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5주 차, ‘바빠서 연락 못 했어’
예전에는 저런 말에 ‘카톡 하나 보내지 못했을 정도로 바빴다고?’, ‘늦게 답장해도 된다고 생각한 사람이니까 그냥 늦게 답신하는 거겠지’라고 지레짐작했는데, 요즘은 정말 카톡 한 줄 보내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는 날이 있다는 걸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하루는 그동안의 미팅 스케줄을 잡은 파일이 프로그램 오류로 인해 날아가버린 대참사가 발생했다. 곧 미팅 시간이 다가오는데 누가 오는지 알 수가 없고. 그 와중에 섭외 전화는 돌려야겠고. 또 그 와중에 섭외할 사람을 물색해야 했다.
멀어져 가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머리를 싸맨 결과 미팅 파일은 어느 정도 복구되었지만 그날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일해서인지 잠들기 직전까지 심한 두통에 시달려야 했다.
두통은 다음날이 될 때까지 끈덕지게 남아 있어서 한 걸음 뗄 때마다 머리가 울려댔다. 전날의 뒷수습을 마무리 짓고 울려대는 전화통에 일일이 대응하다 보니 시간은 벌써 퇴근시간이 되어있었다.
금요일, 퇴근에 대한 설렘보다는 걱정만 한 가득이었다. 근무시간 내내 업무에 매달렸지만 섭외할 대상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퇴근했다가는 사수에게 ‘바쁜 건 알지만 기본은 하자’며 한 소리 듣게 될게 뻔했다.
순간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가뜩이나 인턴도 줄고 일은 늘은 상태인데 섭외 대상을 물색하라고 시킬 거면 다른 일을 시키지 말았어야지. 퇴근해서도 계속 일에 파묻혀 사는 데 여기서 내가 뭘 더 어떻게 하라는 거야.’
성난 마음을 달래고 퇴근 시작이 되자마자 가방을 챙겨 지하철에 몸을 맡겼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주말에는 일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다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물끄러미 봤다.
마지막으로 쇼핑한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까마득하다는 걸 증명하듯이 입고 있던 옷이 후줄근했다. 세탁할 때 먼지가 묻어서 희끗거리는 검은색 티, 다 헤진 숄더백, 바래진 신발.
‘내가 계속 이렇게 입고 다녔나?’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뭔가 씁쓸했다. 뭘 그렇게 잘하겠다고 아득바득거려서 내 옷 하나 신경 쓸 시간이 없었을까. 시간 외 근무를 한다고 해도 알아주는 사람 하나도 없는데.
집에 가는 길에 친구에게 연락을 해 즉흥적으로 주말 약속을 잡았다. 분위기 좋은 와인바에서 와인을 먹기로. 비록 와인은커녕 맥주도 마시지 못하는 술찔이지만 허세 한 스푼을 섞어 스스로에게 대접을 해주고 싶었다.
집에 도착한 나는 퇴근하면 일 하지 않겠노라 했던 다짐이 무색하게도 울리는 전화를 모른척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