었다. 깊고 달콤한 낮잠이었다. 한두 시간이 지났을까. 하늘은 흐리게 머무는 햇빛을 담고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어둑해진 하늘빛을 감지하며 잠에서 스르르 깼는데 심상치 않은 무언가가 코를 자극했다. 방문을 사이에 두고 밖에서는 소란스러운 분위기도 느껴졌다.
눈도 다 뜨지 못한 채 나는 문을 벌컥 열었다. 부엌에서 새어 나오는 빛에 눈이 부셨다. 엄마는 홀로 제사 음식을 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인상을 팍 썼다. 미간에 쓰인 주름은 방금 잠에서 깼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부엌 빛에 눈이 부셨기 때문이라는 말도 불충분했다. 전혀 생각지도 않던 상황, 즉 엄마가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까까지 제사 안 하기로 한 거 아니었나. 상황파악이 어려웠다. 일그러진 미간 그대로 나는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엄마, 제사 안 한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