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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서 Mar 06. 2022

취업이 됐지만 우울했다

내가 이렇게 일머리 없던 사람이었나

1월에 이력서를 넣었던 프로에서 면접을 볼 수 있냐며 전화가 걸려왔다.

뜻밖의 면접 기회가 기쁘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왜 한 달이나 지나서 연락했지? 설마 그때 뽑았는데 그새 도망 간 건가?’


그러나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부랴부랴 면접장으로 향했다.


침묵이 흐르는 면접장이었다.

면접관은 내가 경력이 없어서 질문할 게 없다고 말했고

나는 프로에 대한 사전 정보도 없었을뿐더러 질문해도 보안상 알려줄 수 없다는 대답에 더 이상 질문할 수 없었다.


‘글렀다’


면접 분위기가 좋아도 떨어지는 판국에 이런 처참한 면접에는 일말의 기대도 할 수 없었다. 이러다가 면접 본다는 빌미로 방송국 구경만 하다가 작가는 시작도 못해보고 끝나 버리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몇 시간 뒤 면접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같이 일하고 싶어요.”


목소리 톤을 한껏 올려 좋아하는 티를 낸 뒤 몇 가지 사항을 전달받은 뒤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기쁘지가 않았다. ‘경력 없다고 난색을 표하더니 왜 날 뽑았을까’라는 마음과 그냥 일하고 싶지 않았다. 한심스럽게도 어느 곳에도 일하고 싶지 않고 그냥 누워만 있고 싶었다. 그리고 마냥 무서웠다. 낯선 곳에서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채로 놓이는 무능력한 상황이 너무 무서웠다. 그래도 밥벌이를 해야 하니까 더 이상 도망칠 수는 없었다.


첫 출근 날 소개 인사도 없이 나는 안내받은 자리에 앉았다. 나 말고도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있었으나 다들 연차가 상당한지라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켜고 업무를 시작했다. 나만 어리둥절한 채 바쁜 사람들 속에서 좌불안석이었다.


쏟아지는 업무 설명에 혼이 쏙 빠져버렸다. 생초짜 신입이 온 까닭에 업무가 두 배가 된 한 살 어린 선임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퇴근길 하루 종일 긴장한 탓에 아려오는 허리를 연신 두드리며 ‘내가 과연 적응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첫 출근 후 이어진 근무에서 하루에 적어도 12시간은 근무를 해야 했다. 재택근무로 진행되는 지라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것도 문제였고 업무가 많기도 했다. 일을 하면서도 ‘내가 지금 제대로 일하는 게 맞나’라는 생각에 불안했지만 그냥 꾸역꾸역 밀고 나갔다.


불면증이 도졌고 우울했다.

박봉에 일도 많고 휴일도 보장 안 되고 4대 보험도 되지 않은 작가라는 직업은 단지 ‘재밌을 것 같다’, ‘내가 열심히 할 수 있을 거 같다’라는 철없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취업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여기저기 들려오는 나쁜 이야기들에 열정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열정이 없으면 이 일을 하는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라 더 암담했다.


그래도 하루하루 적응하고 배워가는 내 모습이 보였고. 어쩌면 내가 이 일을 잘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그러나 파일을 합쳐달라는 선임의 간단한 부탁에 아무 생각 없이 파일을 합쳐서 보냈는데, 수정사항이 한가득 돌아왔다. 간단한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내가 한심스러웠다. 한편으로 선임이 자기보다 나이도 많은 나를 한심스럽게 생각하겠구나라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왔다.


출근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친구들의 위로에

새삼 먼저 취업을 나가 회사를 다니고 있는 친구들이  대단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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