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얘기하기 좋은 계절

ep 6. 그리고 사계절 뒷담화

by 이진

 가을이다. 완연한 가을이다. 언젠가 내가 어릴 때 엄마에게 어떤 계절이 가장 좋으냐고 물어봤다. 엄마는 가을이 가장 좋다고 대답했다. 당시 나는 따뜻하고 예쁜 꽃이 피는 봄을 제일 좋아했다. 어린 내가 봤을 때는 왜 쓸쓸하고 스산한 기운이 도는 가을이 좋은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나도 한 해 두 해 지나다 보니 봄 여름의 풋풋하고 따뜻한 계절보다는 가을이나 겨울 같은 차갑고 성숙한 계절이 더 좋다.


 봄을 좋아하다가 최근에 바뀌게 된 이유는, 봄 특유의 붕 떠있는 계절감 때문이다. 봄이 점점 시작되는 3월에는 개강도 있다. 그래서 봄 하면 느껴지는 것은 분주함이다. 그 분주함이 나를 붕 뜨게 만든다. 겨울에 적응한 몸을 좀 녹이다가 이제 봄을 좀 즐겨볼까 하면 벚꽃은 길거리에 모두 떨어져서 굴러다닌다. 그리고 대학생이라면 벚꽃 고사(중간고사가 벚꽃 필 시기에 있다는 이유로 붙은 이름)도 있다! 겨울바람을 그대로 가지고 온 꽃샘추위, 봄비가 내린 후 바닥에 모두 떨어진 벚꽃잎을 한탄하다 보면 어느새 여름이 온다.


 여름은 내가 사계절 중 가장 꺼리는 계절이다. 딱히 여름 자체를 싫어한다기보다 여름에 마주치는 일련의 것들이 나를 조금 귀찮게 만든다고나 할까. 첫 번째로 한국의 여름은 매미 소리와의 싸움이다. 나는 매미 소리가 국가적 소음공해로 분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복 재생 녹음기를 켜놓은 듯 똑같이 울려대는 소리는 특히 올해 집에만 있었던 나를 극도로 성가시게 했다. 문을 닫고 에어컨을 켜자니 전기세가 걱정되고, 창문을 열까 닫을까 고민하다가 여름이 다 지난 것 같다. 이외에도 모기라던가 땀이라던가 습한 날씨라던가 장마라던가, 여러모로 단점이 가득한 계절이다. 하지만 여름이라서 즐길 수 있는 것들도 있기는 하다. 이를테면 저녁의 선선한 바람과 풀벌레 소리, 네 캔 만원의 편의점 맥주 같은 것들. 어느 날 이른 아침 눈을 떴을 때 찬기운이 느껴질 때가 있다. 벌써 가을이 온다는 알림이다. 그 날은 아마 일 년 중 가장 센티한 날일지도 모른다.


 잠옷을 긴팔로 바꾸어 입고, 아침에 느끼는 스산한 공기에 하루 이틀 적응하다 보면 너무나도 좋은 가을날이 온다. 하늘은 높아지고 색은 파란 도화지만큼 푸르다. 해는 그대로 강렬하지만 바람이 선선해서 가장 좋다. 최근 한 두 달간 느낀 가을은 정말 아름답다. 여름의 푸릇한 뒷 산에 점점 따뜻한 색이 물들 때 나는 완연한 가을에 도착해있다. 길거리에는 은행나무 열매를 밟아 놓아서 꾸리꾸리한 은행 냄새가 나지만 그조차도 가을이라 좋다. 가을, 가을, 가을. 군더더기 없이 너무 예쁜 단어다.


 겨울은 이제 곧 올 테다. 벌써 점점 아침저녁으로는 꽤나 춥다. 길어야 한 달쯤 지나서는 두꺼운 코트에 패딩을 입을 테고, 집에는 보일러를 틀어 바닥이 부분 부분 뜨끈하겠지. 길거리엔 캐롤송이 들리고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를 오랜만에 듣겠지. 나는 겨울도 가을만큼이나 좋다. 크리스마스도 좋고, 따뜻한 집도 좋다. 이불속에서 까먹는 귤도 좋고, 고구마도 좋다. 카페에 앉아 사계절 중 유일하게 따뜻한 음료를 시켜먹는 것도 좋다.


가을이 오니 날씨 얘기를 하게 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길을 잃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