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9. 기억은 망상의 집합체다
요즘 유독 과거에 대한 기억이 문득 떠오르곤 한다. 카메라로 찍어놓은 듯 특정한 장면이나 사람이 떠오르는 등, 과거에 아직 매여있는 나 자신을 느낄 때면 내가 현실에 사는지 과거 속에 사는지 혼란하기도 하다. 아침에 명상을 할 때 떠오르는 마구잡이식 과거 이미지들이 나를 얽맬 때, 나는 그 모든 것들을 들이마신다고 생각하며 호흡을 한다. 다시 숨을 내뱉을 때면 조금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이렇게 매일 현재로의 균형점을 찾으면서 나를 돌보는 일은 아마도 끝없이 지속될 것이다. 과거라고 말하는 그 모든 것들이 색이 바래서 무감각해질 때까지 말이다.
색 바랜 과거에 대해 말을 하다 보니 내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학교 내에서 '은근히 따돌리는 것'(줄여서 은따)이 유행처럼 번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게 어떻게 번져나갔는지는 그다지 생각나지 않지만, 그때는 어제의 전우가 오늘의 적이 되는 식이었다. 인기 많은 몇몇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든지 배신과 배신을 거듭하며 왕따의 가해자가 되고 또 피해자가 되었다. '내가 따돌림을 당했다면 쟤도 당해야 된다'는 심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모두들 한 번쯤 따돌림을 받던 시절, 한 번은 내가 표적이 된 적이 있다. 자주 가는 놀이터에 내 이름과 욕이 군데군데 써져있었고, 학원가는 버스를 타는 곳 벽에도 이름과 욕이 써져있었다. 그때는 그게 정말 끔찍했다. 몸이 차가워지고 식은땀이 나는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꼭 그 놀이터를 빼고 놀러 다녔고, 중학교 때까지도 나의 욕이 써진 벽 그 주변도 가기 싫어서 일부러 돌아 돌아 목적지를 가곤 했다. 하지만 점점 놀이터를 다니는 나이가 넘어가고, 학원 차를 기다리던 아파트 단지의 벽도 새롭게 페인트를 칠하면서 나의 상처도 서서히 잊혀갔다.
만약 이와 같은 나의 기억들이 나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 된다면, 나는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망상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이 잊힌 만큼 다시 생각해낼 때는 기억의 왜곡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대체로 더 나쁜 경우로 말이다. 우리 각자에게는 그간 길러온 수많은 기억들이 있다. 이 '경험된 감정'은 현재 사건의 꼬리를 물고 비슷한 반응을 만들어낸다. 왜곡된 기억과 반응을 두렵게 여기면서 망상에 푹 적셔지지 않으려면, 매일의 기억과 경험을 모두 잊어버리고 나의 오늘을 매번 새롭게 해야만 한다. 오늘이 1일 차의 삶인 것처럼 말이다.
기억은 모두 이미지로 구성되어있다. 과장된 감정과 함께 딱딱히 굳어진 이미지는 언제나 현실감을 방해한다. 잊힌 것들에 대한 뒤틀린 기억을 만들어내며 영향받지 않으려면, 모든 것이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임을 깨닫고 과거로 존중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즉 과거를 과거로써 바라보는 행위 자체로 감정을 왜곡해서 들여오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오늘의 나를 저녁 어스름과 함께 떠나보내고, 다시 태어나듯이 다음날 아침을 맞이한다면 매일이 훨씬 더 편안해질 것이다. 과거를 떠나보내는 것만큼 현재의 나를 더 잘 돌볼 수 있는 일은 없다. 과거를 떠올릴 때 나는 망상에 가득 차지만, 현재를 살 때 나는 이 자리에 있을 뿐 어디에도 굳은 감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