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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서 Sep 22. 2021

누구나 '어리바리 기간'은 있으니까

도전의 초입에서 무서워하는 나에게

새로움은 무섭다. 익숙하지 않은 일은 공포스럽고 시작 전부터 온갖 나쁜 상상들이 머릿속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남들 앞에서라도 도전이 설렌다며 호기롭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난 그런 사람이 아니다. 말로는 그렇게 할 수 있겠으나 테이블 탁자 밑에서는 경박스럽게 다리를 덜덜 떨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손에 익지 않은 일들에 허둥지둥 대는 내 모습은 끔찍했다.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혼자 멍청이처럼 서 있다는 상상은 상상만으로도 속을 울렁거리게 했다.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들의 답답하다는 듯 내뱉는 한숨과 비난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어릴 때부터 이런 두려움이 심했는데, 학원 수업을 들으러 가기 전에는 혼자서 문제집을 풀며 예습을 해갈 정도였다. 예습을 하려고 학원을 다녔지만, 학원에서 혼자만 이해를 못할까 봐 무서웠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혼자서만 이해 못하는 열등아로 취급받을까 봐 무서웠다. 그래서 결국 공부는 학원 가기 전에 혼자 하고 학원은 단지 숙제 검사받는 곳이 되어버렸다.


카페에서 일하기 전에는 유튜브에서 커피 내리는 법, 스팀 하는 법, 원두 가는 법을 검색하고 머릿속으로 계속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포스기 조작하는 법, 결제 취소하는 법, 현금 영수증 처리하는 법까지. 막상 카페에 가서 배웠을 때는 익히는데 채 5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출근 전까지 온갖 걱정과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불안과 걱정의 결말이 해피엔딩이면 기꺼이 감당하겠지만 막상 그렇지도 않았다. 열심히 인터넷을 찾아보고 예습을 했다고 쳐도 실전과 현실은 달랐다.  동종업계라고 해도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제각각이라 미리 찾아보고 간 게 무용지물이었을 때가 많았다.


사소한 예시를 들어보자면 커피머신과 포스기도 브랜드마다 조작법이 달랐고 카페마다 사장님이 원하시는 원두 추출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카페로 이직할 때마다 원두 가는 방법부터 샷 추출하는 법까지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방송국에서는 오직 한컴오피스만 사용한다는 말에 한컴오피스만 주야장천 연습했는데 첫날 내게 놓인 엑셀 파일에 나는 동공지진을 일으켰다. 당황한 티를 내고 싶지 않아서 점심시간에 몰래 유튜브로 엑셀 사용법을 급하게 익혔다. 그러다 일주일 뒤에 다른 인턴분이 들어왔는데 내게 엑셀은 처음이라며 혹시 시트를 복사하는 법을 알려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분도 자신 앞에 놓인 낯선 것에 당황한 게 분명했다.


내가 그분에게 엑셀을 알려준 시간은 어림잡아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내가 그분에게 알려준 건 복잡한 공식이 아닌 알려주는 데 1분도 걸리지 않는 별거 아닌 일이었다.


오히려 나는 새로운 인턴의 솔직함이 대단해 보였다. 첫날이니 모르는 게 많은 게 당연한 일이지만 그걸 모른다고 말하고 가르쳐달라고 말한 용기가 놀라웠다.


나는 인턴의 요청에 ‘뭐 이런 것도 몰라’ ‘뭐 이런 모자란 사람이 신입으로 들어왔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냥 ‘뭐 모를 수도 있지’라는 생각이었다(물론 너무 기초적인 걸 물어보면 선임이 당황할 수 있으니 가능하면 미리 연습해 갈 것).


그 순간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필요 없는 걱정에 불안했는지 생각해 봤다.


내게 맡겨진 일들은 내게 과분한 일들이 아니었다.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것만큼 중요하고 큰 책임이 따르는 일도 아니었고 기껏해야 며칠, 몇 시간, 몇 분만 있어도 충분히 잘 소화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아무리 준비를 철저하게 한다고 해도 새로 일을 시작할 때마다, 내가 그렇게 견디기 힘들어하는 ‘어리바리 신입생’의 기간은 피할 수 없었고. 과거를 돌아봤을 때 맡겨진 일들을 무탈하게 소화한 걸로 봐서, 내가 가지는 두려움과 불안함은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시간이 지나 알게 되었는데 아무리 손에 익은 일도 컨디션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뉴얼대로 진행되지 않고 우리는 인간인지라 종종 크고작은 실수를 범할 때도 있으니 내가 원하는 ‘완벽’에는 완전히 도달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실수를 한다고 해서 회사가 망하거나 내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으며

내가 모른다고 해서 사람들이 내게 정도 이상의 비아냥과 비난을 쏟아내지 않으며

낯설게 느껴지는 일이라도 금방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그래도 살아온 삶의 습관인지라 한 순간에 불안과 걱정을 떨치기는 쉽지 않은데.

그럴 때마다 나는


‘걱정은 미뤄두고 지금 순간에 집중하자’고 혼잣말로 주문을 외우며


마시고 있는 커피를 음미하고

친구와의 시시껄렁한 대화에 집중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방안에 누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과 바람을 느끼며 고요함을 만끽하려 한다.


걱정해도 변하는 건 없고

걱정하지 않아도 잘 해낼 것이고 지금껏 잘 해내 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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