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엄마는 거짓말쟁이라도
백지상태로 태어난 아기는 자라면서 양육자에게 몇 가지 삶의 법칙을 배운다.
“차가 올 때는 조심해야 해.”
“사탕이나 젤리는 하루에 한 개만 먹어야 돼.”
“높은 곳에는 올라가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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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에게 엄마가 건네준 삶의 법칙 중 하나는 바로 거짓말에 관한 것이었다.
“절대 거짓말하면 안 돼.”
거짓말이란 어린 나에게 완전한 금기의 영역이었다. 거짓말을 하면 지옥불에 떨어지거나 도깨비가 잡으러 온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눈으로 볼 수 없기에 더 무시무시한 두려움의 신화였다.
엄마는 내게 매 순간 솔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그 누구보다도 거짓말에 능숙한 사람이다. 거짓말의 크기가 크든 작든 그렇다. 사실 엄마도 잘 알고 있다. 해명하기를 자신이 하는 건 선의의 거짓말이고 하얀 거짓말이라고 한다.
엄마와 통화를 할 때 주변이 소란스러울 때가 있다. “어디야?” 물어보면 엄마는 대답한다. “집이지.” 아무래도 집이 아닌 것 같아 다시 물어보면 엄마는 그제야 털어놓는다.
“아, 잠깐 여기 아줌마들 만나러 상가에 나왔어.”
엄마는 가끔 없었던 일을 완전히 있었던 일이라 믿게 만들 때가 있다. 최근 출가를 준비하면서 엄마와 나는 함께 집을 보러 다녔다. 해가 저무는 시간에 부동산을 보다 보니 마음에 드는 조건의 집이 있어도 바로 보러 가기가 어려웠다. 다음 날이 되어 엄마를 만나자마자 엄마는 내게 말했다.
“어제 그 집, 팔렸대.”
다른 동네에 있는 괜찮은 집도 있었는데 그건 어떻게 되었냐 물어보니, 거기도 안 판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보니 엄마는 그 부동산을 가보지도 않은채로 가서 얘기를 나눈듯 말했던 것이었다.
아주 사소하지만 엄마의 말에 모순되는 경험을 하다 보니 점점 나는 엄마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지 못하게 되었다.
한 번은 엄마가 나에게 크게 기분이 상한 적이 있다. 어느 날 대화를 하다가 내가 엄마를 믿지 못한다는 눈치를 챈 것이다. 그때 마주한 엄마의 표정은 청천벽력 같은 서운함이었다.
그럴 때면 나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왜 엄마 말을 문자 그대로 듣지 못할까? 왜 엄마 말을 전적으로 믿지 못할까? 아마도 그것은 엄마의 모순에 대한 배신감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교육했지만 엄마 자신은 매번 내게 거짓말을 해왔으니까.
돌이켜보면 나 또한 거짓말의 세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거짓말은 절대 없어야 한다는 엄마의 법칙과 신조를 듣고 자랐지만, 크고 작은 거짓말의 경험이 있다.
예를 들면 친구 집에서 놀고 온다고 해놓고 몰래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보러 가거나 인터넷에서 중고로 산 옷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친구에게 빌렸다고 말한 적도 있다.
내가 완전히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던 이유도 물론 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내 욕망을 완전히 저버려야 할 테니까. 무조건 "안 돼"부터 대화가 시작될 테니까. 내 의견과 생각은 공감받거나 존중받기 어려울 테니까.
교복 치마를 줄여 입고 싶다는 아이는 어떤 어른이라도 공감하거나 존중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 어른이 부모라면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울 거라 이해한다.
다만 어른들이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갖고 아이와 대화할 수 있다면 어떨까. 아이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경청해 줄 수 있다면 어떨까. 경청은 그 자체로 인정이고 수용이다.
이는 단지 교복 치마를 줄이거나 줄이지 않거나 둘 중에 하나의 결과를 선택하는 차이가 아니다. 오로지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가 내 말을 들었는가 듣지 않았는가' 하는 권위적인 시선으로 상황을 보는 것도 아니다.
대신 아이의 욕구에 어른이 진심으로 마음을 열었는가, 혹은 마음을 열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신념에 사로잡혀있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누구나 어떤 특정 면모를 가진 사람을 싫어하게 될 때가 있다. 그 포인트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 험담을 하는 사람이나 허세가 있는 사람을 싫어할 수 있다.
내가 별로라고 생각하는 유형의 사람은 누구일까, 들여다보면 사실 내 안에 잠재된 면모인 경우가 많다. 스스로도 얼핏 느끼지만 온전히 나타내지는 못한다. 만일 꼭꼭 숨기기만 했던 그 면모가 남에게서 보일 때 우리는 그런 특징들을 유난히 싫어하게 된다.
최근 나는 자격지심 있는 사람이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나는 사람을 보는 데 굉장히 괜찮은 포인트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따금씩 스스로 자격지심이 느껴질 때 그런 면을 전혀 인정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격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을 때 훨씬 더 밉게 느껴진 것이다. 그것은 마치 거울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괴로움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엄마도 그렇지 않았을까. 엄마도 인생을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수많은 거짓말을 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삶을 살아가는 누구나 거짓말을 하듯이 말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심리학자 제럴드 제리슨의 연구에도 사람은 하루에 평균 200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누구나 솔직하고 싶지만 살다 보면 그렇지 못할 때가 있다. 자신이 원하는 바와 행동이 다를 때는 스스로를 용서하기는 더욱 어렵다. 엄마도 아마 그런 이유로 어릴 때부터 나를 거짓말로부터 해방하고자 애쓴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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