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기의 인간이 하는 일

ep 22. 글쓰기

by 이진

 글쓰기다. 글쓰기는 아주 많은 매력을 가지고 있다. 마치 인생이 안 풀리고 어려울 때만 찾게 되는 점집 같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한다. 그들이 시작한 지점은 곧 그들이 무너졌을 때이다. 삶이 지루하고 목표가 없는 직장인, 적성에 안 맞는 직장을 돌연 퇴사하고 훌쩍 해외로 떠난 워홀러(워킹 홀리데이를 가는 사람) 등 어쨌든 모두 자신의 삶에 빛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나는 이 세상에 회의감만이 가득한 한 명의 젊은이였다. 의심, 불만, 욕심이 씨앗을 틔웠다. 그 진심에서 나오는 순수함이 잘게 분쇄되어 심장 한가운데에서 영상으로 빛났다. 금빛이라기엔 눈이 무척 아리고, 다이아몬드 빛이라기엔 조금 불투명한, 나의 마음에서 비롯된 모든 작은 조각들이 일몰의 햇빛을 비추어 아름답게 흩날렸다. 이렇게 고고히 부서진 마음을 다잡으려 처음 시도한 것은 글쓰기였다. 그 첫날, 나는 무선 노트 반절을 채웠다. 그것이 3개월 전이다. 그곳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삶에 관대해지자.


 이전의 무모했던 일상에서 깨어나려고 꾸물대던 순간이다. 삶에의 관대함은 곧 세상에 대한 용서를 이끌어내기 위한 시도였다. 동시에 그런 세상 속에 들어앉아 사는 나 자신에 대한 용서가 필요했다. 나는 그렇게 깨달았다. 그동안 얼마나 회의감만을 소중히 여겼는지를. 가진 것에의 감사함도 아니고, 오늘 하루 즐거웠던 일에 대한 기쁨도 아니고, 그저 가진 것이란 회의감과 불만뿐이었던 때였다. 그래서 나와 세상의 발전 가능성을 넘어볼 여유가 없었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나를 꾸준히 돌아봤다. 그동안 불필요하게 만들어냈던 나름의 문제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홀로 풀어야 할 본질적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불만 가득한 세상에 눈을 돌렸다는 것이다. 책 '월든'에서 저자 데이비드 소로우는 이렇게 말한다. "홀로 내면의 대서양과 태평양을 탐험하는 것보다는 국가에서 제공하는 배를 타고 500명의 선원을 거느린 채 추위와 폭풍우와 식인종에 대항해 싸우며 수천 킬로미터를 항해해 돌아다니는 편이 훨씬 쉽다".




 나의 에너지를 외딴곳에 모두 소모하고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동시에, 내가 돌아온 그 중심은 고요하고 따스한 집을 상기시키는 이전과는 다르다. 말하자면 조금 더 어둡거나 깊고, 날 것과 같다. 슬픔은 깊음이 되고, 깊음은 기품이 되고, 기품은 기쁨이 되었다. 매일 직면하는 글쓰기를 통해 나는 아직도 그 갈림길을 더듬어간다. 삶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있는 것이다. 내 시야에 모든 미래가 예상되는 순간, 그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것을 이제는 이해하려 한다. 확실하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흘린 눈물이 태평양 바닷물과 맞먹는다. 하지만 그조차도 하나의 존재 표현이라는 것을 안다. 살아있다는 증거다. 그러니 여기서 그저 할 수 있는 건 지금 현재를 관대함의 길로 이끄는 것뿐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글쓰기를 통해 내면의 나와 대화를 한다. 존재에 더 관대해지길, 그리고 처음 펜을 잡던 창조의 용기를 기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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