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6. 단어가 주는 힘과 용기
무소유, 나의 하얀 책상 벽 바로 앞에 보이도록 붙여놓은 한 단어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책상 벽에는 포스트잇이 여러 개 붙어있었다. 아인슈타인이나 릴케, 차미리사 등 지혜롭고도 본받을 만한 사람들의 인용구를 잘 보이도록 덕지덕지 붙여놓았었지만 얼마 전 나는 그것을 모두 떼어냈다. 그리고 텅 빈 벽 중앙에 조그맣게 '무소유'를 적어 붙여놓았다.
이 글자는 볼 때마다 매번 새롭다. 그 이유는 그 단어의 모양부터 균형감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자음 ㅁ, ㅅ, ㅇ으로 이루어진 자음은 직선과 사선과 곡선을 한 글자씩 보여준다. ㅁ은 각진 땅을 표현하고, ㅅ은 그 사이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처럼 보인다. ㅇ은 우주나 자연을 나타내는 것 같다. 모음도 ㅜ, ㅗ, ㅠ로 매우 단순하면서 든든히 자음을 받쳐주며 존재한다. 받침이 없어 군더더기가 없다. 우아하고 소박하게 외유내강을 뽐내는 이 세 글자가 나에게 주는 에너지가 있다. '단단해져라', '텅 비어서 살라'고 단어가 말을 건네는 것만 같다.
무소유 정신이 최근 몇 년 사이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끝없이 오르는 세상의 욕망 때문인 듯하다. 동시에 미니멀리즘의 인기도 한 몫한다. 인간의 욕심이 오르는 길에는 끝이 없고 하나를 가지면 다른 하나가 갖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얼마 전, 언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수상도로를 쌩쌩 달리고 있을 때였다. 창문 너머로 펼쳐지는 광활한 바다가 우리 모두의 눈길을 끌었다. 푸른 바다의 평행선, 그 위에는 요트가 몇 대 놓여있었다. 멀리서 그것들을 관조하던 나는 결코 생각도 하지 못했던 말을 엄마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저기 작은 요트에 타고 있는 사람은 큰 요트를 보면서 다음에는 저걸 사야겠다 생각하겠네." 더 나은 것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심을 꿰뚫은 말이다.
내가 이해한 무소유는 지금 이미 가지고 있는 물건을 돌아보고, 만족하고, 사용하라는 의미이다. 그것이 곧 물건이 존재하는 도리이기 때문이다. 물건은 물건이고 도구일 뿐이다. 책 '무소유'를 쓴 법정스님은 밀짚모자도 구멍이 날 때까지 썼다고 한다. 스님의 닳고 구멍 난 모자를 보고서 어떤 불자가 스님에게 새 모자를 선물해주었더니, 이미 있는 모자를 왜 주냐고 했다고 한다. 결국 그 모자는 선물한 사람의 것이 되었다. 가진 것을 아껴 쓰고 태를 만들어서 사용하는 미덕을 실천하던 법정 스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본받아야 할 것이다.
단지 구멍 뚫린 양말을 그냥 신자고 말하는 단순한 관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소유가 시사하는 의미는 모자나 옷과 같이 단지 물건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인간의 감정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똑같다. 기분이나 마음도 텅 비어 두고 무소유 정신을 활용하면 불필요하게 일희일비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어떤 사공이 배를 타고 가다가 다른 배에 부딪혔을 때 배에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나무라고, 배가 비어있으면 그저 피해 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즉, 다른 사공과 부딪히더라도 빈 배처럼 존재하라는 말이다. 화를 내는 것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그다지 쓸모없는 일이다. 상황과 반응에 연연하지 않는 텅 비어있는 사람이 되면, 나에게도 세상에게도 관대해질 수 있다. 무소유는 내게 끝없는 실천이자, 욕심을 버릴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단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