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40. 나를 용기 있게 직면하는 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을까? 내가 추론한 답은 '아니다'이다. 우리는 적게는 하루, 길게는 한 달까지도 매 순간 변성하며 산다. 일상, 습관, 자주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 즐겨보는 미디어의 내용 등이 쌓이고 쌓이면 우리는 미세하게 변화한다. 스스로 전혀 알지 못하는 정도로 말이다. 이전의 나를 끊임없이 상쇄시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순환하고 바뀌지 않으면 우리는 고여버릴 테니 말이다.
내가 겪은 가장 극적인 변성의 길은 아마도 2년 전에 시작되었을 것이다. 휴학 후 나와 세상을 배워가는 시기에 접한 페미니즘은 본격적으로 변화의 씨앗을 틔웠다. 페미니즘에 이끌리고 공감하는 이유와 그 뿌리에 대해 배우기 위해 책을 읽고, 전시회를 가고, 강연을 듣고, 다큐멘터리를 봤다. 첫 번째 단계는 배움으로 시작되었다. 많은 정보를 접하고 나의 생각을 빚어나가며 만들어진 내적인 변화는 금세 외적으로도 드러났다. 머리를 짧게 잘랐고, 화장을 하지 않았고, 치마나 원피스 같이 나를 수동적으로 행동하게 하는 옷들을 모두 버렸다. 대신 편하고 질 좋은 옷을 입었다. 그렇게 나의 내적 외적 변화에 따라, 깊이가 결여된 인간관계들도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었다.
채식을 하기로 결심한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우연히 암소나 암탉에게 가해지는 무자비한 폭력성을 고발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우유나 계란이 만들어지려면 암컷 동물들이 임신 또는 배란 상태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동물들에게 억지로 강간 막대(rape stick)로 정자를 주입하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살면서 계속해서 즐겨먹었던 동물성 식품에 대해 전혀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던 나는 이러한 생각의 메커니즘을 처음 접하게 되면서 비건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점차 식습관을 바꾸어나갔다. 동물학대와 같은 윤리적 논의 이외에 사람들에게도 식물성 식품이 훨씬 몸에 잘 맞고 건강하다는 정보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아직 한국사회에서 채식인으로 지내기는 까다롭기는 하지만, 점점 세상이 바뀌는 것을 느낀다. 작은 노력을 통해서 지금까지도 비건 지향을 노력하고 실천한다.
새로운 관점, 새로운 사람들의 의견을 접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빚어내는 활동에서 변성의 길이 존재한다. 인간이라면 변화의 길을 두려워한다. 익숙하고 편한 것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것이 사실은 당연하다. 하지만 세상은 고인물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세대는 교체되고, 법도 때가 되면 바뀐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도 매번 성찰을 통해서 새롭게 변성해가야 하지 않을까. 물론 변성의 길에는 수많은 장애물이 존재하고, 나를 직면하는 과정에서 두려움이 생겨날 수 있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나, 그 무한함을 알게 되는 부담감이 우리를 제자리에 머물도록 만든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가능성이 많은 존재라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이전에는 사회가 이끄는 대로 또는 남들의 행동과 말이 이끄는 대로 살아왔다면, 누구든지 이제는 생각의 뿌리부터 다시 나의 것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 길은 매우 귀찮고 성가시다. 스스로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변화의 과정 속에서 나와 세상을 알아가는 기쁨도 있다. 모든 것을 모르고 살던 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올해 인생에서 두 번째 변성의 길을 걷고 있다. 오랫동안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던 습관들을 직면하면서 나를 돌아보았다. 그동안 하기 싫다고 여긴 것을 대부분 회피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즐거운 일 한 가지를 위해 하기 싫은 일 아홉 가지를 해내야 한다는 것을 안다. 부끄러움은 잠시, 다시 칼을 갈며 새로운 날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오늘은 새벽 명상을 하며 '인내'와 '용기'라는 단어를 바라보았다. 요즘 일상에 가장 필요한 두 글자이다. 하루를 소중히 잘 보내는 것조차 인내를 기르는 일이자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