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커밍아웃 -절망편-
처음 시도한 커밍아웃은 씁쓸함과 자기혐오만을 남겼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완전한 방법이 없다면, 나는 상황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우울증에 대해 커밍아웃하기고 결심했다. 학교 상담가 말로는 주변 사람에게 우울증이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을 줄일 수 있을 거라고 했기 때문이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이 커밍아웃으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우울의 수준에 도달하기를 바랐다.
솔직히 말을 하는 게 쉽지가 않았다. ‘내가 이렇게 나약해요’라고 선언하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고 나의 우울에 대한 고통을 상대에게 전가시키고 싶지 않았다. 우울은 워낙 전염성이 강한 감정인지라 나의 고백으로 21살 한창 대학생활에 흠뻑 빠져 있는 친구들에게 걱정이나 부담을 안기고 싶지 않았다. 또 이 고백으로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무서웠다.
한편으로 나는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길 원했다.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 눈물만 그렁거리는 나를 그냥 꽉 안아주길 원했다. 이겨낼 수 있다고 다독여주기를, 밖으로 나가자고 내 손을 끌어당겨주기를 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기적이고 어린 마음이었다. 사람들은 생각 이상으로 남의 고통에 신경 쓰지 않는데 말이다.
친한 친구 4명이 있던 단톡에 손을 부들거리며 메시지를 썼다. 몸이 떨려서 서 있을 수 없어 그만 주저앉았다. 메시지는 간단했다. 그런데 그 한 줄을 보내기까지 10분 이상을 망설였다.
“애들아 내가 상담을 받았는데, 내가 우울증이래”
간신히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는 오열했다. 그 눈물이 어떤 감정에서 비롯됐는지는 모르겠다. 혼자서 꾸역거리며 참았던 시간에 대한 안쓰러움인지 무너져 버린 자존심인지. 잠시 뒤 친구들이 카톡을 보냈다.
“힘내 지서야 우리 있잖아”
“그래 힘들면 우리 불러”
그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친구들이 내게 달려와 주기를 기대했다. 한 편의 청춘드라마처럼 우리 집 앞에 와서 나를 안아주며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냐고 말해 줄 거라고 믿었다.
친구가 우울증이라고 내게 말하면 나는 만사를 제치고 그녀에게 달려갈 것이기에 당연히 그래 줄 줄 알았다. 그러나 당연한 건 없었다. 나야 우울증에 대한 고통을 알지만 친구들은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는지라 이 우울이 얼마나 내 숨통을 조이고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냥 그랬을 거라고 믿는다. 서운해하는 나 자신이 너무 못나게 느껴져서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 이상을 바라는 건 이기적이라고.
우리는 다시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나는 우울증을 커밍아웃한 것을 후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