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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서 Aug 29. 2021

우울증을 선고 받은 날

내가 왜 우울증이에요

처음 우울증을 선고받았을 때는 21살이었다.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진행하는 합숙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입소를 하기 전에는 의무적으로 설문조사에 참여해야 했다. 평소 같았으면 ‘요즘 자주 우울한 감정을 느끼 싶니까’ 같은 질문에 대충 '보통'이라고 체크했을 텐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형식적으로 하는 종이 쪼까리한테까지 괜찮은 척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울하다, 잠을 못 잔다, 죽고 싶다를 마음껏 표현하고 곧 그런 설문조사를 했다는 것 자체를 잊어버렸다.


입소 후에 기숙사 침대에서 널브러진 채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학교 상담실이니 시간이 괜찮으면 지금 아래층에 있는 상담실로 와 달라는 전화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게 ‘너무나도 솔직하게 대답했던 설문조사’가 가져온 결과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모든 학생들이 한 번씩 해야 하는 거니와 하며 슬리퍼를 질질 끌고, 어디 가냐는 룸메이트의 질문에 “행정실 갔다 올게”라고 말하며 방을 나섰다.


상담실에는 성격 좋아 보이는 중년의 여성분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겨줬다. 선생님은 내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설명해주셨는데 듣자마자 ‘왜 내가 설문조사를 그렇게 했을까’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대충 그날 기분이 안 좋았다는 변명을 둘러대고 나올 심산으로 대화를 시작했는데 우울의 근원을 찾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 이야기를 술술 해버렸다. 선생님은 내게 공황장애 증상이 보이고 우울증 증상도 있는 것 같으니 약물치료까지는 아니라도 상담 치료를 받을 것을 권했다. 선생님과의 1시간가량 이야기에서 나는 울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에 나는 웃으며 그녀와 인사한 뒤 상담실을 빠져나왔다.


그 뒤 정신없이 계단을 올라가고 사람이 없는 복도에 다 달았을 때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래서 그랬구나.


지하철에서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아 구석에서 혼자 심호흡을 하며 눈물을 흘렸던 일도, 매일 머리를 가득 채웠던 죽고 싶다는 생각도, 점점 구체화되는 자살 계획들도, 계속 자고 싶기만 했던 무기력함도, 변해버렸다고 생각한 스스로의 모습에 대한 자기혐오도.


그동안 겪었던 모든 일에 해답을 알게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부정하고 싶었다.


‘내가 왜?’


정신병에 대한 편견과 두려움이 앞섰다.


‘그럼 내가 정신병자인 건가?’ ‘사람들이 알면 나랑 거리를 두려고 할 거야’ ‘정신과 약은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는데 나 어떡해’


한편으로는 의심이 들었다.


부모가 외도를 하지도 않았고, 범죄의 피해자가 된 적도 없고, 학창 시절 내내 전교 임원을 했을 정도로 성격도 활발했고, 친구들도 많았고, 경제적으로 궁핍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왜?


'우울증은 그런 ‘엄청난’ 일을 겪은 사람만 걸리는 거 아닌가? 내가 왜? 내가 왜?'

'그래도 나 친구들이랑 만나면 수다도 떨고 그러는데'

'tv보면서 웃기도 하고 그러는데'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가슴 안에 응어리를 토해낼 정도로 악소리를 내고 싶었다.

그날 나는 한참을 숨죽여 울다, 아무리 울어도 해소되지 않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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