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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서 Aug 29. 2021

민폐 끼치지 않고 죽을 수 있을까

죽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해

언니랑 오랜만에 같이 영화를 봤다. ‘어느 날’이라는 영화였는데, 후반부에 주인공의 아내가 주인공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도로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장면이 나왔다.


“진짜 못됐다. 저렇게 죽으면 남은 사람은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나는 언니를 슬쩍 쳐다보고 말했다.


“너무 힘들었나 보지”


“그래도 그렇지. 죽으려면 다른 데 가서 죽어야지 무슨 민폐냐 저게.”


언니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존재하지도 않는 영화 속 여성의 편을 들어주고 싶어 뭐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속으로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죽을 때도 남 생각하면서 죽어야 하나?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하고 이해해 줄 수는 없나? 진짜 너무하네. 저 여자도 저러고 싶었겠냐고! 남한테 피해 주고 싶어서 죽는 사람이 어딨어’


그러나 곧 언니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여성을 친 운전자나 남편인 주인공은 본의 아니게 죄책감에 휩싸였을 테니까. 그 생각은 꼬리를 물어 어떻게 하면 민폐를 끼치지 않고 ‘왜 이렇게 이기적이야’라는 말을 듣지 않고 죽을 수 있을까로 이어졌다.


‘뛰어내리거나 목은 메는 건 안 돼. 나를 처음 발견한 사람한테 그건 너무 몹쓸 짓이지’

‘나 때문에 집값이 떨어지면 안 되고... 이웃한테 피해가 가면 안 돼. 최소한 자기 명의 집에서 죽어야겠어’

‘혹시 모르니까 유서는 꼭 써야지. 타살이라고 의심해서 헛고생하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시체가 부패되기 전에 발견되려면 예약 메시지를 설정해서 119한테 보내야겠다. 최대한 상황 설명을 자세하게 해야겠어. 아무리 구조대원이라도 이런 일에는 익숙하기 쉽지 않을 테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내린 결론은


죽기 위해서는 인적이 드문 곳 자기 소유의 주택에서 미리 119에 예약 메시지를 걸어놓고 유서를 쓴 뒤 번개탄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젠장할. 이게 무슨 장기 프로젝트도 아니고. 집 살 돈 모으는데만 최소 5년은 걸리겠네.'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 5년 뼈 빠지게 일해서 지방에 다 무너져가는 주택 하나 샀다고 치자 그러면 끝나는 건가?'


계획대로 모든 일이 척척 진행된 후 상황을 상상해 봤다.


울고 있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너 이렇게 가면 우리는 어떡해"


결국 내 죽음은 민폐가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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