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태도

ep 7. 이왕이면 축제처럼

by 이진

어젯밤 오랜만에 엄마와 언니와 한바탕 이야기 꽃이 피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엄마가 문득 친할머니 얘기를 해주셨다. 친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엄마는 요양병원에 있는 할머니를 끝까지 돌보았다. 한 때는 할머니가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던 때도 있었다. 나는 당시 초등학생이었고 할머니가 나를 부를 때 항상 '똥강아지'라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다 같이 살다가, 할머니가 몸이 더 안 좋아지시는 바람에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엄마는 할머니의 생전 시절을 떠올리다가 할머니의 옛날 습관을 하나 떠올렸다.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기 전에는 항상 엄마의 전화번호를 물어봤다. 초등학생의 나에게도, 대학생인 언니에게도, 엄마에게도 물어봤고 매일 작게 접은 종이에다가 적어두셨다. 가족들의 전화번호를 항상 물어보셨다. 처음에는 언니들과 아빠의 전화번호까지 모두 적어두다가, 언젠가부터는 엄마의 전화번호만 물어보시더라. 작은 종이에 적어두고 무언가 하나라도 기억을 해내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혹은 가족들에게 한 마디라도 말을 걸어보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할머니가 항상 여러 군데 전화번호를 적어두었던 것을 기억한다. 손바닥만 한 수첩에, 작게 접은 종이 등을 가방에 항상 넣어 다니셨다. 엄마의 이름 옆에 전화번호가 적혀있던 기억이 난다. 엄마를 '엄마'나 '누구 엄마'가 아닌, 성을 뗀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할머니뿐이었을 테다.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호주머니에 넣어두는 그 마음은 아마 우리를 기억하고 싶다는 소망이 아니었을까.


엄마는 요양보호사로 오랜 기간 일하고 있다. 영세민인 할머니, 할아버지의 집에 들러서 그들을 돌보는 일이다. 엄마도 그동안 돌봤던 사람들이 죽음이라는 단계를 넘는 여정 곁에 자주 있었을 테다. 엄마가 이야기해준 그들의 '끝'은 그토록 삶이었다. 죽음에 가까워지는 사람들이 어느 순간 쥐고 있던 것을 놓아버리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무언가를 꼭 쥐어들고 살다가도 결국 죽음에 다다랐을 때는 그 무엇도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된다. 아무리 돈이 많고 주변에 사람이 많더라도 갈 때는 홀로 가야 하는 것이다. 결국 0으로 태어나 0으로 향하는 것이 삶이 아닐까. 그래서 많은 이들이 무소유를 말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진실이다. 언젠가부터 할머니도 더 이상 우리에게 가족들의 전화번호를 물어보지 않으셨다.


인간은 죽음이 가까워지면 삶을 어떻게든 더 이어나가고자 한다. 아무리 자신이 하는 일이 눈 뜨고 밥을 먹는 일 뿐이라도, 하루라도 더 살고자 한다. 엄마가 최근에 자주 보는 할아버지는 귀도 안 좋고 눈도 잘 안 보이고 항상 집에 누워있기만 하는데도, 15년은 더 살 거라 말했다고 한다. 15년 뒤엔 99살이 되는데, 할아버지는 그만큼은 더 살고 싶다며 삶에의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죽음이 멀게만 느껴지는 젊은 사람들은 쉽게 죽음을 논하게 된다. 공자의 유명한 말처럼, 삶도 충실히 못하면서 어떻게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삶이 힘겨울 때도 있지만 그 조차도 나의 존재 표현이다. 삶의 돌부리도 소중히 감싸고 싶다.


고작 100년 살기도 어려운 이 몸 하나가 내가 가진 전부라면, 나는 삶이 축제이길 바란다. 모두가 축제를 즐기길 바란다. 잃는 것을 두려워 말고, 어차피 이 세상에 빌어 사는 것이니 너무 빼지도 말고, 충분히 즐기고 사랑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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