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억은 불쑥 찾아든다
돌봄 선생님으로 일하다 보면 가끔씩 흠칫 놀라는 순간들이 있다. 아이 곁에서 동심으로 돌아간 듯하다가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숨겨진 기억을 알아차릴 때다.
7살 지혜(가명)는 포켓몬을 좋아한다. 하루는 유치원 등원 전에 잠깐 시간이 남아 함께 그림 그리기를 했다. 지혜는 포켓몬에 나오는 캐릭터인 마이농을 그리겠다고 했다. 연필로 먼저 삐뚤빼뚤 선을 긋고 마이농의 시그니처인 파란 귀를 푸르게 색칠하여 완성했다.
지혜 곁에 앉아서 나는 도라에몽을 그렸다. 먼저 검은 사인펜으로 선을 그리고 색칠했다. 파란색 색연필로 머리와 몸을 채우고, 작고 둥그런 코와 목걸이는 빨간색으로 꼼꼼히 채웠다. 시그니처인 목걸이 방울은 노란색으로 슥슥. 몰입해서 그림을 그리다 보니, 한창 만화를 좋아하던 어린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도라에몽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였다. 오래전에 유행했던 만화라 지혜는 잘 모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혜도 도라에몽을 잘 안다고 했다. 도라에몽을 아는 2016년생이라니. 미심쩍다는 듯 다시 물어보니 지혜는 소리 높여 말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유치원 친구들 중에서도 아마 모르는 아이들이 없을 거라며 원래도 동그란 눈에 힘이 들어갔다.
지혜의 적극적인 리액션에 신이 난 나는, 지혜에게 도라에몽의 비밀을 하나 알려주었다. 도라에몽은 고양이인데도 불구하고 귀가 없다. 그 이유는 어릴 적에 쥐가 몰래 도라에몽 귀를 파먹었기 때문이라고 속삭였다. 비밀얘기를 하듯 흥미진진하게 풀어내는 비하인드 스토리에 지혜는 이내 웃음을 참는 표정을 지었다.
지혜는 포켓몬 중에서도 피카츄를 가장 좋아한다. 도라에몽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은 지혜는 내게 피카츄의 비밀을 하나 알려주었다.
"선생님, 피카츄 아빠 있는 거 알아요?"
"진짜?"
"네, 포켓몬에 저번에 나왔어요."
"그렇구나. …… 좋겠다."
내가 대답을 하자마자 지혜는 나를 휙 돌아봤다. 지혜는 의문스러운듯이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나도 당황스러웠다. 피카츄가 아빠가 있다는 말에 왜 '좋겠다'는 말이 무심코 나온 걸까. 나는 조금 사색에 잠겼다.
그동안 나는 아빠의 부재에 대해 아무렇지 않은 듯이 살아왔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서는 그 사실이 조금은 아쉬웠던 건지도 몰랐다.
겨우 아홉 살이 되었을 때를 기억한다. 매일같이 집안에는 고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술 취한 아빠를 타박하는 엄마의 목청이었다. 소리 지르는 엄마와 아빠 곁에서 고등학생인 두 언니들과 초등학생인 나는 싸움을 말리거나 방으로 도망쳤다. 마땅히 편안해야 할 집은 전쟁터같았다. 집에 경찰이 드나드는 일도 잦았다. 술에 취해 자신의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아빠를 볼 때면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내가 열 살이 될 즈음에 아빠는 머리를 다치게 되었다. 그날도 술이 문제였다. 지인의 장례식에 가서도 술을 마시던 아빠는 이마를 크게 다쳤다. 이마가 깨져 뇌에도 손상이 갔는데 그것으로 인해 아빠는 난폭한 기질이 되었다. 뇌에서 전두엽은 충동적인 행동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데, 아빠가 넘어져 다친 곳이 바로 이마에 가까이 위치한 전두엽 부분이었다. 술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데다가 충동성이 더해지니 함께 사는 가족들은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아빠는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알코올 중독 치료로 오랫동안 병원에서 입원해 지내다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나는 아빠가 죽어버린 것이 그에 대한 해방이라고 생각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빠와 엄마가 싸우지 않아도 되고, 불편한 부녀 관계를 겪을 필요도 없을 테니까. 그래서 어린 마음에는 아빠가 일찍 돌아가셔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빠의 부재는 한편 아픈 기억이기도 했다. 아빠의 존재와 역할 부재에 대한 아쉬움이 마음 한편 숨어져 있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미처 용서하지 못한 슬픔이 쌓였다.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냐고 아직도 나는 아빠를 원망하고 싶다. 술에 취해 말도 통하지 않던 아빠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엄마도, 마음껏 미워하고 싶다. 그와 동시에 힘겨운 가정사를 모두 보고, 듣고, 경험하고, 견뎌온 어린 나를 꼭 안아주고 싶다. 마땅히 존경하고 사랑해야 할 어른들을 마음껏 사랑할 수 없었던 슬픔을 깊이 애도하고 싶다.
그렇게'라도' 살아왔던 못난 어른들의 모습을 이제는 긍휼히 바라보려고 한다. 그래,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니까. 부모라는 역할 뒤편의 인간적인 그림자에는 내가 모르는 일들이 있을 테다. 용서라는 말을 쉽게 꺼내고 싶지는 않지만 이것은 원망을 넘어 나의 삶을 살아내고자 하는 노력이다.
나부터 못난 어른이 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아이들이 사랑하기 쉬운 어른, 그보다도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면 좋겠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부모님을 이해하고 더 이상은 원망하지 말고 피해자 신분에서 벗어나 내 인생의 주인이 되겠노라' 가슴 깊이 장엄하게 선언할 용기를 얻길 바랍니다.
- '정서적 흙수저와 정서적 금수저', 최성애·조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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