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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Feb 19. 2023

나는 엄마를 사랑할까

당신은 이미지를 사랑하고 있다


인간은 처음부터 근본적으로는 타인을 사랑할 수 없는 존재이다. - 프로이트


문득, 내가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의 관계는 사랑이라기보다는 '설명이 필요 없는 편안함'에 가까웠다. 나는 엄마를 알고, 엄마는 나를 안다는 망상. 이 오해 안에서 관계는 흐르지 않고 멎는다. 서로를 꿰뚫어 본다는 오만에는 아무런 사고도 성찰도 없다.

    엄마를 대할 때 나는 실제 대상이 아니라 머릿속 이미지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곳에는 인간적 실재가 없다. 나는 섣부른 판단이 넘실대는 관념적 파도에 휩쓸릴 뿐이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엄마는 나라는 사람 그 자체보다 딸이라는 이미지를 사랑한다. 그것은 마치 엄마의 목숨줄과 같은 것이다.

    엄마는 딸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엄마는 자신이 배가 고프면 딸도 배가 고플 것이라 생각하고, 딸이 아프면 자신도 아프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갓난아이일 적에 양육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생존하고 배우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러한 동일시 속에서 뿌리 깊은 오해가 싹튼다.


    치명적인 결과를 부르는 오해와 오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실재를 외면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실재와 이미지 사이의 괴리를 마주하는 건 꽤나 끔찍한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가 현실이 매트릭스라는 걸 깨닫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끈적한 액체가 담긴 캡슐에서 빠져나와 현실을 자각하는 감정은 상상조차 어려운 무시무시한 두려움이다.

   가족도 타인의 한 부류라는 진실은 상식을 뒤엎고 기존의 가족주의적 관념을 붕괴시킨다. 무너진 관념과 이미지의 잔해들은 흩날리며 눈을 찌른다. 진실에 걸맞는 새로운 뼈대를 세우라고 강제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편안함을 추구하고 새로움을 거부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가족주의에 대한 희망 회로를 연결하며 스스로를 위안한다. 그래도 가족인데, 라는 말로 예외는 쉽게 형성된다.

    상상 속에서 취할 안도감을 위해서라면 가족주의자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가족이라는 포근한 관념이 가져다주는 안정감을 지킬 수 있다면 칼을 맞고 총을 맞더라도 그들은 파란 약을 삼킬 것이다.


가족도 타인의 한 부류라는 진실은 상식을 뒤엎고 기존의 가족주의적 관념을 붕괴시킨다.




    가족이라는 관념에 몰입하면 인간은 완전히 역할과 결합해 버린다. 딸, 엄마, 아들, 아빠라는 역할만 남고 인간적인 개인은 사라진다. 가족주의가 향하는 곳에는 가족주의자들이 목숨처럼 쥐고 있는 하나의 이미지가 존재한다. 우리 딸, 우리 엄마, 우리 아빠, 우리 아들, 그리고 우리 집으로 연상되는 따스하고 애틋한 이미지다.

    관념으로 이해하는 편리함에는 아무런 재고나 성찰이 필요하지 않다. 반면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은 너무나도 지난하고 불편하다. 살아있는 소통은 매 순간을 몇 십배는 길게 늘어뜨린다.

    대신 이미지를 통하면 우리는 대상을 쉽게 구분하고 이해할 수 있다. 게으른 인간 본성은 언제나 이미지를 택한다. 관념에 매몰되는 것은 인간의 무지성적 습관이다.


    부모님 또는 양육자가 아이들에게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우리 ㅇㅇ이 착하지." 그것은 존재적 대응이라기보다는 회유에 가깝다. 얘야 착해져라, 착해져라, 주술을 부리는 것과 같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배우고 익혀온 출처 없는 회유와 주술을 내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간다.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고 반문하는 나는 가족주의적 주술에 검을 뽑아 든다. 낳고 길러준 이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물어보는 이가 있다면 나는 되묻고 싶다. 당신은 가족을 사랑하나요, 아니면 가족이라는 이미지를 사랑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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