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4. '어린 나'를 수호하는 언니 되기
'직면 명상'이란, 두려운 상황이나 사건을 일부러 기억해내면서 그와 얽혀있는 조건반사적 습관을 풀어내는 명상 방법이다. 이를테면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개와 관련된 트라우마 상황을 떠올리고 그에 따른 반응을 새롭게 연습하는 것이다. 상상 속에서부터 두려운 상황에 놓이는 연습을 하면서 점점 개가 두렵지 않게 되고, 현실에서까지 개를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조건 실험은 단지 무서워하고 불안해하는 것이 그 상황에서 비롯된 감정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최근 명상을 하다가 기억에서 떨쳐내고 싶은 순간들이 떠오른 적이 있다. 그래서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직면 명상 기법을 사용해보았다. 나는 유독 어릴 때부터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느끼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런 상황 속에서 받은 상처들은 잊고 살다가도 가끔씩 떠오를 때가 있기 마련이다. 항상 잊어버리려 노력하거나 그냥 두면 자연스레 까먹게 되는데, 이번 직면 명상에서는 오히려 나의 연대기 순으로 오래된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이전 상처들과 기억을 훑었다. 일부러 기억해내는 직면 명상 기법은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던 나의 상처들에 관한 새로운 감정을 가져다주었다.
약 네 번, 15분가량의 직면 명상을 했다. 이곳에 그 방법과 후기를 써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사용한 명상 기법은 '지금의 내'가 '어린 나'에게 직접 다가가서 상황을 해결해 주는 방법이었다. 모든 메커니즘이 어차피 과거의 일을 상상해내는 것이다. 상황은 내 기억 속에서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즉 상상과 기억 속에서 필요하다면 어떠한 것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나는 어린 꼬맹이를 수호하는 언니를 자처하였다. 과거로 돌아가서 어린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혼을 내면서(?) 어린 내가 만족할만한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이 방법은 사실 그 사건들이 그렇게 큰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면서도 어린 나에게 안도감을 선물해주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성인이 된 후의 상황을 떠올리기도 했다. 언젠가 내가 정신병원에 상담을 하러 갔을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정말 가고 싶지 않아 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 앞에서 내가 인생으로부터 느끼는 것에 대해 상담을 하자니 내키지 않았지만 가족들이 병원 상담을 하러 가는 것을 권유해서 억지로 갔던 기억이다. 결국 말똥한 정신으로 모든 질문에 따박따박 대답을 하고 돌아왔다. 나와서도 기분이 안 좋았다. 그 때는 유난히 삶과 가족관계, 사회 등에 큰 회의감을 느꼈었던 때다. 그래서 얼마간 가족과 거의 말을 잘 하지 않았다. 그게 아마도 상담을 권유했던 이유였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이번 직면 명상을 하면서 당시 감정과 상황을 떠올려보았다. 곧바로 그때가 생생히 떠오르면서 순간 서러움의 눈물이 일었다. 나를 기다려주기보다 성급히 병원 상담을 요구한 가족이 미운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약간의 눈물을 쏟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아도 그 기억은 그냥 그대로였다. 하지만 나는 이를 통해 '서러움'이라는 몰랐던 감정을 직면할 수 있었다.
명상을 끝내고 눈을 떠도 이전에 겪었던 상황들이 더 나아졌다는 생각은 없었다. 흉터가 없어졌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기억하는 상처를 두 눈으로 똑똑히 바라볼 수 있었다. 그중 몇 개는 별거 아닌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시간의 흐름은 모든 것을 치유한다. 당시에는 아주 힘든 일이었을지는 몰라도 지금의 나는 그 모든 일들이 오래되어 색이 바랬다는 것을 안다. 과거에 마주친 사람들과 화해하고, 상황을 용서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어린 나를 보호해주기도 했다.
기억의 부피가 적어진 것을 느낀다. 현재는 꽤나 괜찮은 하루하루를 산다. 문제를 만들어서 문제가 된다는 말이 있다. 문제라고 여겼던 것들이 따지고 보면 문제가 아니게 되는 일들이 허다하다. 그러니 이제는 일시적 사건들에 좀 더 단단해지고 초연한 사람이 되고 싶다. 직면 명상도 꾸준히 하면서 오래되고 빛바랜 상처에 조금 더 무딘 사람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