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연락 왔죠?”
같은 아카데미 동기 동생들이 연락을 해왔다. 아마 저번에 같이 이력서를 넣어 던 프로그램에서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온 것이 분명했다.
“아니? 난 안 왔는데...”
동생들은 내가 당연히 연락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던 눈치인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막 전화 돌린 것 같던데! 언니한테도 지금 연락 갈 거예요!”
녀석들의 서툰 위로에 '뭐 안 와도 상관없어. 나를 놓치면 자기들이 손해지 뭐.'라고 호쾌하게 웃어넘긴 뒤 우리는 잠시 동안 늘 그렇듯 영양가 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전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차가운 공기에도 불구하고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게 느껴졌다.
‘뭐야 지금. 나만 연락 안 온 거야? 아니? 왜지?’
곰곰이 탈락 요인을 반추해봤지만 마땅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동생들보다 나은 스펙이었기에 당연히 면접 전화가 올 거라고 기대를 했는데. 믿기지 않았다. 그래도 꼴에 명색에 연장자인데 혼자만 떨어진 모양새가 속된 말로 쪽팔렸다.
나이 때문에 취직이 쉽지는 않을 거라는 업계 선배들의 말이 그제야 이해가 됐다. 이만하면 젊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을 마주하니 울컥했다.
‘나이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건데. 면접 기회라도 주지’
혹시나 있을 면접을 대비해 밤을 새워가며 전 시즌 모니터링과 더불어 아이템을 구상했던 지난날들이 수포로 돌아가다니. 잠이라도 푹 잤더라면 이렇게 허탈하지는 않았을 테지.
울컥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러다가 취준 기간이 계속 길어지면 어떡하지. 나만 남는 거 아니야?’
‘가뜩이나 프리랜서라 빨리 일 시작해야 하는데’
‘눈을 많이 낮춰야 하나?’
그래도 인턴 경력이 있으니 쉽게 취직이 될 거라는 이제까지의 호기로움은 단 한 번의 탈락으로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정말이지 이 얼마나 유약하고 같잖은 자신감인지.
상대의 잽에 나는 k.o. 당한 채 주섬주섬 짐을 챙겨 카페를 나왔다. 어차피 이미 털린 멘털로 앉아 있어 봤자 부정적인 생각을 끊어낼 수 없음이 분명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5살 어린 친동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언니! 어디야? 나 단거 사다 줘!”
내 마음도 모르는 녀석의 천진난만함에 웃음이 나왔다.
“야! 지금 언니가 단 거 사갈 상황이 아니야. 언니 면접도 못 봐”
“왜?”
“언니 나이 많아서”
뭐가 그렇게 웃기는지 동생은 까르르 웃더니 정말이냐며 연신 확인 사살을 했다.
“에이씨. 진짜라니까. 너 지금 언니가 슬픈데 웃어?”
“우울하니까 단 거 먹자구~ 케이크 먹자!”
“아 진짜... 그래 나이 많은 내가 젊은이 케이크라도 사다 줘야지. 내 쓸모는 젊은이 케이크 사다 주는 거야”
동생을 다시 한번 한바탕 꺄르륵거리더니 그제야 위로의 말을 건넸다.
“언니 후회 안 하려면 계속 도전해야 해. 지금이 언니 인생에서 제일 젊을 때야”
마냥 어리게 보이는 동생의 짐짓 어른스러운 위로에 살짝 감동을 받은 나는 케이크를 사 가겠다는 약속을 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나서 근처에 있는 가게에 가서 조각 케이크를 포장하고 조금은 경쾌해진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그래 앞으로 내가 살아갈 날 중에 지금의 내가 가장 젊을 때니까 기죽지 말자’
집에 다와 갈 무렵 그 와중에 단짠으로 먹겠다는 심산인지 불닭볶음면을 한 손에 들고 한 손으로는 나를 보며 손을 흔드는 동생의 모습이 보였다.