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는 이유

ep 4.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by 이진


대학교를 포기한 후 어마어마한 시간적 자유가 나에게 들이닥쳤다. 모든 것을 해도 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해내지 않았다. 왜였을까? 나의 일상을 지탱하는 아무런 기반이 없었기 때문이다. 학생도 아니고, 일하는 노동자도 아닌 나는 말 그대로 백수가 되었다. 하루하루를 그저 심심하고 지루하게만 보낼 때 나는 다시 돌아갈 자리가 없었다. 그 자리란 즉 "일상"이다. 학생은 공부가 일상일 것이고, 노동자는 일하는 것이 일상일 것이다. 나는 일상의 중심을 놓아버린 것이다.


겨울방학을 포함한 몇 달간의 자유는 좋았다. 올해 1월 말 충동적으로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곧바로 2월이 되었고, 개강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나는 수강신청을 하지 않았다. 아마 까먹었을지도. 어쨌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여름 즈음이 되었을 때 나는 무언가가 변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 집에서 유튜브만 보고 있던 나를 어느 정도 자각하고 반성한 것이다. 아! 그래. 그럼 그동안 하고 싶었던 걸 해보자. 그래서 가장 먼저 수영을 다녔고, 집 근처 피아노 학원도 등록했다. 각각 두 달, 한 달 하고 마쳤다. 일상을 하나 둘 가지게 된 나는 점진적으로 활기를 되찾았다. 하지만 수영장은 머지않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문을 닫았고, 피아노도 두어 곡 연주하게 되니 만족이 되어서 다시 수강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집이었다.


집에 돌아온 나. 나는 다시 책상에 앉았다. 내가 가장 먼저 했던 것은 매일 모닝 페이지 쓰기였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썼다.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서 글을 쓰며 나는 겸손을 배웠다. 반성을 하게 되었다. 어떠한 이유로 내가 학교를 그만두었는지, 왜 인스타그램과 같은 가짜의 것에 매달렸는지. 나는 내 안 깊은 곳에 존재하는 두려움을 발견했다. 그 중에는 졸업작품전에 대한 두려움도 존재했다. 졸업작품전을 조금도 준비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나를 얽매었고, 학교 자체를 회피하게 만든 것이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 회피로 이루어진 사단이었다.


모닝 페이지를 쓰며 깨달은 몇 가지 이유들이 나를 고취시켰다. 왜 내가 현재로부터 도피를 하였는지 스스로 이해한 것이다. 옛날에 사둔 다이어리부터 꺼내 들었다. 먼슬리 칸에 날짜를 적고 모닝 페이지를 오늘 썼다는 표시를 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새로운 페이지로 들어섰다. 오늘 하루 무엇을 할지 몇 가지를 적어두었다. 완료를 하면 체크 표시를 했다. 이를테면 낮잠 자지 않기 그런 것들도 나의 하루의 목표였다. 그렇게 조금씩 내가 할 일을 찾아갔다. 즐겨하던 영어공부를 했다. 영단어를 외웠고 영어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화상 영어를 한 달 끊어서 일주일에 세 번 수업을 들었다. 운전면허를 따기로 결심했다. 필기를 쳐서 합격했고, 다음 달에는 기능시험을 위해 학원에 수강할 것이다. 그리고 내년, 대학교 재입학을 결심했다.


이 모든 점진적 변화들은 나를 다시 세우기 위한 작은 노력이었다. 회복의 길은 무척 험난했다. 감사하게도 지금은 안정적인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요즘 나는 매일 저녁 감사일기를 쓴다. 감사할 일을 하루에 다섯 개씩 적는 활동이다. 작성한 지 약 2주 만에 감사일기는 나를 큰 폭으로 변화시켰다. 어느 날 전에 쓴 감사일기를 읽어보면서 울컥하기도 했다.


감사하지 않아서 생기는 일들이 있다. 나는 주변에 존재하는 당연한 모든 것들을 잊고 있었기에 길을 잃었다. 길을 잃어야만 했다. 왜냐면 나는 다시 돌아와야 했기 때문에. 삶에 감사할 일은 정말 많다. 하다못해 영어를 공부하다가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한국어에 감사해지고, 오늘 본 달이 예뻐서 달을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해진다. 숨을 쉴 수 있어서 감사하고, 아침에 먹은 과일이 맛있어서 감사하다. 딱히 걱정 없이 밥 챙겨 먹고살 수 있어서 감사하고,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이 아름다워서 감사하다. 가족의 존재가 감사하고, 가족끼리 잠깐씩이라도 나누는 대화가 감사하다.


무슨 일을 하든 일상의 과제를 이끌어내는 활동이면 된다. 오늘 하루를 보내기 위해 아침에 눈 뜰 수 있으면 된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든 일상을 보낼 것이고, 그 자체로 감사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오늘 아침 눈을 뜨며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살아있구나! 나에게 아침이 있다는 그 자체로 얼마나 큰 축복인가. 나는 잠에서 깨어 안도했다. 오늘도 나는 감사일기를 쓸 것이고, 저녁에는 산책을 하며 나무 향기를 맡을 것이고, 며칠 남지 않은 영어 시험을 준비할 것이다. 그런 것들이 나의 하루를 채운다. 나는 지금 이 순간, 글을 쓰며 몰입하는 순간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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