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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Feb 09. 2023

가족이기 이전에 타인입니다

모녀 명절 전쟁 (2)

"나도 먹고 싶다고. 나도 먹고 싶어."


 엄마의 말투가 왱왱 귀에 맴돌았다. 억울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렸다.

 엄마는 내가 음식 하는 것도 너한테 허락받아야 하냐고 했다. 내 자율성 아니냐고 했다. 아니, 그러면 처음부터 제사를 안 하겠다고 하지 말던가. 그 사이 음식 냄새는 순진무구하게 집안 공기를 감싸돌았다. 지글지글거리는 부엌 소리도 한 스푼.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따진다고 해도 더 싸우기만 할 테고,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곧장 가방을 싸고 집을 나왔다.


 나는 너무 화가 났다. 엄마가 약속을 어겼다고 생각했다. 제사하지 않기로 한 약속. 황금 같은 휴일이 악몽으로 뒤덮이는 것 같았다. 편히 쉬고 싶었는데 예상치도 못하게 바깥을 떠돌게 되었으니 더욱 속이 상했다. 카페 한 구석에 앉아 오랫동안 사색에 잠겼다.

 흠, 아까 내가 인상을 너무 찌푸리고 말했나. 분노가 잦아드니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집에 들어가면 먼저 엄마에게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본격적인 대화를 하기 전에 먼저 나의 사과가 필요했다. 심경 그대로 말을 툭 뱉은 건 물론 내 잘못이었다.


 "엄마, 아까 내가 인상 찌푸리고 말해서 미안해."


 나는 먼저 용기 내어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면, 엄마도 조금은 미안하다고 할 줄 알았다. 제사를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제 멋대로 음식을 해버린 건 명백히 엄마의 배반이었으니까.

 하지만 엄마의 말속에 미안함이라고는 단 한 톨도 없었다. 엄마는 그저 온통 억울했다. 내가 내 집에서 음식도 못 하나.

 답답함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엄마, 나도 할 말이 있어. 여기는 나도 같이 사는 집이야. 그리고 명절 되기 전에 제사 안 하기로 말 다 해놓고 이렇게 하기 있냐고.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애초에 나갔잖아.


 엄마와 딸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렸다. 듣는 사람도 없었고, 들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서로 자기 얘기만 하고 있었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상처만 늘었다. 불통은 쉽게 질렸다. 엄마 쪽에서 그만 벌떡 일어나 대화는 끝났다.


엄마와 딸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렸다.




 이럴 때면 나는 큰언니의 역할을 떠올리게 된다. 나와 엄마 사이에서 항상 중재자 역할을 해주는 큰언니. 큰언니는 나의 생각도 이해해 주고, 엄마의 생각도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엄마와 나의 불통 평행선은 주로 큰언니의 오작교를 통해 화해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언니가 없다. <속풀이쇼 동치미> 모녀 갈등 편 MC역할을 해주던 큰언니가 여행을 떠나버렸다. 엄마와 대화를 한다 해도 상황이 풀리기는 어려웠다.


 갈등에 눈이 먼 나는 답답한 마음을 내세웠다. 차분하게 얘기하면 상황을 풀 수 있을 거라 희망하며 억지스럽게 대화를 권했다. 엄마, 여기 식탁에 좀 앉아봐.

 본질적으로는 엄마와 나의 대화 방향이 달랐던 것이 문제였다. 엄마는 과거의 일을 끄집어내어 오늘을 헤집는 사람이었다. 반면 나는 오늘의 일을 풀어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고민했다.


 "엄마, 언니가 여행 간다고 해도 제사하고 싶으면 하고 싶다고 말을 해. 안 한다고 해놓고 이렇게 멋대로 바꾸지 말고. 앞으로는 솔직하게 그냥 엄마 마음을 얘기해. 어떻게 하고 싶은지."

 "남들 집에서 냄새나면 나도 음식 먹고 싶은데, 내가 먹고 싶은 음식 하나도 못 만들어? 내 집에서? 그리고 니는 돕기를 하나, 먹기를 하나…. 네가 몇 년 전부터 비건 하고나서부터 이렇게 예민 떠는데, 나도 진짜 혼자 살고 싶어!"


 도돌이표로 돌아가는 대화. 평행선 위 두 외침이 절절히 울려 퍼진다.




 모녀 냉전 4일 차. 언니가 돌아왔다. 그사이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져있었다. 나는 며칠간 엄마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 말을 걸어도 시큰둥하거나 무시로 일관했다. 수동 공격의 방식으로 나를 보호했다.

 물론 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더 불편했던 건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엄마와 마주하는 일이었다.


 엄마는 언니가 돌아오기 한참 전부터 이미 다 풀린 듯 행동했다. 싸웠다는 사실도 까먹은 것 같았다. 나로선 황당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 아무렇지 않은 게 되나. 상황은 전혀 풀리지 않았고 궁극적인 해결점도 좁혀지지 않았는데, 엄마는 혼자서만 말간 얼굴이었다.

 진짜 편한 건가, 아니면 편한 척해서 불편한 순간들을 어물쩡 넘어가려는 건가 싶어 괘씸해졌다. 그럴수록 나는 건들면 손가락이라도 씹을 것처럼 싸늘하게 대응했다. 너무나도 소모적인 시간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큰언니는 우리가 싸울 걸 알았다고 했다. 저번에 나 서울 갔을 때도 둘이 싸웠었잖아. 맞다. 엄마와 나는 사이가 좋다가도 한 번 으르렁대면 뒤도 안 돌아본다. 언제나 화해의 큐피드는 큰언니의 몫이었다. 이번에도 큰언니는 우리의 자초지종을 차례로 들어보더니 말문을 틔웠다.


 "나는 너도 이해하고 엄마도 이해되거든? 근데 너는 계속 엄마가 약속을 어겼다고 말하는데, 내가 보기엔 그게 애초에 약속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엄마는 그냥 엄마가 할 일을 한 거야."


 언니가 엄마 쪽 손을 들며 게임은 쉽게 끝났다. 둘은 사이좋게 컵라면을 하나씩 끓였다.

 에이, 싸운 것도 아니다. 엄마의 한 마디까지 곁들여진 완벽한 종전(終戰) 선언이었다.




 나는 홀로 활화산과 같은 상태였다. 온 세상의 비관이 모여 단전에서부터 부글부글 끓었다. 애초에 타인에게 오롯이 이해받는 건 불가능에 수렴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가족이라는 핑크빛 관념 속에는 공감, 존중, 배려, 이해가 있다. 반면 현실은 불통의 메아리가 울려 퍼지는 동굴일 뿐이었다.

 가족주의적 환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 모든 믿음은 부서져버린다. 그러나 우리는 매번 가족이라는 낭만의 멱살을 잡는다.


 인간은 오롯이 자신의 경험에 비롯하여 세상을 바라보고, 사건을 이해하고, 상황을 처리한다.

 결혼 후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명절 제사를 지낸 엄마의 삶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엄마는 비혼을 지향하고 제사를 불매하는 나의 가치관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타인과 나의 좁혀지지 않는 간격, 그 틈에서 우리는 이해받지 못하는 슬픔을 느낀다. 한편 그 좁힐 수 없는 거리감이 바로 '자유'의 다른 언어다.


 만일 우리가 가족주의적 환상을 놓아버린다면 어떨까. 내 앞의 이 사람이 가족이기 이전에 타인이라는 걸 가슴 깊이 새긴다면 어떨까. 엄마고 딸이고 언니고 동생이기 이전에, 단지 자신만의 꿈을 꾸고 자신만의 영화 속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떨까.

 환상을 버리는  베인 상처의 딱지를 떼는 것만큼이나 아프지만 후련하기도 하다. 오히려  개인을 희망으로 이끄는 것이다. 환상 부서진 조각은 결국 두터워진 새살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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