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울증이란 걸 알고 난 직후 역설적이게도 나는 살고 싶었다. 그냥 남들처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채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우울증도 병이니까 치료를 받으면 나을 수 있겠지. 그러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야’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병원에 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정신과 약을 먹는 게 무서웠고 상담 치료를 받을 돈도 없었다. 먼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의 우울에 대해 알아차리지 못하니 병원에 갈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인터넷을 검색했다.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우울증 극복기에 대해 털어놓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우울증 극복 방법을 따로 정리해 리스트로 만들었다.
1번 밥은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먹기
2번 꾸준히 운동하기
3번 햇빛 쬐며 산책하기
4번 잠에서 깨면 침대에서 벗어나기
5번. 6번 7번...
리스트가 길어질수록 괜히 흐뭇했다. 이대로만 하면 금방 좋아지겠다 싶었다.
간단한 일들이라 생각했지만 리스트대로 행동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래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과 내일을 기다리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버텼다. 헬스장을 가고 땀을 흘리고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면서.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좋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별거 아니네’
그러나 나의 그런 오만함에 이번에야 말로 본때를 보여준다는 듯 우울은 다시 나를 밑바닥으로 끌고 늘어졌다. 그동안의 노력이 무색할 만큼 나는 저항 한번 못해보고 그대로 끌려 내려갔다. 아니 애초에 나는 계속 밑바닥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현실 파악을 못하는 내 모습에 우울은 단지 그냥 내 발목을 툭 건드리며 “너 여기 있어. 정신 차려.”라고 이야기 해준 걸지도.
화가 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다만 우울증이 정말 치료가 가능한지 궁금했다. 이게 정말 완치가 가능한가?
누군가 우울증은 감기와 같다고 말한 게 떠올랐다. 감기같이 흔하게 걸릴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었는데 나에게는 다르게 느껴졌었다. '우울증이 감기라면 계속 걸릴 수 있겠구나. 그러면 나는 평생 우울증이 나아지고 있다는 기대와 다시 우울함이 내 안에 퍼진다는 좌절과 절망을 반복하며 살아야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가슴을 쥐어뜯고 싶을 정도의 답답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