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80.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빅 픽처' 감상기
*약간의 스포 있음
현학적이고, 구체적이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빅 픽처'의 주인공 벤 브래드포드는 월가의 변호사로 일한다. 가족으로는 아내 베스, 아들 애덤과 조시가 있다. 그는 변호사로서 엄청난 돈을 벌지만 스스로 하는 시답잖은 일들-가령 수많은 서류 작업들-을 혐오하면서도 계속 일을 한다. 자신이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일은 사진 찍는 일이지만, 이는 꿈으로 가슴 한편에 묻어두고 아마추어 사진가로서 남는다.
브래드포드 가족 주변에 얼쩡거리며 부부를 거슬리게 하는 이웃 남자, 게리 서머스가 있다. 주변 사람들 앞에서 매우 거만한 태도를 뽐내는 그는 사실 제대로 된 일자리도 하나 없고, 가족이 남긴 유산을 정기적으로 받으며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며 살아간다. 그래도 게리는 사진 찍는 일을 하며 자신의 꿈을 이루며 사는 사람이다. 태도는 거만하고, 돈 안 되는 사진 일을 하는 것도 질투 나기 딱 좋은 게리가 벤의 눈에 좋게 보일 일은 없다. 소설은 브래드포드 부부와 게리 서머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중심으로, 벤의 1인칭 시점 문체로 진행된다.
초반 흐름에서는 소설의 문장들이 쓸데없이 군더더기가 많다고 느껴졌다. 다르게 말하면 젠 체, 뽐낸다고나 할까. 배경이 월스트리트인 만큼 고위층 변호사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설명을 덧붙이는 설정을 쓴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그래서 그런지 책도 두껍고 소설이 굉장히 길다. 말끔히 정리된 문체를 좋아하는 나는 살짝 거슬림이 있었지만 소설 내용 자체가 일상을 드러내는 글이기도 하고, 주인공의 현실에 대해 서술할 때는 구구절절함이 허용되는 구석도 있다. 문체로부터 그의 생이 잘 드러났다면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을 읽는 가장 큰 묘미는 소설의 제목이 지어진 경위를 추측하는 데에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왜 제목이 '빅 픽처'인지 아직도 모호하다. 약간의 스포일러를 하자면, 그가 또다시 새로운 삶을 선택하고 살아갈 때쯤엔 맨 처음과 다시 비슷한 생활이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이 아마 빅 픽처였을까? 아무리 새로운 신분으로,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일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그 자신이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면 거시적 관점에서는 똑같은 그림이라는 뜻이 아닐까.
벤은 자신의 삶을 직면하기보다는 도망치며 살았다. 최악의 상상으로 최선의 선택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 곧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과오였다. 벤은 끝까지 도망치는 행위를 반복하지만 공허를 깨닫고 마지막 삶으로 돌아온다. 결국 그가 자기 자신에게로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벤의 모습을 통해서 한 인간에게 입히는 모든 것들-가령 직위, 신분, 가족 등-이 달라지더라도 이전의 삶과 굉장히 비슷하게 살아간다는, 놀라운 무위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