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56. 인생 첫 예금통장을 만들다
돈에 대해서는 그다지 목표랄 게 없이 2n 년을 살았다. 돈이야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아낀다는 마인드였다. 물론 매달 저축도 했지만, 올초에 유럽 여행을 갔다가 모아둔 돈을 몽땅 써버린 이후로는 대체로 불규칙적으로 돈을 모았다. 가령 평소 쓰는 카드로 여유를 부리다가 갑자기 잔고가 없어지면 저축통장에 모아둔 돈을 날름날름 빼 쓰는 식이었다. 얼마 전엔 심지어 22만 원 상당의 스케이트 보드를 충동적으로 구매하기도 했다. 물론 카드에는 돈이 없으니 저축통장의 돈을 20만 원 빼서 샀다. 한 다섯 번은 탔을까...
이렇게 돈 모으기라고는 의지력 제로에 수렴하던 내가 올해 하반기에는 제대로 돈 목표를 세웠다. 12월 말까지 100만 원을 모으는 것이었다. 이것도 10월이 다 돼서야 생각한 것이다. 어쨌든 오늘 당장 하지 않으면 평생 못 할 테니까. 플래너 제일 마지막 장에 저축 날짜와 목표를 쓰며 마음을 다잡았다.
목표의 힘이었을까? 100만 원은 생각보다 일찍 달성되었다. 운 좋게 하게 된 하루치 알바의 몫, 일주일하고 그만둔 옷집 아르바이트비 등으로 생각지 못하게 빠르게 채워졌다. 나는 평소 매달 용돈을 받고 지내는데, 한 달에 30만 원을 받고 10만 원을 저축하는 게 나의 목표였다. 그래서 용돈이 들어오는 날을 곧 저축하는 날로 정하고, 카드를 쓰기 전에 미리 저축통장에 돈을 빼놓았다. 저축할 날짜를 확실하게 정해놓으니 잊어버리는 일이 없었다. 이 방법으로 나는 저축을 하고 나서도 여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다. 잔고가 있나 없나 확인해가며 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러다가 돈이 없으면 안 쓰면 된다.
드디어 통장 잔고로 찍힌 100만 원이라는 숫자를 보았을 때 이렇게 두었다가는 또 다 써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공부를 시작했다. 적금이니 예금이니 달러 투자니 하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검색을 해보았다. 유튜브 '티끌모아 한솔', '돈립 만세', '김짠부' 채널은 최근에 구독하게 된 채널들인데 돈에 대한 흥미 있는 이야기를 듣고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수많은 영상을 총망라한 결과 나는 예금을 하는 게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식이나 달러 투자는 계속 시세를 보며 견제해주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약간의 피곤함이 동반된다는 단점이 있다. 모르고 투자하다 보면 원금손실 가능성도 있다. 안 그래도 최근 '미니 스탁' 어플로 투자를 했다가 아마존 등지가 후루룩 하락하는 것을 눈뜨고 보고 있어야 했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생각보다 성가신 감정노동(?)을 하게 되니 언짢더라. 투자는 공부 없이 머리만 들이밀었다가는 눈뜨고 코베이는 데는 시간문제다. 그러니 앞으로 점점 돈과 경제를 배워나가면서 어느 정도 자신이 들 때 시도해보려 계획하고 있다.
어쨌든, 예금 통장을 하나 만들기로 생각을 하고 보니 나머지 문제는 '어떤 은행을 선택할 것인지'에 관한 고민이었다. 결론적으로는 이율이 그나마 더 높은 제2 금융권에다가 100만 원을 안착시켜놓았다.
이렇게 돈을 모으고, 어떤 방법을 사용하여 돈을 가지고 있을지 고민해보고, 실제로 예금통장 개설을 해보는 것까지 모든 것이 하나의 공부이자 즐거운 여정이었다. 사실 이제는 쓰는 것보다 모으는 게 더 재밌다 싶을 정도이다. 운동화라도 하나 좋은 거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돈을 모으는 것이 더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 소비욕구도 잠잠해진다. 이렇게 돈에 조금의 관심을 주고 목표를 세우는 것이 이만큼의 효과를 거둘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음 해 목표는 1년에 200만 원을 모으는 것이다. 벌써 100만 원을 모아 예금을 해놓았으니, 200만 원 목표는 이미 벌써 시작되고 있다. 매달 10만 원씩 모으면 120만 원이고, 종종 용돈이 들어오는 일이 있기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있으니, 그것으로 80만 원을 채워 보려고 한다. 올해의 2배나 되는 목표지만, 그간 잘 따라와 준 모습을 보면 내년에도 목표한 200만 원이 생각보다 금방 모일지도 모르겠다.
돈을 모으는 것도 습관이다. 무의식적으로 쓰는 것도 습관이다. 나는 소비하는 습관보다는 모으는 습관을 들여보려 한다. 매번 무엇에 더 가치가 있는지 재고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돈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도 해보고, 소비와 저축비율을 조절하며 내년 1년의 저축통장은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가야겠다. 아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아끼기로 약속이다. 얼마 전에 책에서 본 뼈를 때리는 명언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젊었을 때는 돈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다.
나이가 들고 보니 그것이 사실이었음을 알겠다.
- 오스카 와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