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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서 Aug 29. 2021

아무리 귀한 생선도 3일이 지나면 악취가 난대

나도 그냥 생선이었던 거지

나에게는 2살 차이의 언니가 있다. 언니는 외가가 있는 지방에서 대학을 다녔고 거기서 직장을 구했다. 덕분에 나는 종종 언니 집으로 휴가를 가곤 했다(말이 휴가지 실제로는 도망이나 다름없기는 했지만).


그러나 아빠는 내가 외가가 있는 곳에 있다는 자체를 싫어했고 대학생 때는 토요일마다 엄마 가게에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길어봤자 2박 3일이 최선이었다. 그래도 언니 집은 내 숨구멍이자 비빌 수 있는 작은 언덕이었다. 그 당시 언니는 자기 앞가림하는 것도 벅차서 오히려 내가 아껴 모은 용돈을 언니에게 쥐어주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든든했다. 내가 집을 나와도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생각했고 언니가 날 보살펴 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언니는 나만 두고 집을 나간 게 미안했는지 한밤중에 내가 울면서 전화를 해도 묵묵하게 들어줬다.  나는 우울한 이야기를 쏟아내면 사람들이 날 싫어할 거라고 생각해서 좀처럼 주위 사람에게 속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언니는 예외였다. 우리는 자매고 함께 유년기를 보낸 동지니까. 우리는 서로가 각별하니까 울면서 전화를 해도 내가 언니를 질려하지 않는 것처럼 언니도 나를 싫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전부터 나는 한참을 전화번호를 뒤적이다가 결국에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은연중에 언니가 원하는 삶을 사는 대가로 나는 부모님 비위 맞추면서 살고 있으니 언니는 날 가여워해야해 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언니 집으로 향했다. 이사를 도와주고 처음 방문한 것이니 1년 반 만이었다. 언니는 아빠가 구해준 집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윽박지르고 타일러도 서울에 올 생각을 안 하니 안전한 곳에나 살라며 구해준 집이었다. 그동안은 나는 졸업도 해야 했고 작가 알바 아카데미며 신경 쓸 일이 많아서 갈 수 없었다. 그래도 취직하기 전에 갔다 와야지 싶은 마음도 있었고 부모님이 방송작가가 되는 것을 극심하게 반대해서 위로도 필요했다. 부모님이 싫어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은 내 마음속도 지옥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언니한테 위로와 응원이 듣고 싶었다.


도착한 내게 언니는 언제 서울로 갈 생각이냐고 물었고 나는 금요일쯤이라고 구체적으로 정하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머무는 내내 언니는 계속 남자 친구와 연락을 했다. 밥을 먹으러 가도 카페를 가도 그 사람 이야기만 내게 했다. 언니는 내 상황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러던 와중에 문득 언니는 내가 빨리 가길 원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저곳에 남자 친구의 물건들이 보여서 나 때문에 그분이 집에 못 오고 있는구나 싶었다. 나는 그런 언니의 눈치를 살피며 실없는 농담을 연신 내뱉었다. 그러면 언니는 웃으며 내 어깨를 가볍게 때렸고 나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언니가 내게 다시 물었다.


“너 언제 갈 거야?”


“왜?”


“아 내가 금요일까지 건강검진받으면 무료로 받는데 네가 이번 주에 계속 있으면 다음 주에 받으려고. 근데 그때는 돈 내고 받아야 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그게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물어보려다가 그냥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럼 이번 주에 받아야지. 나 금요일에 갈게. 언니 금요일에 검사받아. 터미널까지는 내가 혼자 갈 수 있으니까”


“안 데려다줘도 괜찮아?”


“응 혼자 갈 수 있어”


대답을 하고 나는 혹시나 내 얼굴에서 서운함이 묻어 나올까 봐 고개를 돌린 채 휴대폰을 보는 척했다. '아무리 귀한 생선이라도 3일이 지나면 악취가 나' 어릴 때부터 아빠가 자주 해주던 말이었다. 아무리 귀한 손님이라도 3일이 넘어가면 불편하고 귀찮다는 말. 3일이 지나니 내 몸에서 썩은 내가 풍겼던 모양이다. 당장 언니 집에서 나오고 싶었지만 본가에도 가고 싶지 않았고 다른 숙소를 잡자니 돈이 아까웠다. 어차피 결국에는 다시 본가로 들어가야 하는데 며칠 더 미룬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싶었다.


다음날 건강검진이 빨리 끝난 언니가 터미널까지 나를 바래다줬고 나는 머물게 해 준 답례로 돈 40만 원을 언니에게 줬다. 언니는 너무 큰 금액이라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방송국 알바로 생활비를 버는 내게 작은 돈은 아니었지만 그 돈으로 언니가 나의 방문을 귀찮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그리고 원래부터 생일 선물로 주려고 했던 돈이었고).  


돌아오는 내내 버스에서 생각에 잠겼다. 내게 비빌 언덕은 없구나. 누구도 나를 자신만큼 생각해주는 사람은 없구나. 언니한테도 힘들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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